베네치아
나는 베니스 메스트레(Venice mestre)역에서 내렸어야 했다.
나는 이 버스가 산타루치아역으로 가는줄 알았다.
분위기가 이상해 기사님에게 여쭈어보니, 내려주시겠단다.
나로 인해 고속버스가 도로에 선 것이다.
승객들과 기사님에게는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많이 지나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베니스는 로마처럼 지하철승차권판매기계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로마사람들보다 더 바뻐보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답변하는 사람들마다 알려주는 길이 달랐다.
묻고, 또 물어 그 수 많은 플랫폼 안에서 내가 서야 하는 플랫폼 앞에 서게 되었다.
그 때의 안도감이란, 마치 바늘 하나를 찾기 위해 온집안을 뒤지다 바늘이 뭉태기로 붙어있는 실패를 찾은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인간이란 모두 자신의 철학과 지식, 지혜, 도덕, 가치, 시선 안에서 답한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 어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답해준다는 것을..
여기서도 대답하는 사람마다 답변이 달랐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의 최선을 다해 답했기 때문이다.
우린 어쩌면 아무리 친하더라도, 부부더라도 그저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인 것을, 나는 여태 몰랐다. 또 그 무식은 남을 한탄하는 또 하나의 상처를 낳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내 맞은편 침대에서 샤워을 막 마치고 귀엽게 머리를 털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크로아티아에서 모로코 사막까지 여행한단다.
모두의 여행이 다르듯, 이 청년은 돈을 아껴 하루라도 여행을 더 한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베니스야경을 보러 나갔다.
길눈이 밝은 사람이라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둘이 되었다고 더 행복해진 것도 아니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나만의 시간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함께 있으면 길이나 여행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완전요소가 조금 삭감되는 기쁨을 얻기 위해, 내 개인시간을 허비해도 될까?'라는 자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사람도 유럽을 여행하는 여느 사람들처럼 베니스에서 1박만 하고 떠난다고 한다.
순간 3박을 하는 내가 바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2박만 하고 나도 이 도시를 떠날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는 슈퍼에서 1유로도 안되는 빵을 사서 설탕을 뿌린 후 토스트를 만들어 출출할 때 마다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식비를 아껴 하루라도 더 여행을 하고자 하였다.
아마 내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여행하고 있었다면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의 여행과 토스트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그의 계획된 여행과 나의 정의내릴 수 없는, 확립되지 않는 여행 가운데에서 난 흔들리고 있었다.
게다가 나보다 열살이나 어린 그의 여행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까지 올라왔다.
다음날 오전, 우린 함께 베니스를 보기로 했다.
그는 1층 리셉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을 2층 계단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나와 다른 여행을 하는 어떤 한 사람과 같은곳을 걷고 싶지 않았다.
촉박한 그의 일정에 나의 반나절을 헌납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 먹는데 10분이나 걸렸다. 아마 그는 보지 못했었겠지만 난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고 또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베니스에 와서 남의여행을 하고 있구나..
그뿐만 아니라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남의 여행, 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난 그에게 말했다.
"먼저 가시겠어요.
전 좀 다른 길로 가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