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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May 20. 2022

화성에서 오셨쎼여???

7살 아리의 출생의 비밀

우리 세대는 부모님, 조부모님이 주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아이들을 놀려먹곤 했다.


그 '다리'가 이중적 의미의 다리였음은 나중에 커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엄마 다리 밑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나와 한 존재가 되었다. ㅎㅎ

간혹 나처럼 생살을 찢고 새끼를 제 몸에서 뱉어내는 엄마들도 있긴 하지만.

(표현이 너무 거시기한가? )



제 아이나 손주를 그렇게 놀려먹는 건 1차로 재밌어서이고 ㅋㅋㅋㅋㅋ

2차로는 말 안 듣는 꼬맹이들, 어른 말을 아직 곧이곧대로 믿는 순박한 것들이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함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함은 '네가 여태 철석같이 믿고 의지해온 네 엄마가 실은 진짜로 널 낳은 친엄마가 아니다'란 뜻이니, 어린것들에겐 청천벽력.


조무래기들은 그 말을 진짜 믿고 울기도 하지만 좀 머리 큰 초등 저학년이 될 때까지

그 수법이 조금이라도 통하는 얼라들은 '출생의 비밀'에 대해 들으며 혼란스러울 터. ㅎㅎ



나도 어릴 적 아빠가 그 말을 하실 때마다 엄마, 아빠 얼굴을 빤히 보며 나랑 닮은 구석이

있긴 있나 생각하곤 했다.

나에게 등을 보이며 뒤돌아선 엄마, 아빠가 (아마도) 히죽히죽 웃고 있었을 것이다.




7살짜리의 엄마가 된 나는 딸에게 '새로운 출생의 비밀 썰'을 풀기로 작정한다.



사실 아리 너는 지구인이 아니라 화성인이다.

화성에서 온 화성인 네 친엄마가 네가 아주 아기였을 때 나에게 너를 맡기고 갔다.

왜냐하면 그녀는 화성의 여왕인데, 이웃 별을 정복하러 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어서

너를 보살피기 힘들어서 10살이 될 때까지만 (하필) 이 가짜 엄마에게 너를 맡긴 것이다.


라는.........





말을 지독하게 안 들을 때마다 아주 간혹 몇 번만 이 썰을 풀었다.


효과는?


겁나 좋았음.ㅋ



그리고 지난번에 평창으로 짧게 여행 갔을 때, 스키장이 있는 호텔이라 주변이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 룸에서 산꼭대기가 어슴프레 보였는데, 그날 말을 너무 안 들어서 한번 더 사용했다.



"아리야~~ 사실은.... 오늘.... 너네 엄마한테서 연락 왔어.

원래 10살에 보내려고 했는데....

저기 산 보이지?? 오늘 밤 9시에 데리러 온대!! 만나기로 했어.

엄마랑 인사하자. 지구에서 있었던 일 잊으면 안 돼~ ㅠㅠ

거기 가면, 화성인 음식을 먹어야 해. 도마뱀 요리나... 뭐 그런 거.... 오늘 지구에서 마지막

밥이니까 많이 먹어둬..."



목욕시간인데 자꾸 꾸물거리고 말을 안 듣기에 써먹었는데 그녀는 당장 옷을 벚어젖혔다.

그리고 실실 웃으며 제 아빠와 나를 쳐다보며... 내 말에 장난이 어느 정도 섞인 것인지,

행여나 저 말이 진실 일리는 없겠지. 하는 표정으로 눈치를 살피며.. 아주 해맑은 웃음으로

그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


(약간)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출생의 비밀만큼 아이들에게 갑자기 크게 다가오는 천재지변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만 당할 순 없지.



너도 나중에 자식 낳으면 써먹어라.

ㅎㅎㅎㅎㅎ



산타할아버지 약발도, 화성인 엄마 약발도 몇 살까지 먹히려나.

초딩이 되고 나서 조금씩 조직생활의 쓴맛을 느끼고 있는 그녀..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저 잘해주고 싶어서 응석을 다 받아주다 보니.......

가아끔 제 엄마, 아빠한테만 버릇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예의 바르게 잘 키우고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제 엄마, 아빠 알기를 우습게 알면 무슨 소용???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이 녀석을 '참 교육'해야겠다 다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름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글쓰기도 가르치고, 제대로 된 '엄마 아빠에 대한 예의'도 가르쳐야지.

많이 놀려먹어서 미안하고. (진심)


사랑한다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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