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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Oct 19. 2020

#9.시어머니 항복의 조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도 이런 과정을 거쳐 점차 ‘인간’이 되어갔나 보다, 생각하며 마치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보통 서너 살 무렵 어린이집에 다니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발달 과정상 이 시기의 아이들은 친구와 진짜로 어울려서 논다기보다는 각자의 놀이를 하며 논다. 말문이 트인 아이들도 서로 대화를 하며 노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기 일쑤다. 아직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친구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보하고 나눈다는 개념이 아직 없기 때문에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어느 날은 아이가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장난감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억지 부리며 우는 걸 보는데 희한하게도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부 갈등에 대한 주변 지인의 이야기나 인터넷 글들을 보면 참다못해 결국 시어머니와의 소통을 단절한 며느리들이 많다. 요즘 아주 흔한 일이다. 명절에도 아이와 남편만 시가에 보내거나, 극단적으로는 남편도 본인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을 알게 되어 이에 동참하기도 한다. 아내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또는 며느리가 일방적으로 시어머니의 연락처를 차단해 고부 갈등이 빚어지고 이로 인해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갈등의 시작은 대부분 시어머니의 막말이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결국은 며느리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있는 경우 특히 그렇다. 며느리 비위를 맞추어야만 손주 얼굴 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시어머니들은 6개월에서 1년쯤 버티다 은근슬쩍 연락을 하고, 아들을 통해 관계 회복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미 치가 떨릴 만큼, 이혼을 불사할 만큼 시가에 덴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환멸을 느끼지만, 아이의 할머니라는 이유로, 남편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또는 ‘착한 며느리병’이 도져서 등의 이유로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얼마간의 저항 기간 동안 누린 행복도 잠깐. 은근슬쩍 관계가 회복되면 불행하게도 원래의 갈등 구조를 답습하기 마련이다. 며느리의 승리라고 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진정한 승리라고 보기도 어려운 이유이다.


올케와 사이가 안 좋던 친정엄마도 올케가 아이를 낳자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고, 은근슬쩍 둘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 서로의 반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도 한 애매한 관계 회복이지만, 사실은 언제 다시 예전의 갈등이 불거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시어머니들은 왜 백기를 드는 걸까. 며느리 없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기에 어른의 자존심을 굽히는 걸까.

세상 전부인 아들을 결국 웃게 할 사람도 며느리, 아들을 덜 힘들게 만들 사람도 며느리, 세상 존귀한 존재인 손주의 하나뿐인 엄마도 며느리라는 사실을 결국 깨달아서가 아닐까. 그걸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고, 언성 높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을 텐데.


이미 갈등을 겪고 있는, 혹은 겪을지도 모를 며느리들도 시부모를 그저 어려운 어른이라 여겨서 “네네.” 하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보살펴야 할 ‘네 살 아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쉬워질까? 네 살 아이에게 소중해 마지않는 애착 인형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인형을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채 가버렸다. 아이는 당연히 화가 나서 떼를 쓰고 울어댈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 네 살 아이이고 며느리는 인형을 가져가버린 사람이다. 뺏겼다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울고 투정 부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 오류가 있다.

‘뺏는다’란 단어가 그렇다. 며느리는 아들을 ‘뺏어간 사람’이 아니다. 이제 인형 뺏긴 아이마냥 화가 나서 심술부리는 모든 시어머니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타이밍이다.


“어머니! 제가 뺏어간 게 아니에요. 어머니 아들이 저를 택한 거라구요! 원하시면 언제든 제 남편이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로 돌려드리겠어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그건 아들이 불행해지길 바라시는 게 될 거예요.”



*이 글은 2020.03 출간된 '본격 며느리 빡침 에세이'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박식빵 지음-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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