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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ug 07. 2024

10화. 모닝 자동차 경매(공매)로 남긴 수익 XX만원

- 결론: 돈 주고도 살만한 경험이었다...!

몇 달간 남편과 24시간, 주 7일 붙어있다가 뜻밖에 진짜로 자동차를 낙찰받는 바람에 하루 내내 떨어져 있게 되었다. 수익을 남기는 건 둘째치고 일단 나한테는 완전 이득인 걸? 아무리 사랑해도 가끔 떨어져 있어 봐야 애틋하기도 하고 그런 거다. 이건 민준도 동의한 바였다. 10년 차 부부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다.  

    

육아휴직을 했는데 우리 둘 다 왜 이렇게도 바쁜 건지, 시간을 분단위로 쓰다가 김밥 한 줄씩을 차에서 겨우 나눠먹고, 민준은 오후 1시 기차를 타고 우리의 귀여운 모닝이 있는 경북 고령군으로 향했다. 나는 두어 시간 뒤 딸 아인이를 데리러 가야 하고, 차가 있는 장소는 시골 촌구석이어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들었지만 민준은 차를 인도받아 서울로 돌아올 때 바로 타고 올 생각이었기에 자차로 갈 순 없었다. KTX로 동대구역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40여분 걸려 지하철 종점역까지 간 뒤 역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40여분을 더 갔다고 한다. 서울 집에서 차 인도지까지 Door to door로 5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행히 내려가면서 기차에서 조금 자고, 챙겨간 상가투자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에게도 쉬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공매 온비드 사이트에서 입찰 전 물건의 감정평가서를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차 사양은 자세히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차만의 고유한 시리얼넘버 개념인 VIN넘버를 제공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이 차대번호를 현기차 온라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신차 당시 출시가격과 주요 옵션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아는 여자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고, 그런 정보는 민준에게 처음 들었다. 민준이 말했다.   

   

“에이 뭐 몇천만 원짜리 차도 아니고, 모닝 하나 보자고 어떻게 서울에서 경북까지 다녀와. 그건 아니지. VIN넘버 치면 사양 다 나오고, K카 시세랑 비교해 보면 되고, 담당자랑 통화하면 지금 시동 걸리는지 정도는 알려줘. 낙찰받을지 못 받을지도 모르는데 교통비랑 시간 들여 가는 건 쫌 아니고, 연식이나 상태 가늠해서 수리비랑 남길 수익 계산해서 입찰해야지.”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낙찰받은 모닝은 무려 18만 km를 이미 탄 차라 수리할 게 무조건 있을 상태겠지만, 저 성격에 조사를 단단히 하고도 남았을 테니. 그리고 본인이 직접 해보고 결국 손해를 보더라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 지금 이 순간 나는 잡생각을 그만두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휴가를 즐겨야만 해. 하지만 민준과 카톡과 통화를 하며 나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ㅠㅠ)


18만 km 달린 2011년식, 가솔린, 오토, 은색의 촌스러운 모닝, 그것은 하필 축산물 관리기관에서 공무원이 사용하던 차였다. 

질퍽질퍽한 진흙길을 오랜 시간 짓밟고 다녀 온갖 흙먼지로 바퀴며 차 아랫부분이 찌든 때로 더러운 것은 물론이오, 바깥 범퍼는 멀쩡했는데, 안쪽 범퍼가 덜렁덜렁 난리 부르스도 아니었다. 차와의 실물 대면 후 첫인상은 ‘아, X발 X 됐다.’였단다. 이 차는 한번 유찰을 겪고, 두 번째 공매 절차에 나온 것을 민준이 재낙찰받은 거였는데, 첫 번째 낙찰자가 차를 보고 입찰시 낸 10%의 보증금을 버리고도 낙찰을 포기했었다고 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문제가 있더라도 작은 돈으로 해결하고, 수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민준은 스스로를 너무 신뢰했던 걸까. 블로그 후기에서 자동차 경매로 돈 남기는 게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많이 읽었지만, 본인은 다르단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혹은 그게 정말이더라도 본인이 직접 해봐야만 자동차 경매를 접고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기에 일단 해본 걸까. 20년을 봐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 남자를 잘 모르겠다. 오직 나와는 다른 종족임이 분명하다는 것만을 알겠다.     


아무튼 X 된 것으로 보이는 더러운 모닝을 데려와 일단 명의이전 절차를 하고 난 뒤, 근처 공업사로 가 서울까지 타고 갈만한 기본 검사만 했단다. 멀리 내려간 김에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몇 년 만에 만나 밥까지 먹고 민준은 서울로 출발했다. '효율' 그의 삶에 기본 중의 기본 모토였다. 모닝을 타보긴 했었지만 경상도에서 서울까지 장거리 운전은 처음이었다. 주유를 했는데 서울 와서도 한참을 더 탄 걸 보면 연비는 정말 최고였다. 다만 고속도로에서 최고 속도로 밟으면 에어컨을 꺼야만 그나마 앞으로 좀 나아가는 느낌이었고, 오르막길을 오를 때도 에어컨을 꺼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이건 서울 가면 당장 빨리 팔아치우던가, 정 안 팔리면 매순간 차가 막히는 서울 시내에서 경차 주차할인이나 받으면 시티카로 타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오후 4시경 경북 고령에서 출발한다던 민준은 아이와 내가 잠든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서울에 돌아왔다. 잠귀에 예민한 내가 다른 방에 민준의 이부자리를 봐놓고, 미안하지만 먼저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식탁에 낯선 자동차키가 놓여있었다. 우리의 2011년식 모닝은 스마트키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핸들 뒤쪽 오른쪽 구멍에 키를 끼워 넣어 시동을 거는 뾰족한 자동차키를 오랜만에 보았다. 피곤했던 민준은 8시 즈음까지 잤고, 나는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왔다. 장마가 시작될랑 말랑한 6월, 이글이글 불타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며칠 뒤에야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를 보았다. 차 문을 열자 문과 본체 사이에 진흙이 잔뜩 끼어 굳어 있었다. 차를 1도 모르는 내가 그냥 언뜻 보아도 닦고 고쳐야 할 곳이 많아 보였다. 이거 정말 팔 수는 있는 걸까...? 대체 누가 사가는 거지 이런 걸...?      


일단 온라인 직거래로 팔려면 예쁜 사진이 필요했고, 우리는 돈이 없었기에 걸레, 물티슈, 알코올스왑, 쓰레기봉투 등을 들고나가 지하주차장이 아닌 차가 잘 보이는 밝고 환한 길가에 차를 주차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담하고도 더러운 차를 벅벅 닦았다. 작아진 아이 양말, 속옷, 오래된 남편 메리야스 등을 모아두고 가끔 방충망이나 창틀 같은 델 닦고 버리는데, 한 보따리를 들고나가 모두 썼다. 모두 까만색이 되었다. 다행히 이건 축산물을 운반하는 트럭이 아니라 공무원이 축산농가에 방문하거나 할 때 쓰는 차였기에 차 내부에서 축산물의 냄새가 나진 않았다. 그래도 뭔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났기에 Ikea 세일 때 사온 말린 꽃 방향제를 넣어두었다. 우리 차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을 끼워 내비게이션을 볼 수 있게 하는 홀더도 가져다 두었다. 그래도 그래놓고 보니 사람이 타도 될만한 상태가 되었다. 물론 고령에서도 사람이 타고 다닌 차가 맞긴 했다. 내 말은 팔아도 욕 듣지 않을 만한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행히 쨍하고 맑은 날씨 덕분에 야외에서 사진을 찍으니 예쁘고 깨끗해 보이게 나왔다.      


민준은 사진을 찍고 사양을 등록해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 올렸다. 높은 가격을 적은 것인지 입질이 전혀 오지 않았다. 일단 사진부터 찍어 올린 후 누군가에게 팔아 그 사람이 계속 주행해도 안전한 상태가 맞긴 한 건지 다시 점검이 필요해 공업소에 갔다. 양심은 지켜야지.

180만 원에 사서 280만 원에 팔아 100만 원을 남기는 것이 처음 세운 목표였는데, 부분 도색과 수리비에 30만 원이 들어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예상 수익금액을 수정했다. 70만 원은 꼭 남겨야만 한다. 아마 민준은 말은 안 해도 속으로 내 눈치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안전하고 꽤 깨끗하며 연비도 좋은 실버 모닝이 되었지만,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당근마켓에 중고물품 외에 중고차 직거래도 이뤄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근마켓은 지역기반이라 판매글을 올리면 언제든 직접 와서 차를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실수요자들한테 민준이 올린 글이 보이게 될 것이다. 글을 올리자 관심물건으로 일단 등록만 해두는 좋아요 하트 표시가 몇 개 달리기 시작했으나 구매 의사 표시나 문의 채팅은 오지 않았다. 이걸 정말 그냥 시티카로 서울에서 타야 하나 생각하며 다리를 달달 떨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이미 타고 다니던 차도 오래된 중고차라, 세컨카로 예쁘지도 않은 오래된 경차를 또 가지고 싶진 않았다. 큰 필요가 없다 여겼다. 아파트에 차를 세대당 두 대 주차하면 얼마 안 되지만 주차비도 더 내야 한다. 남들은 외제차나 테슬라도 잘만 뽑던데 남편은 다 바스러질 것만 같은 모닝을 가져왔다. 열심히 하는 건 대견하고 존경스러웠지만, 이걸 낙찰받아 온 것은 그였고 파는 것도 그의 몫이라 여겼다. 이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같이 청소해 줬음 됐지 뭐.      


민준은 가격을 몇십만 원 더 내렸다. 100만 원에서 70만 원이 된 예상수익은 또 내려갔다. 그때쯤 당근 채팅 하나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차 사고 싶은데... 가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노원구에 살아요. 오늘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첫 문의다! 민준은 언제든 오시라고 했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만난 그 첫 문의 고객은 60대의 남자였다.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 땀을 뻘뻘 흘리며 아파트까지 걸어왔단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차를 살펴본 그는 아내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며 다시 연락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지하철을 타러 갔다. 바로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 좀 아쉬웠지만 다른 방법도 없어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두세 시간 후 그는 아내의 허락을 받았다며 다시 지하철을 타고 땀을 흘리며 민준을 찾아왔다. 그럴 거면 차 보고 나서 아내와 전화로 해결하지 싶었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민준은 드디어 첫 낙찰차를 업자가 아닌 최종소비자에게 직거래로 판매하게 되었다. 중고차 거래 특성상 사진이 실물보다 예쁘게 나오기에 그 자리에서 또 흠집 같은 걸로 협상하여 돈을 좀 더 깎아줬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은요. 제가 기초수급자거든요.... 집사람은 아파서 같이 못 왔어요. 못 움직여 거의 침대에 누워만 있어요. 제가 쓰던 차가 있었는데 사고가 나서 완전 다 망가져 못쓰게 되었어요. 이거 정말 사고 싶은데....”     


평소 냉정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하지만 마음이 조금 약해진 민준은 예상수익을 또 낮췄다.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차를 얼른 팔아치워 버리고픈 마음도 한몫했으리라. 성인 남자 둘이 모닝에 끼어 타고 가까운 구청으로 가서 명의이전 절차를 진행하고 드디어 그 사람에게 돈을 받았다!! 뾰족한 자동차키 두 개 세트를 넘겨주고 민준의 마음도 드디어 가벼워졌다. 그는 최종적으로 모닝을 팔아 40만 원의 수익을 남겼다.      


“그래. 하루 경북 다녀오는 시간과 온라인 시장조사, 청소할 에너지, 판매글 올리는 수고에 비하면 40만 원 정도면 충분하지. 벤츠 판 게 아니고 18만 킬로 탄 모닝이었잖아. 100만 원은 애초에 과한 목표였어. 내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봤으니까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민준은 스스로와 나를 위로했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회사에 다녔으면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하루에 30~40만 원은 번다. 물론 8시간을 내리 앉아있어야 하고, 미친 상사에게 욕지거리를 들으며 머리를 쥐어뜯고 밤마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어 간은 썩어가지만 말이다. 

민준은 ‘자동차 경매 해서 차를 되팔아보니 사람들이 이걸 왜 많이 안 하는지 알겠다.’가 아니라,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마 나라면 두 번 다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동대구에 내려갈 때 쓴 KTX비용과 각종 교통비, 식사비, 기본 점검비 등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니 최종 수익은 30만 원이 되었다. 그렇게 따지니 하찮아 보였지만 투자금이 원가 180만 원에 수리비와 교통비 등을 합해 220만 원이니까 수익률로 따지자니 무려 7.3%였다. 급등주 주식에서나 볼만한 수익률이다.      


“수연아, 근데 나 돈 적게 벌긴 했지만 너무 재밌었어. 이게 진짜 되긴 되는 걸 직접 확인하니까 좋았고, 회사에서는 내가 주체적으로 일할 수가 없잖아. 하기 싫은 걸 시키니까 억지로 해야만 했는데, 경매는 내가 내 시간 마음대로 쓰면서 돈을 벌어보는 게 신기하고 좋더라?

내가 가만 생각해 보니까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슬로바키아에 인턴 갔다가 바로 취직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냥 10년 넘게 회사원으로만 살았더라고. 그 이외의 다른 길있다는 걸, 심지어 아주 많다는 걸 생각조차 잘 못해봤는데, 사실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회사 밖에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 빌라 낙찰받은 것도 어떻게 하면 수익 많이 남기고 잘 되팔 수 있을까. 높은 금액에 전세 줄 수 있을까. 인테리어를 어떻게 해볼까. 아님 에어비앤비를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하루가 너무 짧아!!”      


주변에서 우리처럼 경매 투자에 관심을 갖고 경매 학원에 다니거나 공부를 해봤다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하는 사람은 온라인 경매 커뮤니티 이외에 오프라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우리보다 투자금이 부족하거나 실행력이 부족하거나 여러 번 해봤는데도 결국 수익도 못 남기고 실패해서 접은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 부부보다 아니 민준보다 덜 절박했던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적은 대출금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대출이 없었을 것이고, 민준보다는 회사를 견디는 게 쉬웠던 것이다. 민준은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용기를 낸 멋진 사람이라기보다는 연봉도 1억 넘게 주는 대한민국 탑티어 대기업에 다니는 게 죽기보다 싫어져서 회사 밖에서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으면서도 돈도 더 잘 벌 수 없는 일이 정말로 어디 하나라도 없나 하며 죽기 살기로 필사적으로 찾았던 것이다. 정말로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서있게 되거나 어떤 것이 죽기보다 싫어지면 사람은 길을 찾아내게 되는 법이었다. 걷기에 예쁜 길이 나있지 않으면 삽을 들고 길을 내서라도 나아가게 되는 법이었다. 물론 벼랑 끝에서 몸을 내던져 버리거나 깊은 우울에 빠져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내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다음 화에 계속)           


코로나시절 재택근무 중 Zoom 회의에 임하던 김민준 책임

(좋아요와 댓글은 식빵작가가 계속해서 다음화를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소설은 85년생 박식빵 작가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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