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식빵 Aug 11. 2024

11화. 경매 낙찰받은 빌라의 대반전

-여기가 재개발 예정지라굽쇼? 그건.... 몰랐는데요...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서울의 한 학군지 근처에 있는, 역세권 쓰리룸 빌라였다. 

아주 소평수였지만, 자그마한 방이 3개 있어 1인 가 또는 신혼부부가 살기에 좋아 보였다. 게다가 지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축급이라 크게 수리를 하거나 인테리어를 손 볼 필요도 없을 거라 추측되어 추후 매도하기에도 좋을 거라 여겨졌다. 민준은 입지가 좋은 것을 큰 장점으로 생각해 유찰이 되기 전에 1회 차 경매 절차에 입찰하여 단독으로 낙찰받았다.

빌라와 아파트 등 몇 번의 패찰 끝에 민준은 경쟁률이 덜하지만 좋은 물건을 찾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물건에는 다른 경쟁자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매각물건명세서에 경매기입등기 이후에 전입한 제3의 점유자가 살고 있다고 적혀있었다는 점이었다. HUG대항력포기물건의 경우에는 이전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HUG로부터 먼저 받아 나가 공실인 경우가 많았으나, 간혹 빚에 시달리는 소유자가 경매매각절차 전 몇 달만 월세로 깔세를 놓는 경우도 있었고, 소유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이 제3의 점유자의 정체는 법원에서도, 그 누구도 알 수 없었고, 직접 만나서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유자를 만나러 가며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부여잡았다.     

 

‘험악한 조폭 같은 사람이 나오면 어쩌지? 누가 살고 있긴 한 거 같은데, 문을 안 열어줘서 못 만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만나거나 연락이라도 되어야 명도 협상을 할 텐데...’      


낙찰받은 다음 날 사건기록열람을 위해 다시 법원을 찾았다. 이 경매사건에 관련된 모든 법원송달문서라든지 해당 주택에 대한 감정서, 등기부 등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채무자인 전 소유자나 점유자의 연락처를 건질 수 있기에 희망을 품고 서류들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발견한 것은 전 소유자가 현재 OO구치소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수감 중이라는 것과 전국에 몇십억 원에 다다르는 엄청난 세금체납내역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빌라에 투자하고 갭투자를 하다가 역전세를 맞아 한순간에 몰락하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된 미니 빌라왕일 거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손에 건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채 우리는 빌라로 향했다. 아직 매각허가결정이 나기 전, 대출을 받기 전, 그러니까 아직 등기를 치지 않아 소유권이 넘어오지 않은 그저 낙찰자 신분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해당 빌라 1층에 주차를 하고 내렸지만 나름 신축빌라라 당연히 보안시스템이 있어서 비번을 누르거나 세대와 연락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입찰 전에 임장을 왔을 때는 아무 관련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우리는 경매입찰예정자가 아니라 낙찰자 신분이고 일주일 뒤 매각허가결정이 나고 잔금을 납부하게 되면 진짜 소유자가 되므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당당하게 해당 호수를 누르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한참 시간이 흐르는데 응답이 없길래 낮시간이라 사람이 없는 걸로 알고 그냥 잽싸게 돌아갈까 잠시 생각했다. 그가 누구든 일단 이 만남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면 조금 기다렸다가 거주민이 들어가거나 나갈 때 같이 들어가서 현관에 메모지라도 붙여두고 올까 고민하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택배기사님이 가지고 계신 카드키로 1층 공동현관을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가시기에 우리도 같이 뒤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일단 집 안에 사람이 없더라도 현관 앞까지는 가보자 싶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네~ 누구세요?!!"      


우리가 벨을 눌렀던 해당 호수의 점유자가 이제야 뒤늦게 응답한 거였다. 그 순간 막 안으로 들어온 우리 뒤로 공동현관문이 닫혔고, 우리는 택배기사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응답이 없어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된 점유자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목소리를 듣자니 젊은 남자인 것 같은데..... 경매 커뮤니티 후기 글에서 많이 접해 본 진상 점유자는 제발 아니길 바라며........ 엘리베이터 화면에 1,2,3.. 하며 올라가는 숫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사비 500만원 달라하면 어떡하지??짧은 순간 온갖 상상을 다 해본다. 택배 기사님과 함께 제일 꼭대기 층인 해당층에 내리자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주 편안해 보이는 차림의 남자 한 명이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손에 든 채 이제 막 현관에서 나왔다.      


“아, 혹시 벨 누르신 분들이세요? 근데 누구... 신지...?”     


“아,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 집 경매로 낙찰받은 사람들입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다행히 조폭처럼 보이거나 덩치가 우락부락하거나 인상이 험악하진 않은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 말을 듣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네.... 이게 벌써 경매에 나갔다고요? 그렇게 빨리요...?? 아......... 일단 제가 이거 버리러 나오던 참이라... 1층으로 좀 같이 내려가서 얘기하시죠..”  

   

차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는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그 남자는 쓰레기를 버렸고,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아 엉거주춤 어색한 형태로 셋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 민준이 먼저 말했다.      


"저희는 이 빌라 어제 낙찰받았는데요. 서류상 현재 살고 계신 분이 있다고 하여 향후 계획 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려고 왔습니다."      


"아... 저는 올해 3월에 이사 들어왔는데... 6개월 살기로 단기계약을 했고... 그때 부동산에서는 집주인이 빚이 많아 나중에 경매 넘어갈 집인데, 빚이 엄청 많이 있어서 아무도 입찰 들어올 사람도 없을 거라고 했어요. 저는 9월까지 여기 살기로 계약했어요. 이렇게 빨리 들어오실지는 몰랐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 소유자가 빚이 많으니 아마 이 집도 경매에 넘어갈 것을 예상하고, 경매로 매각되기 전까지 단기임대라도 놓아 소액이라도 건지기 위해 부동산과 입을 맞춘 모양이었다. 안타까웠다. 전 소유주는 세금채납액이 너무 커서 HUG가 대항력 포기를 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둔 상태였다면 이 가련한 세입자가 알고 있는 대로 아무도 절대로 입찰하지 못할 물건이었지만 HUG가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대항력을 포기하게 되면서 현재는 그 상태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이 사람의 말을 100% 신뢰할 수도 없고, 알고 보면 전소유자의 가족이나 지인일 수도 있고, 실제로 단기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했는지는 우리가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잔금을 내기 위해 경락잔금대출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 대출이자를 감당하면서 몇 달 더 이 세입자를 계속 살게 해 줄 이유가 없기에 이 집에서는 하루빨리 내보내야 할, 즉 명도를 해야만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정확한 상황을 세입자에게 알려주지 않고 단기든 뭐든 임대차계약을 한 전 주인의 잘못이 95%이고, 경매 절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급한 사정 때문에 6개월의 계약을 큰 의심 없이 덜컥 맺은 이 임차인의 잘못이 5%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 말로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을 내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단기계약이라 보증금은 크지 않았지만, 집 경매절차를 밟고 있는 이상, 게다가 전 소유주가 교도소에 있는 상황이라 보증금은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에 더 이상 월세는 전소유주에게 내지 마시라고 조언해 드렸다. 얼마 안 되지만 보증금을 까먹으며 두어 달 더 살 수 있고, 그 이후에 이사를 나가준다면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크게 피해 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앞에서는 일단 좋게 좋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남편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서로 향후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그와 헤어진 우리는 이 빌라의 현 매매/전세 시세 등을 알아보기 위해 근처에 있는 부동산으로 향했다.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시세확인이 어렵지만, 근처 부동산에서 그래도 제일 잘 알고 있기에 동네에 온 김에 들러보기로 했다. 우리는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날 낙찰받고 집에 돌아온 민준이 엄청난 사실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방에서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갑자기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여보오!!! 수연아!!! 우리 낙찰받은 거! 와! 대박! 여기 재개발예정지야!!!!”     


“뭐????????? 그거 신축급이라며! 신축 빌라를 무슨 재개발해. 제대로 본거 맞아? 주소 확인했어?”     


“어 맞아!! 이거 사실은 진짜 모르고 입찰한 건데, 앱에 뜨길래 찾아보니까 문정부 시절에 재개발 예정지로 선정된 곳이래. 정권 바뀌면서 좀 지지부진한 상태인가 봐. 내일 부동산 가서 제대로 알아보자!”      


빌라가 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로 변신하는 것이기에 되기만 한다면 참 좋긴 한데, 이런 종류의 재개발이 늘 그렇듯이 주민 동의나 철거와 이주 단계를 거치는데 10년, 심지어는 20년씩도 걸리기에 나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철거 후에도 아파트가 지어지는 데만 몇년이 더 걸린다. 다만 진척상황이 어느 단계인지 정도는 알아봐야 했다. 이게 정말 나중에 아파트가 되는 걸까? 분담금은 얼마일까? 그럼 우리가 1억 후반에 샀는데, 10억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정말??      


빌라에서 가까운 부동산에 들어가자 인상 좋아 보이는 여자 사장님이 혼자 앉아계셨고 우리는 근처 빌라 시세 좀 알아보려고 왔다고 했다.      


“사장님~ 여기 방 3개짜리 소형평수 신축빌라 매매랑 전세가가 어느 정도 되나요?”  

   

사장님은 별 이상한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눈이 동그래져서 대답하셨다.  

    

"??? 여기 지금 안 팔리죠. 현금청산하잖아요."     


“현금청산??? 그게 뭐예요? 재개발 예정지라는 건 알고 왔는데....”     


“아~ 다른 지역에서 오셨구나~ 이 동네 투자하시게요? 여기 지금 현금청산하는 재개발이라 현 시세보다도 적게 받을 가능성도 있어서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고, 밀어붙이는 주민도 있고 반반이에요. 몇 달 있다가 주민설명회 열릴 건데, 그때 되어봐야 알아요. 그러고 나서 예정지 취소될 수도 있고, 사실 그럴 가능성도 크죠. 그래서 지금 매물 나온 게 아예 없어요. 현금청산으로 정해지면서 일단 지금은 아무도 안 사려고 해서요.”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어제는 재개발예정지라고 좋아했다가 하루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가능하다면 빨리 점유자를 명도하고 몇 달 내에 단기로 매도하여 수익을 남겨 투자금을 더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매도가 안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아무튼 몇 달 내로 이곳이 계속 후보지 상태로 갈 것인지 취소될 것인지 결정이 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다시 매매 수요가 생길 거라고 하셨다. 당장 팔리지 않는다면, 일단은 현 점유자를 내보낸 뒤 다시 전세 세입자를 받아 2년을 버텨야 할 듯했다. 전세시세를 사장님께 여쭤보니 HUG 보증보험한도인 126%를 알려주셨고, 워낙 싼 가격에 낙찰받아서 현점유자를 명도하고 전세 세팅만 잘 된다면 2년을 견디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기는 했다.      


그제야 우리는 사실 우리가 경매로 이 근방의 어떤 특정 빌라를 낙찰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아, 경매로 받으셨구나~ 얼마에 받으셨는데요?”     


“1억 후반대요. 거의 2억이죠.”     


“아~ 그럼 엄청 잘 받으신 거예요. 이거 당장 전세로 내놔도 2억은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일단 기다려보세요. 몇 달 내로 결정 날 거니까. 이 지역은 전세는 잘 나가요. 역세권에 주변에서 오는 수요가 많고, 살기가 좋아서요. 예정지 취소되면 바로 팔아도 최소 5,000 남길 수 있을 거예요. 그러고 가격은 아마 계속 오를 거예요. 여기가 진짜 저평가된 곳이거든요. 한번 여기 집 사둔 사람들은  안 팔아요. 전세도 잘 나가고 계속 쭉 올랐거든요.”           


단기 매도 및 빠른 수익실현의 꿈은 어려워졌지만, 사장님의 희망고문을 들으니 그래도 놀란 가슴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민준도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도 부동산에 직접 방문하여 새로운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부동산 문턱 넘고 상담해 보는 게 은근히 겁나고 무서웠는데 우리는 낙찰받고 나서야 그 관문을 넘어보게 되었다. 직접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이제 곧 집주인이 될 거고, 부동산에는 물건을 내놓는 고객이 되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좋아요와 댓글은 식빵작가가 계속해서 다음화를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소설은 박식빵 작가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