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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ug 14. 2024

12화. 경매로 처음 번 돈

-내가 월세를 받다니!


며칠 뒤 빌라 점유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진짜 집이 경매로 넘어간 건지 저도 집주인한테 연락을 해봤는데요. 그 사람 구치소에서 나왔대요. 그리고 아직 잔금도 안 내놓고 무슨 소리냐고, 잔금 다 내고 등기 쳐야지 보증금 돌려준다고 해서요. 사실 저도 지금 좀 경제사정이 안 좋아져서 단기로 이 집에 들어온 거라 계약한 9월까지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없어요. 보증금도 꼭 받아야 하구요. 그리고, 저도 좀 아는 지인한테 물어보니 이런 경우 이사비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요...”     


전소유주가 정말로 구치소에서 나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집이 경매로 매각되었다고 해서 세입자에게 바로 순순히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아직 잔금을 안 낸 것도 사실이기는 하니 우리도 전략을 짜내야만 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경매 커뮤니티에 질문 글을 올리고, 비슷한 여러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잔금을 납부하고 등기를 가져와야 진짜 소유자가 되는 것은 사실이니, 그 뒤에 명도협의도 더 수월해지리라는 판단에 대출을 알아보고 바로 잔금을 납부했다. 잔금납부 후에도 점유자와 명도협상이 안 될 경우 부당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며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기에 부당이득반환의 취지로 소송을 할 수도 있고, 이제 진짜 집주인이 된 나에게 월세를 내야 하는 거라고 압박할 근거도 생기기 때문이다.


서류상으로도 완전히 소유권이 넘어왔음에도 점유자가 이사 나가기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을 하거나 인도명령 신청을 해서 추후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둘 수 있었다. 인도명령 신청은 법무사를 통해 쉽게 할 수 있었지만,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은 직접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해야만 했다. 절차를 알아보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데에만 반나절이 꼬박 걸렸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대비를 해두어야만 했다. 잔금 납부를 위해 이미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는 4프로가 넘는 대출이자 몇십만 원을 매달 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명도 협의를 하고 이 점유자를 내보내야만 했다.      


준비를 마치고, 다시 점유자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잔금납부하고, 소유권 완전히 가져왔습니다. 등본 떼보시면 제 이름으로 나올 거예요. 전 소유주에게는 그렇게 말하시고 보증금 꼭 돌려받으시고, 혹시라도 월세 계속 내셨다면 이제 그쪽으로는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사 계획에 대해서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눴으면 하는데 시간 언제가 좋으세요?”      


“아, 네. 그렇군요. 저는 요즘 집에서 일해서 미리 말씀만 해주시면 다 괜찮습니다.”   

   

“그럼 다음 월요일 1시쯤 집으로 가겠습니다.”     


점유자가 말한 원 계약만료기간인 9월 중순까지는 약 3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니, 이 사람과는 약정서 형식으로 월세를 받고 명도합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동안 이 사람이 전주인에게 내오던 80만 원의 월세를 우리가 그대로 받는다면 3개월 간 매달 대출이자를 내고도 40만 원가량의 부수입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이 당장 나가준다고 해도 전세 세입자를 바로 구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출이자만 계속 부담해야 하므로, 이사 나갈 수 있다고 하는 3개월 후까지는 거주를 허용하는 합의를 하기로 했다. 다만 이것을 임대차계약서 양식으로 쓸 경우에는 새로운 임대차 관계가 성립되어 나중에 혹시나 이 사람이 합의 기간 후에도 이사를 나가지 않고 버틸 경우 인도명령이나 강제집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경매, 소송 관련 책과 온라인상의 조언을 참고했다.  

    

민준은 그 사람과 계속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이어나갔고, 그 사이 나는 ‘선불로 3개월 간의 월세를 받고 거주하며 3개월 후에 이사비를 요구하지 않고 집을 원상태 그대로 두고 나가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우리는 약속한 날 만나 서로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서로의 도장을 찍어 약정서를 나누어가졌다. 3개월 뒤에 약속한 대로 순순히 이사 나갈지는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그는 말이 통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우리보다 두어 살 나이가 많았고, 다른 사람의 자산을 관리해 주는 일과 주식투자를 하다가 크게 한번 잘못되어 집이며 차며 다 팔고 잠시 단기로 이곳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거실 책상에는 커다란 두 개의 모니터로 주식차트가 띄워져 있었다.


지난번 처음 와서 만났을 때는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집 안을 보여주길 꺼려했지만, 이번에는 집 안을 볼 수 있었다. 집 안을 볼 수도 없이 겉모습과 경매에 나온 내용만 보고 집을 낙찰받아 사게 되었는데, 등기를 치고 나서야 내 집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경매란 참 재밌는 면도 있구나 싶었다. 양해를 구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남자 혼자 사는 것치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점유자 이씨는 원체 깔끔한 성격인 듯했다. 게다가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도 있었다. 왠지 마음이 놓였다. 동물 키우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지. 특히 고양이라면 말이야. 더군다나 이렇게 털 많이 날리는 장묘종 키우며 집을 이렇게 깨끗하게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신축이라 눈에 띄는 큰 흠도 없고,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도 옵션으로 처음부터 있던 거라고 했다. 이 사람이 3개월 뒤 약속대로 잘 나가주기만 한다면 전세를 주기도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재개발 예정지가 취소되면 매도하기도 크게 어렵진 않을 것 같아 한숨이 놓였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일어날 무렵 그 사람은 봉투에 담은 현금을 내밀었다.      


“아, 이번달 월세 먼저 드리려고 현금으로 준비해 놨습니다. 나머지 두 달 치는 제가 다음 주에 돈 받을게 좀 있어서 일주일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봉투를 열어보니 5만 원짜리가 16장, 80만 원이 들어있었다. 정식 임대차계약을 맺고 받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 생애 처음 받아보는 월세였다. 신기했다. 월세를 내보기만 했지 받아보는 날이 오다니. 사실 대출이자를 내야 하니 실제로는 40여만 원이 생긴 것이긴 하지만, 경매로 산 집을 아직 팔지도 않았는데 돈을 벌게 된 것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이게 정말 계속하면 되긴 되는 것인지 머릿속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계속해서 입찰 다니라고 하는 민준이 짜증스럽기도 했는데, 고작 돈 몇십만 원에 이런 기분이 들다니 내가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민준도 기분이 좋아 보이긴 했다. 사실 아직 제3의 점유자는 내 집에서 살고 있고, 재개발의 향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냥 그날만큼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잊고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즐겁고 싶었다. 점유자는 일주일 뒤 나머지 월세를 주겠다더니 이틀 뒤 바로 나머지 두 달 치 월세 160만 원을 더 보내주었다.

     

육아휴직 후 사실 나보다 마음 졸이고 힘들었을 민준은 그 후로 좀 더 확신을 갖고 더 열심히 물건을 살피고 임장을 가고, 입찰을 하러 다녔다. 하지만 3 주택자부터는 취득세율도 더 높아지고, 추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팔게 될 경우 양도세 비과세를 받기도 까다로워지기에 우리는 신중해야 했다. 겁도 많고 걱정 대마왕인 나는 이번에도 온갖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민준을 뜯어말리려고 했지만, 그는 눈을 상가투자로 돌리고 있었다. 주택과 상가는 너무 다른 영역이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휴직하고 제일 힘든 게 고정적인 수입이 안 들어온다는 거잖아. 상가를 해야겠어. 조금씩이라도 매일 월급 받듯이 고정적인 월세를 받는 게 필요할 것 같아.”           




(다음 화에 계속)





편도염이 또 도져서 며칠 앓다 보니 오늘 분량이 좀 짧네요. 얼른 나아 더 재밌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아요와 댓글은 식빵작가가 계속해서 다음화를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소설은 박식빵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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