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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ug 21. 2024

13화. 상가라는 새로운 도전  

상가 경매에 도전하다.


민준의 초등학교 친구 중에는 일반적인 회사원이 아니라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같이 학교에 다니고 동네에서 몰려다니며 공이나 차던 시절에는 그놈이 그놈이었지만 나이 마흔이 되자 삶의 모습은 제각각이 되었다. 영철이는 대학을 중퇴하고 이십대 초반에 고향 부산에서 일찌감치 수산물 도매 사업을 시작해 이제 직원 열명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이 되어 있었고, 회사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삼십대 초반부터 건물 청소 사업을 시작한 민성이도 사장이 되어 있었다. 민준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십대 후반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원으로 살아오는 동안 그 친구들은 잠을 줄이고, 남들 노는 시간에도 주말도 없이 더 일해가며 자신의 사업을 일구었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잘해 소위 SKY에 간 친구들 중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도 있고, 시험 준비하느라 20대와 30대의 절반을 보내버린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영철이가 갑작스레 아버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민준은 오랜만에 부산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술도 한잔 하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엔 서울에 돌아온 민준과 식탁에 앉아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철이는 괜찮아? 친구들은 많이 왔어?”   

   

“응.. 뭐 아직은 잘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더라.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잘 상상도 안 돼... 우리도 점점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다닐 일이 많아지겠지? 영철이 어머니가 많이 우셔서 마음이 참 안 좋더라...그래도 영철이랑 애들 오랜만에 보고 얘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해서 그건 좋더라. 애들 얘기 들어보니까 이제 하는 일도 좀 자리 잡고 조금 편해지나 봐.”      


양가의 부모님은 아직 젊고 건강하신 편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시고, 우리도 어느덧 마흔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한 해, 두 해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회사생활이 뭣 같아서 휴직하고 경매 공부를 하고 있지만, 고향에서 자기 사업으로 이 나이에 벌써 자리 잡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온 민준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삶을 일구어 나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돈과 힘이 들었다.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도 많았다. 비슷한 연봉을 받으며 지방에선 훨씬 마음 편하고 여유롭게 살 수도 있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이 무슨 고생을 하며 사는 건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서울의 지인들이나 동료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살았다. 민준처럼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하여 회사에 다니고 이직을 하며 몸값을 올리기도 했고, 회사에 다니며 대학원이나 MBA 학위를 따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10년쯤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다 보면 회사생활만으로는, 회사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끼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라 마흔 즈음이 되면 다들 몸이 근질거렸다. 일부는 주식과 코인으로 그 틈을 메워보려고 했고, 일부는 언젠가 회사를 떠나고픈 마음에 자격증 공부를 하기도 했다. 또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다른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한 동료는 디저트 카페를 열었다고 해서 민준과 같이 인사차 간 일도 있었다. 인천 송도의 신도시 1층 상가에 작은 카페 하나를 하는데 월세 500이 넘는 돈을 내고 있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쉴 틈 없이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데 임대료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크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민준은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수도, 뭔가 새로운 사업을 벌일 용기도 없었지만, 언젠가 정말 회사를 때려치우기 위해서는 상가를 가져서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를 받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했다. 경매 경매 경매로 나를 세뇌시키더니 빌라 하나를 낙찰받자마자 이제 상가를 해야겠다며 나를 세뇌시키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잘 모르니까 더 무서웠고, 코로나 시절을 겪으며 상가 건물들을 지나다닐 때마다 시뻘건 글씨로 임.대. 하고 내붙은 무시무시한 공실들만 떠올랐다. 그 일이 내 일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딨느냔 말이다. 그래도 몇억짜리 부동산에 입찰하려면 당연히 임장을 가야 했기에 민준은 혼자서라도 임장을 다녔다. 다행히도 나를 억지로 끌고 가진 못했다.      


처음 임장을 간 곳은 인천 영종도의 신도시, 하늘도시에 있는 상가 1층 매물이었다. 4.5억 감정가에 작은 평수 상가로 체인 편의점을 하고 있었다. 무대뽀로 일단 찾아갔는데, 매물 근처에 몇 군데는 공실이었고, 채무자가 직접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유동인구는 많은 곳인지, 손님은 많이 오는지 근처에 앉아 지켜보고 손님들이 사 나오는 걸 대충 유추해서 매출도 어림짐작해보았다.  하지만 상가 책 몇 권 읽은 걸로는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이걸 낙찰받는다고 해도 채무자가 임차인으로 변신해서 계속 이어 편의점을 운영해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주변에 역이 있는지, 학교는 있는지, 상권은 괜찮은지 같은 걸 유추해서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주택이랑 상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입찰은 하지 않고 처음 임장을 가본 것으로 민준은 만족했다.     

두 번째로 가본 곳은 부천역 주변에 있는 큰 상가건물 10층에 있는 물건이었다. 큰 평수는 아니었지만 유흥가 중심지에 있었고, 무엇보다 10번 가까이 유찰되어 2억이 넘는 감정가의 물건이 거의 10분의 1 가격이 되어 있었다. 이천만원으로 1호선 역세권 물건을 가질 수도 있다니,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꼭 가서 봐야겠다며 민준은 벼르다가 부천으로 갔다. 그렇게 여러번 유찰된 물건에는 사실 크나큰 문제가 있거나 코로나를 거치며 이자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경매에 나온 보물일지도 몰랐다.     



                

(다음 화에 계속)





*표지 이미지 출처 : 일간투데이 기사

                     http://www.dtoday.co.kr/news/articleViewAmp.html?idxno=58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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