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 성을 다하여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꽤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는 편인데, 이것들 중 몇 % 나 실제로 '분리'되어 '재활용'될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TV에서 고작 20%만 된다는 걸 본 적이 있다.) 분리수거 공장에 가서도 재활용되지 못하는 것들은 또 따로 모아서 소각되거나 아무튼 '일반쓰레기'가 되겠지.
작년 봄, 카페 알바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3시간 카페에 머무르게 되었었다. 코로나 관련 정책상 실내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이 되도록 한시적으로 변경된 시점이었다. 일하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플라스틱 컵을 비롯한 재활용 쓰레기들 정리를 하는데 그 양이 어마 무시했다. (음료 찌꺼기나 담배꽁초나 더러운 것은 대충 한번 헹구어 버리는데, 완벽하게 깨끗하지 않은 플라스틱이나 색깔 있는 플라스틱은 컵, 병은 재활용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상, 비용상, 이 많은 음료 찌꺼기 붙은 컵을 일반쓰레기에 넣을 수도 없으니 그냥 '분리'라도 제대로 해서 커피숍 건물이 있는 재활용 코너에 가져다 둔다.
비단 재활용뿐이랴. 아이를 키우면서 3년가량을 일회용 기저귀나 물티슈를 쓰지 않고 손목 희생해가며 천기저귀와 건티슈 쓰는 수고를 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 많은 똥 묻은 기저귀와 생리대, 500년간 썩지 않는다는 물티슈는 어디에서 묻히거나 태워지는 걸까. 지구 상의 수많은 인구가 하루 종일 쏟아내는 기저귀, 재활용되지 못할 플라스틱, 비닐봉지, 미세 플라스틱 같은 것들은 결국 돌고 돌아 인간의 몸속으로 서서히 아주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끝도 없고, 답답하고, 괴롭다.
2050년을 기점으로 지구가 회생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2050년이면 30여 년 뒤, 나는 60대 후반이고, 내 아이는 겨우 30대 중반, 한창때이다. 이 아이들이 살 세상은, 그리고 별일 없다면 나 역시 20~30년을 더 살게 될 그 세상은 대체 어떤 곳일까.
비건이 되는 것과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과연 정말로 그것이 답이기는 할까?
심지어 요즘엔 채식을 제외한 육류만으로 인간이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간 등 내장으로 비타민 섭취가 가능하다고 함) 완전 육식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채소나 풀에서 얻는 독성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한 것 같다. 인간이 태초부터 잡식동물로 살아왔는데 꼭 둘로 나누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선 채식을 해보고 싶은데 진짜
답인지는 약간의 의문이 남아있다.
지구 온난화는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대재앙의 징조일까?
우리는 정말 멸망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는 그중의 사소한 하나이자 시작일 뿐인 걸까?
예전에는 이런 물음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하는 쪽이었다.
비록 채식을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유리병에 찰떡같이 붙어있는 스티커를 제거하다가 빡쳐서 그냥 분리수거통에 넣어두는 쪽을 택하는 비겁한 현실주의자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주장에도 조금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비건으로 살아도 결국은 소용이 없다거나 지구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거나 하는 생각이 아니라, 멸망이 그렇게 생각만큼 쉽게 도래하진 않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책임감 없는 희미한 낙관주의랄까.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나에게 인류애라는 감정이 많아서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란 걸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믿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낙관주의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하는 것이 최종적 답이라는 극단적 해답이 될 지라도, 혹은 대재앙급의 자연재해가 계속 이어져 정말로 지구가 '자정작용'을 하게 되더라도, 그 재앙과 멸망과 비슷한 과정 속에서 소수의 선량하고 지혜로운 인간들이 선구자가 되어 어떤 식의 해답이든 찾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회의론자에서 희미한 낙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내 아이가 살아내야만 할 미래에 너무나도 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암울한 미래를 미리 가정하고 아이를 키워내야 한 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지금은 힘들긴 하지만 미래는 조금씩은 더 나아질 거란 걸, 이 세상에서 너와 함께 살아간 인류가 궁극적으로는 선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가 아닐까.
어찌 그 반대를 가정하고 어린아이를 대하며 일상의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렇다면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부모가 더 많을 테니 사람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게 된다면 부모라는 역할을 가진 어른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세상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갈까?
거기에는 답을 못하겠다.
어쨌든 현재에 지구 상에 인간이란 동물이 과도하게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하기도 하고, 그중 아주 극소수만이 인간답게 사는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기도 하니까.
포근한 침대에서 적당한 온도를 누리며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먹을 것이 냉장고에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간절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먹을 것도 고사하고 총탄을 피해 하루하루 생명이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일상인 아이들도 있으니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살아갈 날들을 위해서.
이렇게 편하게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일말의 도움은 될까?
결국 이 아이를 인류애 넘치는 어른으로 잘 키워내는 것이 지구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