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새벽 2시 반에 약간의 새벽갬성에 기대어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미뤄두었던 말을 올린 것이다.
오랜 시간 많이 고민하고 새벽 2시 반에 쓰는 글입니다.
저는 오늘부로 제 책에도 등장하는 개그맨 유 모 씨에 대한 지지를 거둡니다.
위근우 기자님 및 박정훈 기자님이 올리셨던 글을 보고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사실 작년 이맘때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 원고를 쓸 때에는 유 모 씨에게 여혐 논란이 있는지조차 몰랐었고, 최근 시작한 '팔이 피플'에 대한 유머 이전까지 혹은 그때까지도 저는 그 유머 중 어떤 부분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심각하게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지어 유머감각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를 언급했다니.. 제 손가락을 부수고 싶습니다.
'고작 그런' 걸로 일일이 '불편해하면' 인생이 너무 피곤하지 않냐?
뭐 그러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단어 선택 하나, 뉘앙스 같은 것들로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 사회는 아직 더 ×100000000, 훨씬 더, 많은 '배려의 총량'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은 명백한 차별이 되기도 하고, 명백한 '바보 인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저 웃자고 떠드는 농담에도 누군가 불편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님 말씀대로 과연 블랙유머의 소재가 그것뿐일까요?
비리 가득한 재벌이나 높은 정치가나 권력자를 빗대어 더 '멋지게' 웃길 수는 없는 걸까요?
이는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책을 내는 작가로서.. 인쇄되어 박제될 세 글자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한 전문성 부족, 그 유머랄 수 없는 유머에서 크게 잘못된 것을 감지하지 못한 섬세함의 부족,
즉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제 팔로워 중에도 이 개그맨을 팔로잉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제가 지지를 거두는 더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하신 분은 앞서 언급한 두 분의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제 글에서는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사실 '지지'라고 까지 표현할 정도의 애정은 아니었습니다. 인스타 파도 탈 때 그분이 서핑하는 동영상이 너무 자주 뜨니 한두 번 들어가 보다... 머리 비운채 웃을 수 있는 개그이기에.. 잠시 뇌를 빼두고 보곤 했나 봅니다..ㅠㅠ 원고에 쓸 때도 그러면 안 되었는데, 기계적으로 유명한 그를 언급한 모양입니다... 하..)
글을 적다 보니 진정한 '프로 불편러'로 살겠다 다짐했던, 제 첫 책<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의 일부가 떠올라 함께 첨부합니다. 다짐 잊지 않고, 더 노력하고, 반성하고, 공부하는,
그리고 '작가'라는 두 글자에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겠습니다.��
덧)
제발, 제가 2쇄에선 저 세 글자를 지울 수 있도록 책 좀 많이 사주세요. 자꾸 생각이 나 괴로워요..ㅠㅠ
이대로 가다간 첫 책처럼 다음 생에서 2쇄 찍겠습니다.
세 번째 책이 될 원고는 더 섬세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무언가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명백한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는 그리 힘들거나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종류의 일이고, 그것을 하는 데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나를 조금 더 괴롭히는 일은, 이런 식의 ‘뒤늦은 후회와 반성 또는 고백’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한 마디 쓰면 끝이냐?’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까? 하는 염려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에서 범죄자가 저지른 착각을 떠올리는, 그런 종류의 반성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의 용서나 피해자의 상태, 피해자의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느님이 날 용서해주셨어.”라며 스스로 ‘용서받았음’을 표하며 말 그대로 전도연을 미치게 만들어버린다.
베스트셀러도 아닌 책에,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 주제에,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앞서 나아가냐고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이 반성이 혼자만의 만족을 위한 반성으로 비칠까 두려웠다.
성격이 이렇게 글러먹은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날은 그냥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내 특기인 유쾌한 문체가 나오지 않는 이런 순간에는, 나는 그저, 컴퓨터를 끄고,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야기가 왜 거기로 튀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한 잔 빨고 나면,
다시 유쾌한 내가 슬금슬금 되살아나거나,
술 먹으면 영어 스피킹이 훨씬 더 유창 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본래의 나를 깨우기 위해서이다.
(응, 변명 맞음 ㅎㅎ)
사실은 나도 아주 자알 알고 있다.
나처럼 팬도 없다시피 한 안 유명한 신참 작가의 에세이 중간쯤에 등장하는 유명 연예인에 대한 이런 반성조의 언급이 이슈화되거나 큰 파장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을. 그리고 심지어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 쓴 인스타그램의 새벽 갬성 글은
아무도 2줄 이상 읽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데 어떡하나.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해지는데.
불편한 것과 내가 잘못한 것과, 잘못된 것을 고치고 스스로만 볼 글이라도 이렇게 적어두어야만 하고 생각해두어야만 하는,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가끔 생각한다.
조금 더 내려놓고, '덜 불편해하거나' '덜 예민하게'
털털하게, 혹은 능구렁이처럼, 설렁설렁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유하게 먹고살면 안 되겠냐고.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지만. 결국 답은 다시 NO다.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가끔 내로남불로 분리수거 제대로 안 하는 남편에겐 뭐라고 잔소리해도
내 몸이 피곤해 죽겠을 때는 좀 대충 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정의감 넘치는 사도로 (그렇지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