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식빵 Apr 11. 2022

INFJ의 대반성 시간

원리원칙, 고집, 가끔은 노 융통성

  

1년여 전 초여름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날이 밝기 전 새벽, 인별그램에 처음으로

장문의 글을 하나 올렸다.

무려 새벽 2시 반에 약간의 새벽갬성에 기대어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미뤄두었던 말을 올린 것이다.     




오랜 시간 많이 고민하고 새벽 2시 반에 쓰는 글입니다.

저는 오늘부로 제 책에도 등장하는 개그맨 유 모 씨에 대한 지지를 거둡니다.     

위근우 기자님 및 박정훈 기자님이 올리셨던 글을 보고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사실 작년 이맘때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 원고를 쓸 때에는 유 모 씨에게 여혐 논란이 있는지조차 몰랐었고, 최근 시작한 '팔이 피플'에 대한 유머 이전까지 혹은 그때까지도 저는 그 유머 중 어떤 부분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심각하게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지어 유머감각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를 언급했다니.. 제 손가락을 부수고 싶습니다.   

  

'고작 그런' 걸로 일일이 '불편해하면' 인생이 너무 피곤하지 않냐?

 뭐 그러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단어 선택 하나, 뉘앙스 같은 것들로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 사회는 아직 더 ×100000000, 훨씬 더, 많은 '배려의 총량'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은 명백한 차별이 되기도 하고, 명백한 '바보 인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어선 안됩니다.

그저 웃자고 떠드는 농담에도 누군가 불편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자님 말씀대로 과연 블랙유머의 소재가 그것뿐일까요?

비리 가득한 재벌이나 높은 정치가나 권력자를 빗대어 더 '멋지게' 웃길 수는 없는 걸까요?    

 

이는 내 이름 석자를 걸고 책을 내는 작가로서.. 인쇄되어 박제될 세 글자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한 전문성 부족, 그 유머랄 수 없는 유머에서 크게 잘못된 것을 감지하지 못한 섬세함의 부족,

즉 전적으로 저의 잘못입니다.


제 팔로워 중에도 이 개그맨을 팔로잉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제가 지지를 거두는 더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하신 분은 앞서 언급한 두 분의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제 글에서는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사실 '지지'라고 까지 표현할 정도의 애정은 아니었습니다. 인스타 파도 탈 때 그분이 서핑하는 동영상이 너무 자주 뜨니 한두 번 들어가 보다... 머리 비운채 웃을 수 있는 개그이기에.. 잠시 뇌를 빼두고 보곤 했나 봅니다..ㅠㅠ 원고에 쓸 때도 그러면 안 되었는데, 기계적으로 유명한 그를 언급한 모양입니다... 하..)     


글을 적다 보니 진정한 '프로 불편러'로 살겠다 다짐했던, 제 첫 책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의 일부가 떠올라 함께 첨부합니다. 다짐 잊지 않고, 더 노력하고, 반성하고, 공부하는,

그리고 '작가'라는 두 글자에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겠습니다.��     


덧)

제발, 제가 2쇄에선 저 세 글자를 지울 수 있도록 책 좀 많이 사주세요. 자꾸 생각이 나 괴로워요..ㅠㅠ

 이대로 가다간 첫 책처럼 다음 생에서 2쇄 찍겠습니다.

세 번째 책이 될 원고는 더 섬세한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무언가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명백한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는 그리 힘들거나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종류의 일이고, 그것을 하는 데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나를 조금 더 괴롭히는 일은, 이런 식의 ‘뒤늦은 후회와 반성 또는 고백’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한 마디 쓰면 끝이냐?’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까? 하는 염려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에서 범죄자가 저지른 착각을 떠올리는, 그런 종류의 반성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의 용서나 피해자의 상태, 피해자의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하느님이 날 용서해주셨어.”라며 스스로 ‘용서받았음’을 표하며 말 그대로 전도연을 미치게 만들어버린다.     

 


베스트셀러도 아닌 책에, 유명하지도 않은 작가 주제에,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앞서 나아가냐고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이 반성이 혼자만의 만족을 위한 반성으로 비칠까 두려웠다.

성격이 이렇게 글러먹은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날은 그냥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내 특기인 유쾌한 문체가 나오지 않는 이런 순간에는, 나는 그저, 컴퓨터를 끄고,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야기가 왜 거기로 튀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한 잔 빨고 나면,

다시 유쾌한 내가 슬금슬금 되살아나거나,

술 먹으면 영어 스피킹이 훨씬 더 유창 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본래의 나를 깨우기 위해서이다.     


   (응, 변명 맞음 ㅎㅎ)                     


사실은 나도 아주 자알 알고 있다. 

나처럼 팬도 없다시피 한 안 유명한 신참 작가의 에세이 중간쯤에 등장하는 유명 연예인에 대한 이런 반성조의 언급이 이슈화되거나 큰 파장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을. 그리고 심지어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 쓴 인스타그램의 새벽 갬성 글은

 아무도 2줄 이상 읽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데 어떡하나.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해지는데.

불편한 것과 내가 잘못한 것과, 잘못된 것을 고치고 스스로만 볼 글이라도 이렇게 적어두어야만 하고 생각해두어야만 하는,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가끔 생각한다.

조금 더 내려놓고, '덜 불편해하거나' '덜 예민하게'

털털하게, 혹은 능구렁이처럼, 설렁설렁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유하게 먹고살면 안 되겠냐고.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지만. 결국 답은 다시 NO다.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가끔 내로남불로 분리수거 제대로 안 하는 남편에겐 뭐라고 잔소리해도

내 몸이 피곤해 죽겠을 때는 좀 대충 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정의감 넘치는 사도로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목표를 잡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

융통성 있게, 그때그때 맞게 살고 싶은 마음이 마음대로 잘 안될 때가 많다.

피곤해도 어쩔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결론은.

'피곤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으로 태어나 버렸으니

딱히 고쳐지지도, 고칠 마음도 없으니

그런 예민한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좀 더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것이다.


운동하러 가자 식빵아!!!!!

ㅎㅎㅎㅎ




요시타케 신스케 <이게 정말 뭘까?> 중..

이전 05화 이상주의자 INFJ의 환경보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