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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pr 06. 2022

INFJ는 ‘선의의 옹호자’?

비리 사립유치원에서 쫓겨난 썰 푼다.

 

                                           

INFJ유형을 한 단어로 설명하는 단어는 ‘선의의 옹호자’ 혹은 ‘정의의 수호자’라는 멋들어진 표현이었다.


오호라, 내가 그래서 그렇게도 불의를 못 참는 정의로운 성격이었던 거지?


남편이 쓰레기 분리수거 제대로 안 하는 걸 보고 그렇게 난리를 부렸던 거란 말이지? 


여성 인권이 아직도 너무나 뒤처졌다고 생각해서 잘 실천도 못하면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울부짖고 다녔다는 거지? 


고개가 막 끄덕여졌다.

그 유형을 설명하는 말속에는 나를 혹하게 하고, 왠지 자부심 느끼게 하는 멋진 표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가장 흔치 않은 성격 유형으로 인구의 채 1%도 되지 않는다.’라든가, ‘이들 안에는 깊이 내재한 이상향이나 도덕적 관념이 자리하고 있으며,’라든가, 

‘이상향을 꿈꾸는데 절대 게으름을 피우는 법이 없으며, 목적을 달성하고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이행해 나간다.’든가 하는 표현 말이다.      


강한 의지와 분별력, 창의적인 상상력, 강한 신념, 특유의 섬세함, 사랑과 인간애, 이런 단어가 나 같은 사람의 인간 유형과 들어맞는 설명이라는데, 당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이상주의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은 이미 더럽고, 불공정하고, 망나니들 투성이지만, 그런 세상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조금씩이라도 좀 더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어나가는 것 역시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 믿음은 강한 인류애에 기반한 어떤 것이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성격이 내향성에서 외향지향적으로 많이 바뀐 편이다. 음, 좀 더 진실되게 말하자면, 외향적으로 바뀌었다기보단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가슴속에 품고만 살았던 똘끼를 좀 더 마음 편히 내보이고 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뭔가 내 마음속에 있던 인류애에 기반한 생각들이나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을 마음껏 내보일 수 있는 수단으로써 글쓰기란 것을 찾게 되면서 나의 기질이 더 잘 발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차마 앞에 나서서 차별반대 시위나 환경보호 운동이나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정도의 용기는 없지만 키보드워리어라는 속성을 잘 반영하여 글 속에서나마 품고 있던 생각들을 마음껏 휘갈길 수 있게 되었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 중 누구 하나라도 내 생각에 공감해주고 세계관에 공감해주면 그런 식으로라도 아주 작은 발걸음으로라도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2년 전인 2020년, 경기 남부의 도시로 이사 가게 되면서, 5살이었던 아이는 집 근처에 있는 사립유치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코로나라는 역병 덕분에 입학과 첫 등원은 계속 연기되었고, 아이는 5월 중순 즈음이 되어서야 유치원에 처음 가보게 되었다. 아이는 처음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했고, 유치원에 가길 좋아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이사 온 이 지역사립 비리 유치원의 대명사들이 모여있는 곳인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고, 추가로 합격했다가 좋아서 방방 뛰었던 내 아이의 유치원이 그중 하나일 것이라고는 당연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사장과 원장은 한 통속이 되어 선생님들을 모함하며 갑자기 유치원을 폐원하겠다고 밝혔다.


등원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겨우 등원을 시작하며 코로나 속 일상을 시작하게 된 학부모들은 큰 난관에 부딪혔다. 맞벌이 부모들은 갑자기 배차 간격이 늘어난 셔틀버스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느라 갑자기 당일 연차를 쓰게 되거나, 양가 부모님들께 아이를 맡겨야 했다. 또 차츰 한 아이씩 폐원절차에 맞춰 유치원을 강제반 타의 반으로 떠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학기 중에 다른 유치원/어린이집의 자리를 알아보아야 했다.

학부모 간담회에 학부모들을 불러 폐원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짓)사정을 알리며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던 유치원의 속사정은 엄청난 비리의 모습으로 한참이 지나서야 감사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즈음 항간에는 유치원 법이 개정되어 사립유치원들이 비리를 일삼기 힘들어지자 개인 사정이나 경제적 사유를 핑계 삼아 폐원한 뒤 유치원이 아니라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유치원으로 변신하여 재오픈하는 얌체들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잘 다니던 유치원을 강제로 떠나게 된 아이들이 가엽고, 유치원의 불성실하고 괘씸한 태도에 화가 난 학부모들이 일부 모여 집단소송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도 그중의 하나였고 소송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에 그 유치원 자리에 요양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 그때의 깊은 빡침이란......!!!!!!!!!!!!!!)


영어유치원으로 혹은 요양시설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더니 정말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들은 소위 코 묻은 돈보다 훨씬 돈 벌기 쉽다는 요양시설을 차리기 위하여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가며 자신들이 손수 입학시킨 아이들을 무참하게 내쫓은 것이었다.

 보통 소송한 지 1년이 지나면 소송을 시작할 때의 분노는 점차 수그러들고 일상을 되찾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학부모 단톡방은 분노로 가득 찼다. 버젓이 홈페이지를 만들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요양시설을 곧 오픈할 준비를 하는 그들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송을 진행하다 보니 교육청도 사립유치원 뒷배들과 한통속이고 소송도 진행이 뜨뜻미지근했다.    

  

사립유치원도 물론 어떻게 보면 상업적인 기관이다. 당연히 이익이 남아야 유치원을 계속 운영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교육자의 마음가짐이란 1도 없는 이런 나쁜 어른들이 유치원 이사장이고, 원장인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자라난다면, 이보다 더 암담하고 슬프고 열 받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왜 아이들 급식할 돈을 가지고 장난치고, 유치원비를 엉뚱하게 부풀려 자기 배를 채우는 나쁜 어른들이 교육자란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이지 세일러문이 소리치듯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고 싶지만’,


소송을 해도, 언론을 불러 기사를 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면 내가 대체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을 눌러 담아 글에라도 써 본다.



당신들, ‘선의의 옹호자’인 나에게 잘못 걸렸어.

 

판사님, 저는 여기서 단 한 글자도 그 유치원이 어디인지,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답니다.

 

그곳은 용인시 Suzy구에 있는 어느 작은 언덕 밑에 있는 유치원이었다는 사실만 말하겠어요.


-요시타케 신스케- <이게 정말 마음일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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