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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pr 04. 2022

37세 INFJ가 하루 3시간 카페알바 하면 생기는일

흡사 전쟁 참전 중

     

코로나가 한창 전국구 맛집이던 2021년 봄, 나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마도 나이 때문이겠지만 귀하게 얻은 몇 번의 면접에서 낙방을 거듭한 끝에 회사가 가득 들어찬 건물 1층에 있는 한 카페에서 점심 러시아워 3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뜬금없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속한 무리에서 가장 꼼꼼한 사람이었다. 여러 그룹에서 모임 약속을 잡고, 모임이 이뤄지도록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 다닐 적엔 일을 야무지게 잘한다는 평가를 늘 들었다. 결혼 전 두 군데의 작은 회사에서 만 3년을 겨우 채운 덕에 대리 한 번 못 달아보고 영원히 만년 ‘박사원’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몇 번 영어 선생님으로 파트타임 잡을 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프리랜서 개념이라 사회생활을 한다는 느낌은 적었다.      


그랬던 내가 나이 서른일곱에 다시 피라미드의 제일 아래, 커피의 ‘커’ 자도 모르는 수습 느낌의 얼빵한 아줌마 직원이 되었던 것. 내가 일하는 곳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남자 점장, 그리고 나와 동갑의 다른 여자 아르바이트생 한 명, 이렇게 세 명의 일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온갖 커피음료에 생과일주스류, 스무디며 셰이크 류, 각종 차 종류에 버블티들!!! 거기다가 디저트 빵 종류까지 메뉴가 수만 개는 되는 곳이었다. 커피 음료는 레귤러, 라지, 점보까지 세 가지 사이즈가 제공되었고, 당연하게도 종류마다 그리고 아이스/핫음료마다 에스프레소 샷 수라든지 우유량이 달라졌다. 외워야 할 음료 레시피가 글자 포인트 6 정도로 쓰인 A4용지 대여섯 장이었다.      


동갑내기인 나의 선배 아르바이트생 A 씨에게 초반에 물어보니 한 달 정도면 일이 익숙해질 거라고 했다. 한평생 내 손이 느리다거나 업무 습득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 말대로 한 달이면 모든 것이 익숙해질 거로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나는 실수를 연발했다. 셰이크에는 얼음 10개를 넣고, 스무디는 얼음을 라지 컵 가득 만큼 넣어서 갈고, 수박 주스는 얼음 17개 정도인데, 그걸 뒤바꾸기 일쑤였다. 또는 우유 스팀용 컵 사이즈를 잘못 골라 준비해놓는다거나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에는 시럽+에스프레소 샷을 먼저 저은 후 얼음을 넣고, 우유 거품을 넣어야 하는데 중간과정인 얼음 넣는 걸 깜빡하는 식이었다.      


그때부터였다.

A 씨와 점장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나는 내가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그 두 사람이 행동으로 나에게 화를 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스크 뒤에 가려진 표정은 읽지 못했지만, 분명히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뚝딱뚝딱 주문 음료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주로 초반에 얼음 컵을 푸거나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도맡았는데, 두 사람이 머들러(음료 제조용 젓는 숟가락)를 사뿐히 놓지 않고 싱크대에 집어던지다시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거나 나와는 아직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텐데도, 나를 빼놓고 둘만 대화하는 것처럼 생각되기 시작했다. 소외감이 불쑥불쑥 튀어 올랐지만, 당연히 티를 낼 수도, 낼 틈도 없이 바빴다.     


또 한 번은 조금 한가해진 틈에 점장이 아르바이트생 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어제 말이야. 그…. 2시 즈음에 자주 오시는 남자분이 그러더라고. 나 없고, 여자 직원 둘이 있을 때 누군가 내려준 커피를 마셨는데, 샷이 너무 연하고 맛이 달라졌다면서 그러더라고~. 그래서 당분간은 샷은 그냥 내가 다 내리려고.”     


나 들으라고 그러는 줄 알고 얼이 나갈 뻔했다. A 씨는 그곳에서 일한 지 1년이 훨씬 넘어서 단골들 특징 파악도 다 하고 있고, 바리스타 1급 자격증도 있는 데다가, 점장의 저 말은 누가 들어도 나를 저격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마도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이마와 귀만 시뻘게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두 사람은 커피 내리는지 몇 년 차잖아, 난 바리스타 학원에서 쪼물쪼물 머신 몇 번 만져보고, 이제 처음 실전에 투입된 건데 잘 못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      


마스크 속 내 얼굴을 숨길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을 하면서 직원 간에 건 직원 대 손님 간이건 마스크 때문에 도통 서로의 말소리를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역병의 폐해를 서비스직을 해보며 더 온몸으로 느꼈다.      


“안녕하세요. 주문 도와 드릴게요!^^”

“음…. 으이바나나쉐이크 하나랑요.”

“네??!!! 무슨 바나나요 손님??”

“키! 위! 요! 키위!!”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
 

주로 내가 했지만 어쩌다가 A 씨가 설거지하고 있을 때 내가 포스에서 아직 완전히 제조법을 숙지하지 못한 음료 주문을 받으면 내가 음료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땐 레시피 노트를 찾아 읽는 것보다 물어보는 것이 빠르기에 설거지 중인 그녀에게 물어보다가 대답하며 소리를 내지르는 통에 ‘역시나 아직도 내가 다 못 외워서 화가 났구나.’라며 생각한 것이 삼백 번 정도이다. 그녀는 내 망상대로 정말로 내가 한심했을 수도 있지만, 단지 흐르는 물소리 너머 나에게 정보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소리를 내지른 것이리라. 그즈음 그녀는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닌다고 했는데, 그래서 힘든 것이리라, 내 잘못이 맞으니 서랍하고 있자. 하며 수없이 생각했다.      

메뉴가 많은 탓에 포스기기에 메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익히고, 현금영수증 해드리는 법을 익히고, 주차 등록을 해드리는 것을 익히고, 잘못된 계산 반품 후 다시 해드리는 것을 익히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심각한 기계치, 계산치임을 미리 밝혀두긴 한다.)

난 이제 겨우 주문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레시피는 외울 새도 없었는데, 하루는 점장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제 숙달이 좀 됐으면 좋겠어요. 음료 만드는 게 너무 느린 것 같아요.”     


그때가 아마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남편에게 일하기 너무 힘들다고 고민 상담을 여러 번 했다.      


“여보, 진짜 그 두 사람이 너무 이상한 것 같아. 나는 학교건 회사건 친구들 사이에서건 37 평생 단 한 번도 이런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이나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나는 이제까지처럼 정말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정말.”      


남편은 T 유형 사람답게 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감과 위로는 개나 줘버려서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일단 네가 할 거 완벽하게 할 수 있게 해! 그러고 나서도 그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대한다고 느껴지면, 그때야 네가 말할 수 있는 거야. 말 한마디도 안 나오게 해 버리라고. 그래도 그러면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 맞는데 일단은 해 봐. 너도 참. 하루 고작 3시간 일하면서 누가 들으면 베트남 전쟁 매일매일 참전하는 줄 알겠다. 머릿속이 전시상황이야 그렇게 다른 사람 말투, 행동, 하나하나 다 분석하고 과잉 해석하고 살면 너무 힘들지 않냐?”     



베트남 전쟁이라니.

머리를 퍽 하고 맞은 듯했다.



다음 날 나는 ‘하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겠지’ 하고 생각했던 레시피를 조심스럽게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왔다. 수능 공부하던 것처럼 일일이 써가며, 다이어리 꾸미듯이 예쁜 색 펜으로 꾸미고 표로 만들어서 옆구리 툭 치면 줄줄 나오도록 달달 외웠다.     

 

“캐러멜 마키아토는 캐러멜 시럽 1.5에 설탕 시럽 1. 우유 150... 라지는 캐러멜 2에 설탕 1, 자몽에이드는 레몬 반개 착즙, 자몽 시럽 1번, 사이다 넣고, 얼음은…. 자바 칩 프라페는…. 중얼중얼….”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도 넘었다. 뭔가를 그렇게 열심히 외워본 것은 12년 만이었다. 그리고 나의 조그만 사회생활은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두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분석하고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만 초점을 맞추어 시간을 보내고 괴로워하다 보니 나는 나에게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들어오던 평가가 좋은 것이었기에 본인 자신을 편견 속에 가두었으리라. 나는 항상 적당한 방향으로 적당하게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그것이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무직으로서 업무능력, 육아나 다른 모든 일, 그리고 글을 쓰는 것과는 아예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카페에서의 일이었다.

 

그곳은 나의 대충대충 적당히 눈에 보이는 것만 먼저 해치우고 치워놓는 나쁜 습관이 거하게 들춰 보이는 곳이었고, 밖에서 보면 하찮을지는 몰라도, 정확한 숫자 계산과 동선 계산, 시간 계산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잘 못 하는 일이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공감보다 해결책을 먼저 제시해버리는 남편의 의사소통 방식이 나에게 도움 되는 일도 있다는 것. MBTI 스펙트럼에서 양쪽 끝에 있다시피 하며, MBTI 유형별 궁합 표에서 ‘최악의 관계’ 혹은 ‘그관계다시생각해보는게좋겠다.’라는 평가를 받는 그와 나에게도 어찌하면 볕 들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실낱같은 희망.      


이렇게 경력치 하나를 더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배울 점들이 존재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두 사람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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