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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P Aug 28. 2020

일방적 이별을 마주 한다는 것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있다


'만남'은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시작되지만 '이별'은 상호작용이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상대가 떠나면 더 이상 '함께'일 수 없고 우리는 이별을 마주하게 된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 존재하기는 할까?"


숭고한 희생이라던지 장수한 뒤 맞이하는 가족의 이별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이별조차도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는 아름답기보단 '슬픔'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을 꿈꾸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이미 우리는 이별은 아름다울 수 없단 것을 알면서도 첫 만남에서 그렸던 아름다운 시작 같은 마무리를 꿈꾸기 때문 아닐까.




한 번은 상대의 일방적인 잠수이별을 통보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이별이 슬펐다기보다는 통보조차 받지 못한 '일방적인 이별'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싸운 것도 니었고 아프다고 약속을 미룬 다음날 그의 갑작스러운 연락두절에 처음에는 걱정그다음엔 분한 마음그의 SNS 염탐해보기도 하 그 상황에 화가 나 밤에 잠을 자다 깨기 반복했다.


그런데 그때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다시 만나고 싶어?"

나는 허를 찔린 것 같은 친구의 질문을 받고나서야 신을 차리고 이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 시작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내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는 것. 무응답도 답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별'이미 정해졌으며 나는 이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선택' 수 있을 뿐이라는 다. 그리고 나는 작별인사조차  용기없는 그에게 더 이상 감정 낭비하지 않기로 결정다.



이별은 원래 일방적으로 찾아온다. 그것이 연인, 가족, 친구 그 누구이든 말이다. 하물며 회사 이직도 계약서에 명시된 인수인계 기간이 있을지라도 떠나겠다면 막을 수 없는 데 말이다. 때로는 그것이 내 문제 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문제일 수도 있고 누구의 잘못아니어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그렇기에 이별을 고하든 통보 받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있다.


그렇기에 "왜 이별하게 됐을까?"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검열하는데 집중하거나 이별로 인한 상처, 자기 연민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유 있는 이별도 있만 많은 이별은 일방적이며  별다른 이유가 없. 그저 상대방의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고 사고로 생겼을 수도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 떠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별 후 남겨진 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그 사람과 내가 함께할 시간이 끝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그렇기에 마음껏 슬퍼한 뒤 떠나보낼 것은 떠 보내고 남겨둘 것은 마음 한 구석에 접어두자.


오늘보다 빛날 '내일의 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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