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2학년의 고백
"엄마, 나는 떨어졌어요."
아이의 고개 숙인 모습과 그 말투가 하루 종일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먼저 말했다. 떨어졌다고.
내가 물어보고 나서 말했으면, 조금 덜 슬퍼보였을텐데, 아이는 먼저 자수하듯이 말해버렸다. 울면서 말했으면 오히려 덜 슬펐을텐데, 아이는 덤덤하게 사실을 말했다.
코로나가 4단계가 되고 말았다. 보통의 날이었으면 점심을 먹고 하교일텐데, 오늘은 점심을 먹지 않고 하교 하겠다고 아이의 담임에게 문자를 보냈다.
교문 앞은 늘 그렇듯이 아이를 픽업하러 온 엄마들이 바글바글했다. 지선이 엄마도 왔고, 은선이 엄마도 왔다.
"엄마, 오늘 나 상 받았어."
일찍 하교한 다른 반의 아이가 교문을 나오면서 자신의 엄마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상? 무슨 상일까?'
모든 엄마들이 그쪽으로 귀를 쫑긋이 세웠다. 다들 궁금한게지. 같은 학년 다른 반 아이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 그리고 더 궁금한 것은, 내 아이가 상을 탔을까, 못 탔을까..... 였을테다.
"지난번에 학교에서 그림 그렸잖아. 그거 반에서 8명 뽑아서 상 줬어."
아......그러고보니, 기억이 난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반에서 8명 시상하겠다는 담임의 카톡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그림대회 전날, 내 딸 소희는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엄마한테 보여주기가 쑥스러웠는지, 내가 보면 그리는 것을 멈추고, 내가 없으면 계속 뭔가를 그렸다.
소희가 화장실 간 틈을 타서 슬쩍 보니, 책에 있는 한 장면을 그렸다. 박을 썰고 있는 흥부와 놀부 모습인 듯했다. 너무 잘 그려서 깜짝 놀랐다. 미술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데, 이렇게까지 잘 그리다니......
내일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고도 남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소희가 가장 친한 친구인 지선이와 같이 학교에서 나왔다. 늘 그랬듯이 지선엄마, 지선이, 소희, 그리고 내가 같이 집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엄마, 나 오늘 상 받았어."
지선이가 말했다. 소희는? 말이 없다.
"와~~~ 지선이 미술학원 열심히 다니더니, 오늘 상 받았구나. 아줌마가 많이 축하해."
소희는?
"엄마, 나도 상 받았어."라는 말을 기다렸는데, 지선이랑 헤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나는 떨어졌어요."
지선이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자마자, 소희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가 먼저 물어보기도 전에.
나도 충격이었다. 소희가 떨어질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 딸이 어떤 딸인가? 뭐든지 잘하고 뛰어난 아이였다. 받아쓰기는 물론이거니와 수학도 늘 만점을 받는 아이였고, 반에서도 뭐든지 가장 잘하는 아이로 통하는 아이였다.
담임도 나에게 소희같은 딸을 두셔서 너무 부럽다고 말할 정도의 아이였는데, 무려 8명이나 뽑는 대회에서 떨어지다니....... 초등학교 2학년이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상이였는데.
아이처럼 상 못 받았다고 징징대며 울었으면, 이보다 마음이 덜 아팠을텐데...... 소희가 좋아하는 배스킨라벤스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맘을 달랬으면, 소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헤~~ 거리고 웃으면서 지나갔을텐데.
이제 겨우 초등 2학년 아이가 존댓말을 쓰면서 떨어졌다고 하니, 어미의 마음은 찢어졌다.
"소희야, 소희는 원래 그림을 잘 그렸는데, 왜 떨어진거 같아? 혹시 그 이유를 알아?"
"엄마, 제가 생각하기에는..... 음...... 색칠을 너무 흐리게 한 것 같아요."
"색칠?"
그랬구나, 그래서 떨어진거구나. 소희는 늘 색칠을 한듯 안한듯 흐리게 칠했다. 진하게 칠하라고 해도, 이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늘 흐리게 칠했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왜 소희가 상을 못 받았는지.
"그랬구나, 색칠만 진하게 칠했으면 우리 소희도 상을 받았을텐데, 너무 아쉽다. 그렇지? 다음에는 꼭 색칠을 진하게 해서 다시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