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양보다 질이라지만 질은 관리하기 어렵고 양은 상대적으로 쉽다. 도대체 몇 시간 자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은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의견이 대립해서라기보다는 굳이 알아낼 필요도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시간은 다를 게 뻔하니 시간에 집착하지 말고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 쓰라는 의미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남는다. 어쨌든 우리는 '얼마나 잘 것인가'를 매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일정이 잡힌 전날 갑자기 '수면의 질'을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은 '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제안이 있다.
◆"7시간 수면 시 학습능력 최고조"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이상적 수면시간은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8∼10시간이다. 어릴수록 좀 더 오래 자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늘이는 것이 특히 '학습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본 연구가 발표돼 관심을 끈다.
브리엄영대학교(Brigham Young University) 연구팀은 학술잡지 'Eastern Economics Journal'에서 16∼18세 청소년의 학습능력이 가장 이상적으로 발휘되는 수면시간은 7시간이라고 주장했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의 경우 '몸이 원하는 만큼 자야 한다'라고 권하는 일반 지침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라 전문가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이들을 더 적게 재워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건강한 식사에 대한 지침이 '먹고 싶은 만큼 먹어야 한다'라면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연구팀은 미국 학생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수면시간과 학업성적에 대한 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연구결과 만 10세 어린이의 이상적 수면시간은 9∼9.5시간으로 분석됐다. 최소한 '학업성적'이 가장 좋게 나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12세는 8∼8.5시간, 16∼18세는 7시간이다. 이보다 오래 잘 경우 학업성적은 오히려 나빠졌다. 결론은 '오래 잘수록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로 정리된다.
◆짧아지는 현대인의 잠
이번 연구를 '학술'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자면 결국 '피곤 풀릴 때까지 충분히 자서는 시험을 잘 볼 수 없다'는 매우 슬픈 메시지가 된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선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이 '경제학자'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의학자들의 의견은 좀 다르다. 의학잡지 소아과학(Pediatric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각 학술단체의 권장 수면시간은 해마다 0.73분씩 감소해왔다. 호주 연구팀은 1897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된 각종 수면 관련 지침을 취합해 분석했다.
이 결과에 대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의 의과학자 팀 오즈는 "수면 전문가들의 말을 절대 믿어선 안 된다. 어떤 아이는 7시간에 가장 훌륭하고 어떤 아이는 11시간일 수도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너무 부족한 잠은 비만이나 우울증,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인자가 될 수 있음도 강조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실제 수면시간은 언제나 권장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감을 표했다.
◆"7시간이 짧다고? 글쎄…"
국내 의사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일단 이상적인 수면시간은 '타고난 것'이라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앞선 연구결과인 '7시간'을 받아들이든 일반적 권장시간인 '9시간'을 택하든 현실적으로 우리 청소년들의 수면시간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게 문제로 꼽힌다.
윤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은 깨어있을 때 얻은 정보나 학습내용을 잘 정리하고 다듬어 장기적 기억으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며 "수면시간이 부족할 경우 학습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면은 학습능력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잠을 잔다는 것은 피로 해소와 함께 낮 시간에 축적된 유해물질을 분해하는 과정인데, 이것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신경이 예민해지고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등 감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앞선 경제학자들의 '이상적인 수면시간'은 미국 현지에서 "이 연구 때문에 아이들의 수면시간을 줄여선 안 된다"는 논란을 낳고 있다. 우리는 조금 다르게 해석해도 될 듯하다. "고3 학생을 7시간만 재우십시오"라는 말은 한국과 미국에서 전혀 반대의 뜻이 되기 때문이다. 2009년 한 수면전문센터가 고3 수험생(만 17세) 5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생 63.6%의 수면시간이 하루 평균 5시간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