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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Mar 19. 2019

박근혜정부 돌아보기⑦ 세월호-1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 참사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표면적으로는 무관하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을 담았지만, 헌법재판소는 그것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어쩌면 그것은 전부였다. 세월호 참사 때 박 전 대통령이 행한 일련의 행동들과 그로 인해 불거진 의혹들에 국민은 분노했고, 대통령은 그 목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최순실은 ‘촉매제’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을 왜 구조하지 못하느냐는 한마디에서 탄핵은 시작된 것 아니었을까. 이후 박 전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어떤 정략적 판단을 했으며, 어떤 음모와 전략을 마련해 실행에 옮겼는지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은 그의 7시간을 분단위로 파헤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국가적 재난은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며, 우연히도 그때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게 된 한 개인의 ‘인생이 응축된’ 순간적 판단은 자신의 앞날은 물론, 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며칠 동안 박근혜 청와대는 분주히 움직였다. 그에 대한 평가를 별개로 하고, 어쨌든 그들은 나름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했다. 구조되지 못한 수백 명의 국민이 결국 사망한 게 분명해진 2014년 4월 말, 박 전 대통령은 적폐라는 단어 하나를 던졌다. 세월호 침몰은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달라져야 한다고 모두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것을 '적폐'라는 다소 생경한 단어로 표현했을 뿐, 박 전 대통령의 의도도 최소한 그때는 그랬을 것이다.>


사진=아시아경제

적폐(積弊)와의 전쟁과 朴대통령의 상황인식

아시아경제. 2014년 4월 30일 자.


'적폐를 도려낸다.'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세월호 피해자 합동분향소 방문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적폐'라는 단어를 반복 사용했다. 한자로 '積弊',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란 설명을 굳이 덧붙여야 하는 이 어려운 단어에는 박 대통령이 가진 쉽지 않은 고민이 숨어 있다. 일단 박 대통령은 낯선 단어 하나를 '툭' 던짐으로써 일차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은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대화한 10여분 동안 딱 두 번 완성된 문장으로 말했다. 하나는 박준우 정무수석을 현장에 남겨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였고 나머지는 바로 "그동안 쌓여온 모든 적폐를 도려내겠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정신없이 애원과 호소를 쏟아내는 상황에서도 던져야 할 메시지는 분명히 던진 것이다. 이어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겹겹이 쌓여온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 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사회가 방치해온 안일함 즉 원칙을 무시하며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하고, 내실보다는 속도와 성장에 치중했던 가치관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라는 데 많은 국민들이 동의한다. 초동대응 실패도 관계 기관들이 그동안 쌓아온 것의 발로이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무능력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분노가 청와대를 향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의도로 보인다. '취임 14개월 된 현직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며 선을 그으려는 뜻에서 나온 단어가 적폐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29일 대국민사과를 내놨으나 '잘못을 통감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중략)


국가개조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식은 세월호 구조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잡힐 것이지만, 6월 4일 있을 지방선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예고된 대로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 국민안전마스터플랜 발표 등은 지방선거 이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의견, 국가개조의 비전 등을 담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기로 하고 그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밝혔다.


일련의 작업을 '선거용 전략'이라 폄하할 수 있으나, 지방선거에서 완패할 경우 국정운영 동력이 급속히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세월호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 박 대통령이 적폐를 도려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지 혹은 현 정부 자체가 적폐의 마지막 일부로 낙인찍혀 서서히 침몰할 것인지는 세월호 구조작업의 성과, 현 정부가 내놓을 후속 대책의 정밀함, 6ㆍ4 지방선거 그리고 국민의 현명한 판단에 달려있다.




<세월호 참사를 '적폐'라 정의할 때 원인은 자연스레 과거의 것이 된다. 국민은 정부의 실책을 질타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제3자이길 자청한 것이다. 그렇게 박 전 대통령은 '개조자'가 됐고 국민은 '개조당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단어 한 두 개로 상황을 뒤집는 박 전 대통령의 능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개조 당해야 할 첫 대상으로 박 전 대통령은 유병언을 꼽았다. 세월호 참사의 1차 책임은 현 정부의 무능이 아니라 오랜 기간 쌓이고 쌓인 적폐의 응축물, 그 배를 불법으로 개조하고 운영한 유병언에게 있으며, 이제 국민과 국회의 분노는 청와대가 아니라 반드시 검거해 구상권을 청구해야 할 유병언을 향해야 한다고 박 전 대통령은 지시하고 있었다.>


朴대통령 "모든 수단 강구해 유병언 法 심판받게 해야"

아시아경제. 2014년 6월 10일 자.


박근혜 대통령은 도피 중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해 "지금까지의 검거 방식을 재점검하고 다른 추가적인 방법은 없는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서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10일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유병언 검거를 위해서 검경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



<유병언이 (사망 상태로) 검거되고 박 전 대통령의 ‘국가개조'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그 작업과는 별개로 국정은 일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박 전 대통령은 생각했다. 국민은 여전히 슬픔에 빠져있고 유가족들은 오열하는데, 박 대통령은 놀라운 속도로 냉정함을 되찾았다. 국가 지도자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는 세월호고 민생도 안보도 챙길 건 챙겨야지 않겠느냐, 언제까지 우리가 슬픔에만 잠겨 있어야 하느냐고 그는 속으로 수십 번 반문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를 언급하는 사람을,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쪽을 ‘국정 발목을 잡는 반체제적, 반국가적 정략 무리'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정치로부터 악착스럽게 분리하려던 그들, 세월호를 가장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이 아니었을까.>


사라진 정치, 침묵하는 대통령

아시아경제. 2014년 8월 21일 자.


대화와 타협, 조율이라는 민주적 절차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실종됐다. 그리고 현실정치의 한가운데 있어야 할 대통령은 집무실에 앉아 시민의 광장으로 나오길 거부한다. 국가적 참사에서 딸을 잃고 39일째 단식 중인 아버지의 면담 신청을 박근혜 대통령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여야는 합의와 파기를 반복하고 있고 유가족들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야당 대표를 문전박대했다.


21일 청와대는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을 유가족들이 전날 거부한 것과 단식 중인 김영오 씨가 같은 날 신청한 대통령 면담요청에 대해 새로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을 '셀프' 종료하고 경제민생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뒤 이 사안에 대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대통령이 (단식 중인) 김영오 씨를 만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오전 쏟아지는 빗속에서 단식하며 대통령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김 씨에게 '면담 거절'이란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고 민 대변인은 전했다. 대통령이 뚜렷한 해결책을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보다는 만남 자체를 회피하거나 무시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청와대는 "무슨 일만 있으면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 정상적이냐"고 반문한다. 또 법률 제정은 의회의 몫이며 대통령은 간섭해선 안 된다는 원칙도 내세운다. 그러나 이미 의회로 넘어간 법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의견을 피력하거나 처리를 압박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특정 법안을 정부안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적도 있다.


특별법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유가족에 대해 "요구가 지나치다"는 부정적 여론이 강해진다면 박 대통령의 침묵은 성공한 정치적 판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김 씨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와 단식에 동참하는 정치인들의 행보가 시민사회로까지 확산된다면 박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든 광장으로 떠밀려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고 침묵하는 대통령의 심정을 대변인은 긴 한숨으로 대변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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