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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Apr 03. 2024

예쁜 색깔의 양심우산


 아침마다 하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일기예보 확인하는 일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꼭 일기예보를 확인합니다. 막내딸 옷을 어떻게 입힐지 고민하면서 기온을 확인하기도 하고, 비 소식이 있나 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비 일기예보가 제일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셋이 있어요.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요. 셋다 다 다른 학교다 보니, 비가 오는데 우산을 안 갖고 갔을 경우에는 맘을 조리게 됩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비가 왔습니다.  

 아침에 창문 밖을 보니, 안개도 많이 끼고 우중충한 게 꼭 비올 날씨인데 말이죠. 일기예보에는 우산 그림이 없었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우중충한가 보다 하고, 아이들에게 우산을 안 가져가도 된다고 했죠. 아뿔싸, 아침 9시부터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합니다. 점심이 됐는데도 계속 내립니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고등학생 아들.

 7교시하는 금요일이니까, 저녁 5시나 되어 학교가 끝납니다. 그때쯤 되면 비가 안 올 것 같기도 해요. 여차하면 고등학생씩이나 되는데. 학교 바로 앞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사서 집에 오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건 다 혼자서 하려고 하니까. 덜 걱정입니다.


 중학생 아들.

 우산이 있어도 우산을 안 쓰는 중학교 남학생. 우리 집 아들내미입니다. 비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씁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우산을 써도 가방과 신발이 다 젖어서 옵니다. 우산을 어떻게 쓰는 건지, 옷도 다 젖어서 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일 때는 손에 우산을 든 채, 그냥 접힌 우산을 들기만 한 채, 걸어 다닙니다. 비는 그냥 맞으면서요. 그래서 중학생 아들은 전혀 걱정이 안 되네요. 이래저래 우산의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요.


 초등학생 딸.

 제일 걱정입니다. 학교 앞에 가서 기다릴까도 생각해 봤어요. 비가 그칠 것 같기도 하고. 하교할 때마다 전화하는 딸이기에. 우선은 전화를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우산이 필요하면 엄마가 바로 갈 테니, 학교 도서관에서 잠깐 책 읽고 있으라고 말할 참이었어요. 전화가 옵니다.

 "엄마, 학교 끝났어요."

 아직 저학년이라 얘기 목소리로 '엄마, 학교 끝났어요.' 하는 말소리가 너무 예쁩니다. 오전의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비 오지? 엄마가 지금 우산 갖고 학교로 갈까?"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괜찮아요, 엄마. 방금 막 양심우산 빌렸어요."


 맞아요. 요즘에는 학교마다 양심우산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로 예쁜 우산입니다. 우산마다 번호표가 달려 있습니다. 양심우산을 가져갈 때마다 우산 대여장에 몇 번 우산을 몇 학년 몇 반 누가 가져갔다고 삐뚤빼뚤 귀여운 글씨로 쓰더라고요.


 막내딸이 처음으로 양심우산을 혼자서 빌려 집에 온 날이었습니다. 막내라 그런지 모든 게 다 귀엽습니다. 막내딸이 집까지 쓰고 온 양심우산도 귀엽습니다.


 비 온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등교시간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맑은 아침이었어요.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에 전부 무지갯빛 양심우산이 들려있는데, 너무 귀엽더라고요. 지난주 금요일에 많은 친구들이 양심우산을 빌렸었나 봐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양심우산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갑자기 비가 오면, 엄마가 우산을 갖고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저희 엄마도 아침마다 하늘을 보시거나, 뉴스의 일기예보를 보시고는 접는 우산을 항상 가방 속에 넣어주셨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직접 우산을 갖고 오셨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비가 갑작스레 내릴 때 빼고는요.


 우산 들고 학교 앞에 서있는 엄마의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예쁜 색깔의 양심우산이 그 역할을 뺏어갔네요. 덕분에 저는 편하게 집에 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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