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제목이 '걸어서 다이소에 가기'가 되었네요. 다이소가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에요. 처음으로 걸어서 다이소에 다녀왔습니다. 중요한 건 '걸어서'입니다.
다이소에 종종 들립니다. 문구류의 종류가 제법 많거든요. 아이들이 연습장과 볼펜 등 필요한 학용품을 사달라고 주문했고, 저도 마침 고무장갑이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항상 차를 타고 다이소에 갔습니다. 원체 걷는 걸 싫어하는 성격도 있었고, 후딱 차 타고 일을 봐야 시간을 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의적, 타의적, 여러 복잡 미묘한 이유로 차를 운전하지 않으려고 한 참이었거든요. '까짓것 차 안 타고 걸어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걷는 걸 싫어했지만. 체력의 급격한 감소를 몸소 겪고 있던 참이라서, '걷는 운동이라도 조금씩 해야겠다.'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차로는 5분 거리였지만, 걸어서는 30분 정도 되는 거리의 다이소였습니다.
아침도 든든히 먹고, 운동화 끈도 다시 꽈악 묶고, 비장한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요즘 밖에 나가보셨어요? 저는 집순이라서 잘 못 느꼈어요. 세상에, 봄이 너무 예쁘게 와있더라고요. 저희 동네 가로수는 벚꽃 나무예요. 게다가 지금이 벚꽃 나무의 절정이라도 되는지, 세상이 온통 분홍색이었습니다. 나무도 분홍색,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비도 분홍색, 떨어진 벚꽃으로 거리도 분홍색이고요
이 동네에 산지 3년이 넘어가는데, 4월에 다이소를 처음 가봤겠어요. 여러번 지나다니던 봄날의 동네입니다. 그런데 동네가 낯설면서도 예뻤습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었네요. 4월의 거리를 차만 타고 지나갔지, 걸어서 느긋하게 가본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출발할 때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 있어서, 다급히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5분이 지나자 걸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벚꽃나무도 찬찬히 구경하고, 새로 생긴 커피숍도 둘러보고, 과일가게에서 파는 딸기 가격도 비교해 보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요. 다이소 가는 길목에 중학교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어요. 제가 길치라서 우리 동네에 있는 중학교 이름과 지도상의 위치는 아는데, 실제 위치는 잘 모르거든요. 마침 체육이었는지 운동장에 아이들 소리로 활기찼습니다.
벚꽃나무와 아이들의 소리로 괜스레 제 마음도 설렙니다. 중학생 소녀로 돌아간 느낌도 나고요. 아침에 딸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거든요. '엄마, 벚꽃비가 내릴 때 벚꽃 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데.' 네, 아줌마가 떨어지는 벚꽃 잎 한 장 잡겠다가 잠시 요란한 소동도 조금 벌였습니다. 다행히 거리에는 사람이 없을 때였어요. 순발력이 떨어지는지, 바람이 요리조리 불어서인지. 벚꽃 잎은 결국 못 잡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 30분이면 일이 끝났을 여정이었는데, 걸어서 두리번거리며 갔다오다 보니 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시간이 아까워서 속을 끓였을 텐데, 이제는 안 그러려고 합니다. 3년 넘게 산 동네의 벚꽃을 처음으로 느긋하게 가까이 봤다는 사실에 안타깝기만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제라도 안 게 어디예요. 이제는 계속 걸어 다니려고요. 여름의 거리와 가을의 거리와 겨울의 거리도 온전히 느껴보려고 합니다. 차를 타고 창밖으로 쌩하니 지나가는 풍경은 봄날의 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찬찬히 걸으면서 냄새도 맡고 여유롭게 보는 풍경이 진짜 동네의 모습이지요.
2시간을 걷다 보니 종아리에 알이 배겨 아프기는 하지만, 소중한 걸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