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있다.
소설, 인문학, 원서, 동화책 같이 내용의 성격에 따라 나눈 분류도 있지만, 책의 형태에 따른 종류도 있다. 도서관에는 일반 서적 외에 점자책과 큰 글자 도서가 있다. 같은 내용의 책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책 외에도, 점자책과 큰 글자 도서로 또 있는 것이다.
큰 글자 도서를 처음 알게 된 건 작년이었다. 60대의 엄마가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의 크기가 A4 용지만큼 커다란 크기였다. 무슨 이런 책이 있냐고 웃으면서 물어봤다. 엄마는 눈이 침침해서 책을 보고 싶어도 읽지를 못했는데, 도서관에 갔더니 큰 글자 도서가 있었다면서, 반가운 마음에 가져왔다고 하셨다. 돋보기가 있어도 글씨가 작은 책은 읽기 힘든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다 오늘 큰 글자 도서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최진영 작가님의 '이제야 언니에게'를 찾고 있었다. 분명 813-최79ㅇ 에 책이 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책이 없었다. 아직 대출하지 않은 채, 도서관 책상에서 누군가 읽고 있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책장에서 책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있었다. 책의 청구기호를 다시 짚어가며 찾고 있을 때, 다른 점이 보였다. 같은 책이 두 권 있는 줄 알았는데, 같은 책이지만 다른 책이었다. 하나는 '813-최79ㅇ' 이였지만, 다른 하나는 '큰 글자 813-최79ㅇ' 이었다. 언제 생긴지도 모르게, 큰 글자 도서만 모아놓은 서가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책들이 아닌, 연습장 만한 크기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는 곳이었다. 책을 펼쳐보니 글씨 크기가 큼직큼직했다. 최진영 작가님의 '팽이'나 정세랑 작가님의 '옥상에서 만나요' 같은 책은 원래 한 권이었던 책이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기도 했다.
큰 글자 책은 말 그대로 큰 글자로 되어 있어서 눈에 편하게 읽혔다. 작년에 큰 책을 읽는 엄마를 보고 할머니 다 됐다며 짓궂게 놀리기도 했었는데. 괜히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건을 살 때면 제품의 성분표시를 보기 위해, 언젠가부터 제품을 들고 멀찌감치 떨어트려 읽기 시작했다. 막내가 공책에 쓴 자신의 글을 보여주려고 내 눈앞에 가져다 놓을 때면, 공책을 잡은 막내의 손을 내 눈앞에서 더 멀찌감치 떨어트려야 글씨의 형태가 또렷이 보이게 되었다.
노안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나이가 들어 시력이 나빠짐을 뜻한다고 하던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몇 살을 이야기하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태어나면서부터 드는 게 나이일 텐데. 같은 나이에도 또렷한 시력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벌써부터 눈이 침침해지고 쉽게 피로해진다.
한참 멋 부릴 나이일 때도, 눈을 아낀다고 콘택트렌즈는 중요한 날만 꼈었고. 친구들이 라식이니 라섹이니 시력 조정을 할 때도, 눈이 쉽게 건조해지는 나의 눈 건강을 위해 하고 싶은 눈 수술도 꾹 참았었는데. 벌써부터 노안이 와서 큰 글자 도서가 편하게 읽히는 상황이 되니 씁쓸했다.
큰 글자 도서는 일반 도서보다 비교적 새 책처럼 깨끗했다. 노안이신 분들이 책을 읽기가 힘들어서 많이 읽지 않아 깨끗한지. 큰 글자 도서를 도서관에 들인 날짜가 비교적 최근이라 깨끗한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깨끗한 도서관 책을 보면 더 기분 좋게 읽히는 탓에, 오늘은 도서관에서 7권을 모두 큰 글자 책으로 대출했다.
글씨가 작은 책 보다 눈이 편하게 글은 읽혔지만, 책을 읽다 보니 엄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엄마는 큰 글자를 읽어도 어지럽게 읽힌다고 했는데. 나보다 더 노안이신 엄마와 아빠들을 위해 비교적 어린 내가 큰 글자 책을 오래 갖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불편함과 죄송스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루 만에 다 읽고 내일 바로 반납을 해야겠구나.
노안이 벌써 찾아온 내 눈을 생각하면 속상했고. 큰 글자 책은 글자가 커서 편했고. 하지만 40대의 내가 오래 갖고 있기에는 약간은 불편하고 죄송스러운 복잡 오묘한 큰 글자 책이었다. 책도 예쁘고, 큰 글자도 예뻤다. 내용이 더 잘 읽히는 편리함도 좋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노안이신 분들의 독서를 위해 얼른 도서관에 갖다 놔야겠다는 의무감이 갑자기 생겨버렸다. 큰 글자로 쑥쑥 잘 읽히니, 어서어서 하루 종일 책만 읽고 내일 모두 반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