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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Oct 30. 2020

한 우물만 팠어야 했나요.

여러 우물을 판 게 잘한 일일까요.

 3D 프린팅, 빅데이터 분석. 올해 하반기에 들었던 두 개의 수업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무료수업이었습니다. 경력 단절된 이공계 여성을 위해 지원해주는 사업이었어요. 제 전공은 유전공학이라 전공과는 무관한 수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던 분야라 기회가 주어질 때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15년 만에 들어보는 수업이라서 좋았고요. 평소에 알고 싶었지만 엄두가 안 났던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기에 더 좋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실시간 수업을 하다 보니 화상수업이라는 신문물을 접해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오랜만에 과제를 작성해 제출도 해보았습니다. 5분 미만이지만 온라인 상으로 파워포인트를 띄어놓고 발표도 했습니다. 과제와 발표 준비는 모두 학창 시절에 귀찮고 지겨운 과정이었어요. 그런 과정들을 지금 와서 하려고 하니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했습니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했고, 무사히 수업을 끝냈습니다. 두 장의 수료증도 발급받았습니다.


 좋기만 했던 수업 과정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이 수료증을 사용해야겠습니다. 지금은 통장에 입금이 없는 상태니까요. 예전 같으면 수료증으로 만족하고 끝났을 거예요. 수업 중간중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강사가 모자란다고요. 전문가가 아니라도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바로 강사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순진한 저는 곧이곧대로 들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은 거의 관련 직종에 있던 분들입니다. 빅데이터 수업 같은 경우는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분들이 많았어요. 3D 프린팅은 캐드를 전문적으로 다루셨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저는 문서 작성할 때만 컴퓨터를 사용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수업을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가는 것만으로 기특했어요. 그런데도 강사가 모자란다는 말에 혹 했습니다. 수업 중간에 과학 캠프의 보조강사를 모집하는 공지가 떴습니다. 보조 강사라서 수업을 수료하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용기만 많은 저는 지원을 했습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노력과 열정은 넘치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꽝이었습니다. 생각해봐도 당연한 결과예요. 전공도 무관하고, 경력도 무관하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경험도 전혀 없으니까요. 


 한 우물만 팠어야 했을까요. 괜히 이것저것 다 건드린 걸까요. 생각해보니 참 여러 우물을 팠습니다. 6년을 전공했던 유전공학은 연구소에서 딱 3년만 써봤습니다. 그 외에는 전부 다른 우물을 팠어요.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원서 번역을 공부했고. 책 읽기가 좋다고 사람도 안 찾아오는 블로그에 10년 동안 서평만 써왔고. 부동산을 해보겠다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고. 약사가 되겠다고 peet 공부만 했고. 강사를 해보겠다고 3D 프린팅을 배웠고. 빅데이터를 분석해보고 싶다고 파이썬을 익혔습니다. 잘 살펴보면 우물을 제대로 파지는 못하고 우물을 파려고 웅덩이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대로 된 깊은 우물은 없고 여기저기 얕은 웅덩이들만 많아졌어요. 그래서 돈을 벌려고 하니까 사용할 수가 없나 봅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움직이기만 했나 봐요. 취미로만 생각하고 이것저것 할 때는 자기만족이 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돈벌이로 전환하려고 하니까 바로 적용 가능한 게 없었습니다. 조금 더 깊게 웅덩이를 파도 가능성이 보일까 말까입니다. 얼마 전에 이력서를 낸 분야도 결국은 6년을 할애했던 제 전공분야였으니까요. 


 사실은 어제 커피 쿠폰을 받았습니다. 3D 프린팅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 학생으로 선정되어 받은 쿠폰입니다. 좋았던 순간은 커피 쿠폰 문자를 받은 그 순간뿐이었습니다. 커피 쿠폰은 있지만, 취직 자리는 제게 없으니까요.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열심히만 한다고 세상사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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