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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Sep 21. 2022

사망 진단서


  일을 하다 보면 환자의 동의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환자와 직접 만나 동의서에 사인을 받고, 직접 만나기 어려운 환자와는 우편으로 동의서를 보내 사인을 받기도 합니다.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4달 넘게 연락이 안 되는 부부였어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메일도 안 읽으시고요. 그러다가 아내분과 겨우 연락이 닿았습니다. 아내분은 직접 오기가 힘들다며 우편으로 동의서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아내와 남편 모두 사인을 한 동의서를 병원으로 다시 보내기로 했고, 아내분은 별말씀 없이 간단히 알겠다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동의서가 등기로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분이 보내온 동의서에는 남편의 사인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사인만 있었어요. 대신 남편의 사망진단서 한 장이 있었습니다.


 몇 분 정도를 멍하니 있었나 봅니다. 처음 접해보는 사망진단서라는 서류로 모든 사고가 잠시 정지된 느낌이었습니다. 


 난임센터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난임센터는 아이를 갖기 위해 난임부부들이 찾는 곳이에요. 가끔은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기 전에 건강한 난자와 정자를 미리 냉동하려고 찾는 분도 계십니다. 암이 완쾌된 후에는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에 냉동했던 난자와 정자로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해 오시는 분도 계시고요. 


 그날 사망진단서와 함께 동의서를 보낸 아내는 남편의 암이 완쾌된 후 냉동 정자로 시험관 시술을 하다가 갑자기 중단했던 분이었습니다.


 사망진단서를 서류와 함께 동봉했던 아내의 마음을 제가 감히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내일 죽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조용히 집에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위인이 되지 못합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내일 죽는다면, 지금 이렇게 애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허무하기만 할 것 같아요. 어차피 이렇게 죽을 걸, 왜 그렇게 애쓰면서 참고 살았을까.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 것 같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 걸.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걸. 참지 말고 살걸. 이런 후회를 더 많이 할 것 같아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말을 들으며, 오늘을 정말 열심히 살아야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글귀도 같은 맥락으로 힘차고 보람되게 하루를 살아야 된다고 이해하며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만이 정답일까요. 애쓰면서 사는 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일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이제는 힘을 빼고 살고 싶습니다. 애쓰면서 살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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