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사례를 각색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여아를 키우고 있어요.
남편은 집에서 아주 편한 옷차림으로 있는데 한번씩 샤워 전후 등 속옷만 입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어느날 아이가 아빠의 그런 모습이 불편하다고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그러는거 아니라면서.
요즘 아이들이 성적으로 조숙하기도 하고 성정체성에 눈뜰 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잠깐 속옷차림으로 있는게 무슨 문제냐고 벌컥 화를 내더라고요.
오냐오냐 했더니 아주 지 중심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줄 안다면서요.
저는 아이 말에 더 공감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아빠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엄마로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남편에게 전달했는데 오히려 남편분이 화를 내셔서 중간에서 난감하고 힘든 상황이시겠어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라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내 몸은 소중해', '좋은 만짐과 싫은 만짐', '나의 사적인 공간과 타인의 사적인 공간 존중' 등 성교육의 기초적인 내용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아이가 아빠의 속옷 차림에 불편함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교육을 통해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사적인 영역이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노출하거나 보여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개념을 배우고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남편분께서 "잠깐 속옷 차림으로 있는 게 무슨 문제냐", "오냐오냐 했더니 지 중심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줄 안다"고 반응하신 것은, 아마도 본인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편하게 있고 싶다는 생각과 성인이 가족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있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의 요구가 자신의 편의를 침해한다고 느끼거나, 아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냐오냐' 했다는 표현에서 아이의 요구를 응석으로 치부하는 마음도 엿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인의 관점에서의 '괜찮음'이 아니라 아이의 발달 단계와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입니다. 아이는 이제 막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에 대한 경계, 그리고 사생활의 중요성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의 모습이 아이에게 성적인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가 배운 '경계'의 개념과 맞지 않아 혼란이나 불안감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가족 간에도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에게 건강한 성 인식을 심어주고,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남편분과 다시 차분하게 대화해 보세요.
이번에는 아이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아이가 현재 배우고 있는 성교육 내용과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집중해 보세요.
"여보, 아이가 유치원에서 자기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몸도 존중해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대. 옷으로 가려진 부분은 아주 사적인 부분이라서 가족끼리도 함부로 보여주거나 보는 게 아니라고 배웠나 봐. 그래서 여보가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배운 거랑 달라서 좀 혼란스럽고 불편했나 보더라고" 와 같이 아이의 입장에서 왜 그렇게 느꼈을지 설명해주세요.
이것이 아이가 예민하거나 응석 부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성 인식을 형성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시켜 주세요. 부모가 아이에게 건강한 경계를 가르치고, 부모 스스로도 그 경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 나누세요.
아이의 감정을 지지하고 강화해주세요.
아이가 자신의 불편함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은 매우 잘한 행동임을 칭찬해주세요. "네가 아빠 모습 보고 불편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네 감정은 아주 중요해" 라고 말해주면서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지지해 주세요.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내용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세요. "네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옷으로 가려진 몸의 부분은 아주 소중하고 사적인 곳이야. 그래서 함부로 보여주거나 다른 사람도 함부로 보면 안 되는 거야. 네가 배운 게 맞아" 라고 말해주면서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세요.
엄마는 아이의 편이며, 아이가 느끼는 불편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