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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흰돌 Nov 01. 2023

태몽에는 물범이 나왔다


  난임 검사를 마치고 첫 번째 과배란 시도에서 나는 대번에 임신이 되었다.


  눈을 부릅뜨고 봐도 항상 한 줄만 보이던 임신테스트기에서 흐릿하게나마 처음으로 두 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됐다, 됐어!

  나는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춤을 췄다.


  지정된 날짜에 병원에 방문하여 피검사를 하자 200대 초반의 수치가 나왔다. 시기에 맞는 적절한 수치라는 설명도 들었다.


  매일 눈을 뜨는 일이 즐거웠다. 뱃속에 아기집이 생기고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익숙하던 세상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관련된 책을 구입하는 사람답게 인터넷 서점에서 임신출산육아 대백과 책을 사고 임신 과정과 태교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어느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 나는 꿈을 꿨다.


  나는 통나무를 켜켜이 쌓아서 만든 오두막 집에 앉아있었다. 벽난로에서 나오는 불빛은 따사로웠고 담요를 두르고 앉은 흔들의자는 안락했다.


  그때 누군가 나무로 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세 번의 노크가 있고 나서 나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물범이 두 발로 서 있었다.


ⓒ2023. delight.H(https://www.instagram.com/delight.hee/). All rights reserved.



  물범은 귀여운 앞발로 집 안을 가리켰다. 집에 들어와도 되냐는 뜻 같아서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범을 집에 들이기 전 무심코 그 뒤를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물범은 맨 앞에 선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두 마리는 됨직한 물범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우리 집에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놀람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화면이 전환되었다.


  나는 오두막집에 있는 대신 바깥으로 나와 물범 여러 마리가 물가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은 우리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던 아이에게로 머물러 있었다. 물범들은 얼핏 보기에 다 똑같이 생겼지만, 나는 본능적인 '감'으로 그 물범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노는 다른 물범들과 달리 우리 아이, 우리 물범은 힘없이 몸을 휘청거리더니 나중에는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물범을 끌어안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죽어가는 물범을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꿈에서 내가 울었던가.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잠에서 깬 나는 배를 어루만지며 불길한 기분을 억눌러야만 했다. 아침에 한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살짝 흐려진 것도 같았지만 기분 탓으로 넘기며 출근했다.


  그날은 유달리 바빴다. 수업을 꽉 채워서 한 다음에는 차를 끌고 수원까지 출장을 가야 했다. 영동 고속도로는 막혔고 수원 시내로 진입한 후에도 도로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초조해질 때마다 아랫배가 한 번씩 콕콕 찔렸다.


  출장을 마친 뒤에는 야근하는 남편의 학교로 갔다. 집에 돌아오니 밤 8시쯤 되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을 하고 열 시가 되기 전,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혈이 시작된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처음에는 살짝 붉은 피가 비치는가 싶더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피가 철철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토요일에 문을 여는 산부인과를 다급히 찾아보았다. 내가 다니던 난임 병원은 주말에 문을 열지 않아, 우리가 선택한 곳은 나팔관 조영술을 받았던 여성병원이었다.


  잠시간 기다린 다음에 진료를 받았다. 여성병원도 주말에는 분만실만 운영하고 있어서 나는 차가운 분만실 침대에 누워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검은 화면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이곳이 아기집이고 그 옆에 고여있는 것이 피라고 했다. 임신 초기에는 피고임이 생길 수도 있으나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반면 출혈이 점점 심해질 경우 화학적 유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이셨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그러나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것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당시로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의학적 조치는 유산방지주사를 한 대 맞는 것뿐이었다. 그 뒤의 일은 흘러가는 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하혈은 계속되었다. 조금 멎는가 싶어 기대를 품기도 했으나 다음 날 어느 생리 주기에도 본 적 없는, 새빨간 피가 가득 담긴 변기를 본 뒤로는 한바탕 오열한 뒤 마음을 비웠다.


  주말 내내 나는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만큼 아이를 잃은 실망감이 너무나도 커서 속이 달래 지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꿈에서 봤던, 시름시름 앓으며 생명의 빛을 잃어가던 물범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물범을 끌어안으며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던 나의 모습 역시 그러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찾아왔던 아이를 떠나보냈다.







  가끔 숙련된 산부인과 의사들은 말한다. 화학적 유산은 유산으로도 치지 않는다고. 작은 세포가 잠깐 자리를 잡으려다가 떠난 것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고작해야 '세포'에 불과한 아이를 물범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건 쌍둥이를 임신한 뒤 내가 태몽을 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꿈을 자주 꾸고 또한 꿈을 선명하게 잘 기억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를 품고 있던 37주간 태몽이라고 여겨질 법한 강렬한 꿈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꿈이 진정 '태몽'이었음을 받아들였다.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했던 첫 번째 물범 뒤로, 언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차례를 기다리며 기웃거리고 있던 물범들이 우리 쌍둥이들이라고. 그러니 그 꿈은 잃어버린 아이와 동시에 언젠가 찾아올 아이를 점지한 된 꿈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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