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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Mar 13. 2022

오늘 내 마음 날씨는 '영하 10도'

2022년 3월

“한 달 반만에 7kg 찍었어”

“매운 거 먹으면 나중에 아기 태열기가 올라온대”

“살다 살다 곱창이 땡기는 날이 오더라”     


출산을 두 달가량 남긴 대학동기 A가 단톡방에서 임신 도중 겪는 일들에 대해 말했다. 또 다른 동기 B는 언니가 조카를 낳던 때의 이야기로 공감을 표했다. 그 방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궁 검진을 하루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난 엄마가 되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 엄마가 된다고 늘어놓는 고충에 말을 보탤 이유는 없다. 평범하게 사는 게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새삼 이 세상 엄마아빠들이 존경스럽다.     


내 자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겨울쯤이다. 생리통이 있은 지는 10년도 넘었지만 최근 들어 유난히 아픔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성 경험 해봤어요?”     


간호사는 훅 들어온 19금 질문에 어버버하는 내가 귀여운 듯 질문의 의미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시작된 초음파 검사. 눈 덮인 언덕 위에서 썰매를 탈 때 쓰는 마대 자루 같은 걸 치마처럼 입었다. 아주 어색한 자세로 침대 위에 눕자 뭉툭하고 차가운 게 몸 안으로 들어왔다.      


화면에는 동굴 같은 내 자궁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여 사진을 찍고 숫자를 기록한다. 기계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움찔. 이비인후과에 가서 콧구멍 안을 들여다보는 거랑 비슷한 건데 이토록 기분 나쁜 적은 처음이다.      


환복을 하고 찾은 진료실. 생소한 여성병원의 풍경만큼이나 초면인 ‘자궁내막증’이란 단어가 의사 입에서 나왔다. 그 이후론 필름이 끊겨버렸다.


난소에 혹들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한다... 아기를 최대한 빨리 가져야 한다. 중간 중간 이런 말들이 언뜻 귓가를 스쳐간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찾은 병원. 전보다 규모가 큰 대형 병원이다. 앞으로 내 몸 상태가 어떻게 될지 혹시 몰라 예약을 해뒀다. 이미 한번 경험을 거쳐서 인지 이번엔 한결 수월했다. 초음파 검사가 끝나고 홀로 남겨진 방에서 자연스럽게 환복을 하는 나를 인지하고 놀랐다.       


“병원에 왜 왔어요?”     


이 병원 의사는 다소 똘끼가 있는 사람이었다. 진료받으러 왔지, 병원을 왜 왔냐니. 더 심한 상태이기를 바라고 하는 말인가?


화나는 마음을 꾹 참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많이 심각한가요?”     


“암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지. 나중에 수술을 해보고 정확히 알 수 있어요”     


이 무슨 두루뭉술한 철학적인 말인가. 그는 2개월 후에 검사를 받으러 다시 오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기고는 방을 나가봐도 좋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몇 개월 사이 혹이 몇 개가 더 생겼는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증상의 이름이 뭔지 따위는 가볍게 재꼈다.     


수납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엄마는 내게 저 의사가 일을 잘하는 거라고 말했다. 환자가 궁금한 거 하나하나 다 말해주면 많은 환자를 받지 못할 거라면서.


일분일초, 효율성이 중요한 시대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와 집 가는 버스를 타러 걸었다. 꽃샘추위에 입김이 훅 나왔다. 초봄인데 영하의 날씨라니. 차가운 세상의 온도에 얼어붙은 듯, 굳은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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