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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Feb 06. 2022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이런 C(Choice)~

한 달의 휴식, Day 50

휴식을 시작한 지 벌써 50일이나 지났다니. 느낌상으로는 이제 30일쯤 지난 것 같다. 가수 알리의 히트곡 ‘365일’에는 이별 후 365일 동안 겪는 일이 담겨있다. 나의 ‘365일’이라는 곡은 어떤 가사로 채워질까. 


48일째 되던 지난 금요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됐다. 헤어진 연인과 다시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 같은 반전이다. 


안그래도 겪던 우울증에 이 일이 겹치는 바람에 갑자기 겁이 생겼다. 불안함에 생각이 많아져서 잠을 잘 못 이뤘는데, 새벽 5시쯤 엄마가 휴대폰 작동법을 묻기 위해 나를 깨우시는 바람에 눈을 떴다. 다시 자려니 1시간 동안 잡생각이 나서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잡생각을 잠재워주는 건 운동과 글쓰기와 명상.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편집국장(학교로 따지면 교장이나 교무부장)과 대표(교장)가 있다. 대표가 편집국장한테 요청을 해서 내게 휴식이 생겼다. 편집국장은 나한테 다짜고짜 카톡으로 나의 휴식 시작 날짜를 통보했다. 금요일인가에 연락와서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쉬도록 해라, 그랬다.


그때 내가 언제까지 쉬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회사 측에서도 병가에 대한 명확한 기한을 주지 않았다. 휴식에 대한 통보를 한 주체가 회사이기에, 복직에 대한 통보도 회사가 할 줄 알았다. 만약 휴식 기간에 대해 내가 명확히 인지했다면 부서장도 나한테 “잘 지내고 며칠에 보자”고 말을 했어야 한다. 


휴직계를 내라고 해서 빈칸에 그냥 대충 한 달이 지난 시점을 써서 냈다. 이게 회사와의 약속인 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48일째 되던 날, 내가 편집국장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전화를 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수화기 너머로 겨울 추위 같은 냉대가 전해져왔다. 편집국장은 지금 내가 무단결근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쉬는 동안 부서에 나를 대신할 새 직원을 3명이나 뽑았고, 그래서 부서 인력은 포화상태이며 내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3명이나 필요한 일을 그동안 나 혼자 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병가를 낼 때부터 이 회사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이 업계도 사람을 부품 갈아끼우듯 마음에 안들면 계속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공장과 다름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회사에 나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건 바보같은 생각이다. 그래도 겉으로는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기에 내 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허탈감, 회사가 그 판을 짰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말들을 하는 편집국장의 목소리는 친절했고, 어투는 기교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기에 내가 받는 감정이 더 서늘했다. 나를 회사 구성원이 아니라 법적으로 공방까지 펼칠 수 있는 상대로 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 나도 회사를 앞으로 그렇게 대할 거니까.


회사입장에서는 ‘한 달이 지난 후 내가 회사 측에 복직에 대한 보고를 했어야 한다’는 게 당연하겠지만 내 입장에선 말같지도 않은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휴식 기간 준수가 중요하다면 내가 출근을 안 한 날 나한테 연락이 왔어야 한다. 20일이 다 지나도록 문자 하나, 카톡 하나 오지 않은 건 회사의 안일함이고, 무책임함이다. 얘봐라? 이러고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다.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자존심을 지킬 필요가 있는 건가?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수많은 선택이 존재하고 그 선택으로 인생이 이뤄진다. 


“아이코, 생각해보니 말씀대로 제가 바보 같았네요. 저 일할 자리 좀 마련해주세요”


나는 편집국장에게 일부러 퇴사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다른 부서에서라도 더 일을 하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하는 걸로 알고 있을 게. 아마 니가 잘못한 것에 대한 징계가 있을 거야. 사규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아야 해.”  


편집국장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1시간 쯤 후, 월요일 오전에 출근하라는 문자가 왔다.


복직에 대한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복직을 택해야했다.


그들이 깔아놓은 덫에 그대로 걸려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대답은 (치사하고 더러워서) 퇴사하겠다는 말이고, 거기에 따른다면 난 직장을 잃는다. 그냥 잃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병가를 냈다가 제때 복귀하지 않아서 해고당한 사람이 된다. 


내 잘못이 아닌, 쌍방과실이라는 걸 말한다고 해서 들을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최소한 낙인은 지우고 나와야 한다. 새 직원 3명을 내가 휴직 시작하자마자 뽑은 걸 뻔히 알고 있는데, ‘니가 오래 쉬니까 인력 공백 때문에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고 하는 회사에 진위여부를 따질 이유는 없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내가 순간적인 감정에 퇴사 의지를 밝혔다면 나는 많은 것을 잃는다. 쉴 때 급여를 받지 않았기에 일단 지금 돈이 필요하다. 회사는 나를 괘씸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퇴사를 하면 업계에 소문이 날 수 있고 실업급여를 못 받을 확률이 크다. 그동안 이 회사에서 쌓아온 신뢰를, 나의 평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멘탈이 와장창 깨졌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래, 자존심을 버리고 일을 지켰잖아? 잘 한거야.


다시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해서 너무나 무섭지만, 나 자신한테 온갖 긍정적인 말들 해주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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