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처음 도착해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농원 입구에 모종을 심어둔 게 있어 구경했다. '흰 들깨', '수수' 등 꽃이 아닌 식물들의 이름표들이 보였다. 먹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자라는 지 본 적 없는 '도시인'에겐 모든 게 마냥 신기했다.
오전에 내렸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내리쬐 다행이었다. 교실에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우리는 자기소개를 했다. 선생님이 자신을 감자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본명을 이야기한 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열매와 관련된 별명을 하나 지어둘 걸.
대안학교 아이들이 시농제(한해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지내는 제사)를 지내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관람 후 몰랐던 사실 한 가지를 배웠다. 아니 글쎄, 지렁이가 눈은 없는데 심장이 5개란다. 그래서 몸을 절단해도 그 부분이 다시 살아난단다. 아무리 생명력이 질겨도 세상을 보지 못하는 건 싫을 것 같다.
어떤 선생님 한 분이 ‘틈새’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콘크리트 틈 사이로 피어나는 풀이 우리랑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살아보겠다고 틈으로 비죽 나온 풀처럼 나도 설 곳을 찾아 햇빛을 따라 축축한 물기를 따라 달려온 게 아닐까.
홍 감자쌤의 텃밭
자식농사도 그렇고 열매를 맺는다는 건 참 숭고한 일이다. 실제로 작은 씨앗하나가 흙이라는 생명의 터전에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많은 돌봄이 필요하다.
비료를 뿌리는 과정은 무려 3차에 이른다. 1차로 질소비료를 쓰고 2차로는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인산 비료, 3차는 칼슘(계란)을 사용한다. 음식물쓰레기라고 해서 좋은 비료가 되는 건 아니다. 음식물쓰레기는 오히려 식물의 영양분을 뺏어가기 때문에 분해해서 뿌려줘야 한다.
줄기식물인 감자는 수확 2주 전에는 물을 주면 안 된다. 열매가 완성되기 직전의 시기라 물 먹은 감자가 될 수 있다. 잎과 줄기가 누렇게 되면 수확을 하는데 하지(6월 20일경) 전후라고 보면 된다. 줄기가 10~15cm 자라면 튼실한 감자 순 1~2개를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하면 된다. 튼튼히 자랄 수 있도록 북주기(줄기 아래쪽과 뿌리 위로 흙을 단단히 덮어주는 것)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토마토를 기를 때는 곁순 제거‧옷거름 작업‧순지르기를 해줘야 한다. 곁순이란 Y자 모양의 메인 가지 아래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잎이다. 이걸 그냥 두면 너무 많은 가지가 생겨서 영양분이 분산된다. 순 지르기를 할 때는 광합성을 위해 화방 윗순을 조금 남겨야 한다.
고추는 분지 아래의 방아다리를 제거해주는 게 중요하다. 방아다리는 메인 가지 아래에서 난 고추다.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곁순을 정리해주면 탄저병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몇 평짜리 좁은 공간을 일구더라도 해야할 일은 이외에도 산더미다. 그 중 하나는 바로 해충을 제거하는 일이다. 힘들게 가꿔온 작물이 진딧물, 응애 같은 곤충들에게 먹혀 구멍이 뽕뽕 나 있는 걸 보는 농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여기에 흰가루병, 노균병 등 병균이나 태풍‧우박‧장마를 비롯한 자연현상으로 입는 피해도 잦아 촌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로 만든 천연 농약 ‘난황유’를 들고 농부의 마음을 잠시나마 경험해보기 위해 텃밭으로 향했다. 초록색 끌차에 모종삽, 난황유가 든 패트병 등등 짐을 싣고 터덜터덜 흙길을 걸었다. 발 끝에 느껴지는 날 것의 거칠음이 낯설었다.
“올해 첫 수확이에요”
텃밭으로 향하는 길에 '홍감자’쌤이 말했다. 홍감자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텃밭가꾸기에 대한 애정 때문에 도시농업 공부를 시작해 농원관리사로 제2인생을 살고 계신 분이다. 그분 말씀에 따르면 올해 4월 심어둔 열매 작물이 추운 날씨 때문에 잘 자라지 않아 이제야 수확한단다. 그 기쁨을 다름아닌 내가 누리게 되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텃밭을 보자마자 남몰래 탄성이 나왔다. 고추부터 피망, 로즈마리, 딸기, 상추, 가지, 파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오밀조밀하면서도 가지런히 심어져있었다. 사실 팻말이 없었더라면 난 그게 각각 뭔지 몰랐을 것 같다. 우리의 텃밭은 2줄씩 3그룹으로 총 6줄이었다.
"자, 이제 한 줄씩 자리잡고 서세요."
본격적으로 밭일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