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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May 05. 2024

나는 러닝 시한부입니다

내 발 관찰일지 1

  

이 발을 해가지고 그동안 어떻게 뛴 거에요?. 환자분은 신체조건이 러닝이랑 안 맞아요다른 운동을 해보시는 게 어떠세요?”     


처음 들어본 소리가 아니다. 러닝이 취미가 아니었던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말. 러닝을 시작하고는 병원을 찾을 때마다 한번씩 들은 말이다.      

내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살려달라고 영조에게 간청하는 정조의 마음인 걸 의사는 아는지 모르는지 세차게 서러운 한마디를 내던졌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요조금 괜찮다고 다시 뛰면 도돌이표에요절대 안낫습니다.”       


참 무시무시한 말이다.      

의사의 잔소리를 들은 이유는 내 엄지발가락 옆 발뼈가 유족 뾰족하게 나와있어서다. 엑스레이로 보면 세로 ‘l’ 자로 돼있어야할 뼈가 ‘<’ 모양으로 휘어있는데, 이걸 의학용어로는 ‘무지외반증’이라고 한다. 하이힐을 자주 착용하는 여성에게서 후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아니 근데, 내가 하이힐 애용자면 억울하지나 않지. 예닐곱살 때부터 발 때문에 하이힐을 거의 못 신어봤다. 누가 구두 선물을 해주면 (못신으니까) 반갑지 않았다. 하이힐 굽이 부러지거나 너무 하이힐을 오래 신어서 남자한테 업혀보는 흔하디 흔한 경험도 못했다. 예쁜 구두는 쇼윈도에서만 볼 뿐 내 발에 신길 수 있는 현실적인 꿈이 아니다. 그래서 월급타면 구두 사야지 하는 생각도 안해봤고, 예쁜 구두를 봐도 별 감흥이 없다. 신데렐라가 자정이 되어 급히 집으로 돌아가다가 유리구두 한쪽을 잃어버리고, 이를 주운 백마탄 왕자가 구두의 주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들어도 설레지 않는다.       


신었을 때 아픈 신발들은 구두뿐만이 아니다.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던 ‘반X’ 컨버스화, 수영할 때 쓰는 오리발, 심지어 재질이 딱딱한 슬리퍼, 바닷가에서 신는 쪼리 등등 발을 넣으면 엄지발가락 옆이 다 까지는 신발들이 한 가득이다. 신발 사장님들이 제일 만나기 싫어하는 고객 1위 설문조사가 있다면 내가 뽑힐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아무리 “이건 정말 편해요”하고 장점 어필을 해도 내가 신발을 신고는 ‘이것도 아니다’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 그만이니까. 나는 신발에 있어서 만큼은 냉철한 심사위원이다.     


언젠가, ‘한국에 내게 편한 신발이 없다면 해외에서 찾아보자’ 하고 중국이랑 일본 여행을 했을 때 번화가의 신발 매장을 싹 다 뒤진 적도 있는데 발에 편한 신발을 못찾았다. 그래서 나는 100% 만족하지 않아도 아프지 않다 싶으면 신발을 사는 편이다. 발 사정이 이렇다보니 러너들이 웃돈을 얹어서라도 사서 신는 나이X 카본화는 내겐 돌멩이랑 비슷하게 값어치가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무지외반증을 앓는 사람을 감히 대변하자면, 우리는 신발 안에서 뼈가 눌리다보니 남들과 같은 거리를 걷고 뛰더라도 발 피로감이 빨리 찾아온다. 발이 까져도 내색하지 않고 그냥 ‘고’ 하는 거다. 깔창 외에 상태가 심해지는 걸 방지하는 방법이 있다면 발가락에 거는 실리콘 보조도구 정도인데, 부자연스럽게 발가락을 벌리고 있으니 경련이 쉽게 나서 역시 내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발가락 운동을 하는 게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랄까.     


엄마말로는 꼬꼬마시절 시절 내가 좋아하던 슬리퍼가 있었고, 그걸 신겠다고 고집을 부리느라 발에 꽉 끼는데도 티 안내고 참아서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한다. 엄마가 어른으로서 아이가 신발이 작은지 안작은지 제대로 확인도 안해줘서 니가 발을 못쓰게 됐다고 하실 때마다 큰 죄를 지은 기분이다. 고집대마왕 어린 손민지가 자초한 일이니 누구 탓을 하겠냐만은 ‘신고 싶은 것’ 대한 욕구를 참는다는 건 여자로서도 러너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투병 생활(?)을 30년 가까이하다보니 긍정적인 변화도 생겼다. 이제 무지외반증을 사람들이 많이 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 무지외반증이란 말을 꺼내면 대부분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내 아픔을 공감하는 이도 드물었다. 일반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한의원을 가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발 전문 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바통을 건네받은 발 전문 병원 의사는 깔창만이 답이라고 했다. 상술에 못 이겨 십 만원 넘는 돈을 들여 장만한 맞춤 깔창은 불편감에 몇 번 쓰이고 신발장 안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기 일쑤였다.   

   

이젠 내 발에 적합한 테이핑법을 알려주는 의사도 있고, “나돈데, 어휴 아가씨는 훨씬 심하네”하면서 발을 보여주는 아줌마들도 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건 설움과 울음을 토닥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엔 수영장에서 이미 철심 박는 수술을 하고 재활 중인 이도 만났다. 까맣게 된 수술 부위를 보니 이게 남 일이 아니고 언젠간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수술을 하게 된다면 러닝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 러닝 시한부가 된 기분이다. 


기수를 굳이 나눈다면 무지외반증 환자들 중에도 나는 4기쯤 될 거다. 자꾸 달리기 때문이다.      


무지외반증에 달리기는 쥐약이다. 전문가들 말로는 달릴 때 문제 부위에 체중이 실리다보니 발 중간에 있는 아치가 무너져내려 몸 전체의 자세도 뒤틀리고, 종아리위쪽으로 통증이 번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러닝을 계속 하면 할수록 뼈가 더 휘어 무지외반증이 악화되고, 수술을 해야한단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내 발 상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낀다. 자주 뛴 주에는 1km도 채 되지 않아 신발을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 뼈의 통증을 넘어, 발이 갈기갈기 찢기는 거 같다. 그럴 땐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은 채로 달린다. 그야말로, 맨발의 디바다. 훈련 외에 대회 때도 신발을 안신고 3km 이상씩 달린 경우가 몇 번 되다보니, 속도도 제법 빠르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가 농담반진담반으로 케냐 사람들은 신발 안신고 맨발로 달린다고, 그래도 치타만큼 잘달리는 찐러너들이 많으니 거기서 살아야 하는 거냐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이미 뛰면 안된다는 뻔히 알고 있는데도 나는 왜 달리는 걸까. 고통을 감수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리고, 심지어 주말 아침 꿀잠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뛰러나가는 걸까.     


순간 나는 스물 여섯, 한여름 포항 호미곶에서 서울시청까지 걸어서 완주를 하고 물집으로 가득한 발로 병원을 찾았을 때로 돌아간다. 그때도 나는 미련하게 내 발을 혹사시켰다. 매일 몇 번씩 물집 안의 물을 바늘로 터뜨려 가면서, 빨간 약과 흰 가루가 발에 짓이겨지도록 뿌려가면서 걷고 또 걸었다. 진짜로 살아있는 것 같은 쿵쾅거림이 좋아서.     


네 멋대로 해라. 내가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로 꽤 오랜시간 걸어둔 문구다. 누가 내게 말을 해줬으면 하고 적어둔 말. 하지만 나는 내 멋대로 하지 않고 철저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유의지를 거세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흑백영화, 무성영화라고 느껴지던 나날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생체리듬에 따라 눈을 뜨고 눈을 감으며 기계적으로 보내던 소중한 청춘의 한 페이지. 아직 지지 않은 새벽별, 고요히 빛나는 달빛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빛을 받고 싶어, 선선한 바람을 쐬고 싶어. 편히 잠에 들고 싶어,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 낮인지 밤일지 모를 시각. 통유리창 하나 없는 회색빛 벽. 외부와 통하는 통로는 문 하나뿐.


드라마 극본로 옮겨쓰자면 이렇게 시작할 법한 청춘의 순간순간마다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있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다. 아마도 이 시기에 러닝에 대한 꿈을 키운 것 같다.      


겨울이면 뜨거운 히터 바람, 여름이면 차가운 에어컨 공기로 가득 차는 재수학원에서 스무살의 나는 그늘진 얼굴로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마치 어항 안에서 누가 먹이를 주면 주는대로 받아먹고 헤엄치는 금붕어처럼 기포를 보글보글 뿜어내며 문득 걱정이 스치기도 했다.      


이 공간에 있는 산소가 다 없어지는 날엔 숨을 어떻게 쉬지? 

이러다가 뛰는 법을 잃어버려 내 다리가 퇴화하는 게 아닐까?            


소원은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 이뤄졌다. 나와 1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러닝을 통해서 말이다. 달리면서 내 인생이 컬러TV로 변한 기분이다. 러닝하는 상상을 하면 행복해진다. 연두빛 나뭇잎들이 노랑 햇살을 받아 물결 춤을 추고, 내 키 만한 갈대가 숲을 이뤄 쏴~하는 시원한 소리를 낸다. 돌을 따라 졸졸 흐르는 냇물 위에 벚꽃 잎이 둥둥 떠내려 가고, 머리 위에 늘어진 아카시아 나무에서 진한 꽃 향이 코끝을 찌른다.     

일반 러너보다 조금 더 자연에 동화 되어 달리는 기분, 너무나 자유롭다.      


제 말 듣고 계시는 거죠?. 선택은 환자분에게 달려있어요.”     

최후의 통첩을 뒤로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의사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나는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뛰러 나가고 말았다. 


이런 젠장. 러닝 시한부 생활이 하루 더 짧아져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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