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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별꽃 Oct 22. 2020

"그건 니가 말랑말랑한 우유젤리라서 그래!"

나를 사랑하는 방법 프롤로그 -3-


MBTI랑 비슷한 ‘SPTI’라는 성향테스트가 있다. 스낵 종류로 성향이 분류된다. ‘인싸’들이 하는 거라고 해서 솔깃했다. 과자제조사가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든 검사일까 싶어 신빙성이 있을까 싶었다.


검사 결과 우유젤리가 나왔다. 적혀있는 여러 특징들 중 이 항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말랑하고 연약한 마음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주장을 강력하게 얘기 못하는 편이다”. 세상에, 딱 나였다.


평소 나도 모르게 체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찬 바람에 향긋한 풀 냄새를 맡아도 속이 메스껍다. 주로 그날 날 힘들게 하는 일이 있을 때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너한테 처음 주는 거야”


2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언니가 12월에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내밀었다. 청첩장 귀퉁이에 귀엽게 내 이름도 적어줬다. 이 언니는 신혼집에 놀러오라고도 했다. 정성스럽고 따뜻한 대우였지만 웬일인지 달갑지 않았다. 


결혼식을 가야할지 고민이 됐다. 가더라도 축의금을 얼마 해야하는지 문제였고, 청첩장을 받았기에 안가더라도 난감한 상황이어서였다. 내 고민을 들은 친구들은 “니 마음대로 하는 게 답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내게 묻다가 그동안 잊고 살던 마음의 상처를 들췄다.  


언니는 모르고 있지만 언니에게 쌓인 것이 많았다. 언니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고 외톨이로 지낸 적도 있다. 그때 받은 상처에 대해 속시원히 말을 하려고 용기를 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언니는 나를 피했다. 목구멍까지 나왔던 마음속 이야기는 언니의 냉대와 무시에 묻혔다. 


“그냥 넘기자”며 흐른 세월만큼 내 가슴속에는 멍이 들어있었나 보다. 갈등이 생기는 게 싫기도 했고, 애써 유지해온 관계가 깨지는 게 무섭기도 했고, 또 싸울 에너지도 없어서 나를 토닥여주지 못했다.


내 주장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쟤가 그런 사람이었어?”라는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하다. 나를 2~3년 이상 알고 지낸 사람들은 내가 제법 말괄량이에 4차원 면모를 지녔다는 것도 아는데, 관계를 맺은 지 1년 이하된 이들은 나를 내성적이고 차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배우들이 작품 속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달라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하고 ‘깬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실제’와 ‘이미지’ 속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민이다. 타인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눌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받고 있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마저도 딱딱히 굳어있다.


만약 어떠한 부자연스러움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평가가 매겨지지 않는다면, 나는 언니의 결혼식에 가고 싶지 않다. 왜 그때 내게 상처를 줬느냐고, 나는 언니에게 어떤 존재였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말랑말랑한 우유젤리’이기에, 내가 내뱉은 말에 스스로 괴로워 할 것이다. 내 안은 상처가 짓물러도, 누군가에게 실금같은 스크래치를 내는 게 싫어서 차라리 내가 더 아프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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