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도 즐거운 우리들의 축제
재팔 님의 텃밭에 가는 아침이 밝았다.
정확히 말하면, '밝았다'라고 보기에는 날씨가 너무 흐렸다. 쏟아지는 폭우에 텃밭 체험이 과연 가능할까? 재팔 님과 초대 기획자인 나는 마음이 또다시 불안해졌다.
"예상보다 비가 너무 심해서... 정말 오실 수 있을까요?"
참여자 분들이 계신 단톡방 연락을 남겼다. 원래 오시기로 했던 8명 중 과반수 이상 대답하신다면 초대를 진행하기로 한 상황. 날씨 및 개인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운 분이 3명, 참석하시는 분이 5명으로 다행히 초대를 여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다. (박수!)
나와 룸메이트 2명은 장화를 챙겨 신고 신나는 마음으로 청계산입구역으로 향했다. 룸메들과 카페나 영화관에 놀러 간 적은 있지만, 텃밭에 간 적은 없었다. 색다른 경험, 어쩐지 더욱 들뜨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 재팔 님의 텃밭이 있는 주말농장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이다. 재팔 님과 만나 다 함께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재팔 님께서는 이미 텃밭에 가 계신 상황이었다. 다른 참여자 '아용구리' 님과 함께 접선한 후, 우리 4명은 농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를 뚫고 걸어가는 길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너무 즐거웠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빗길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비욘세의 'Crazy In Love'를 열창하는, 압도적인 에너지의 룸메들이 한껏 텐션을 올렸기 때문이다. 또, 길가의 식물들, 동물들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아용구리 님 덕분에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텃밭에 도착할 때쯤, 멀리서 날다람쥐의 형상이 보였다. 검은 우비를 입으신 재팔 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마중 나와주신 것이었다.
이 날씨에 여기까지 오다니 독한 사람들..!
재팔 님께서는 내심 취소되기를 바랐다며 농담반 진담반 말씀하시면서도,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얹은 토스트를 만들어 모두의 입안에 넣어주셨다. 입안에서 터지는 토마토의 과즙! 이 상큼한 토마토가 이 밭에서 나왔다니, 재팔 님의 밭을 빨리 보고 싶어졌다.
재팔 님께서 예고하셨던 대로 흙밭에 발이 푹푹 빠졌다. 하지만,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밭은 더 반짝이며 빛났다.
재팔 님의 밭에는 작물이 매우 다양했다.
자주 먹는 가지, 토마토, 깻잎부터 오이고추, 태국고추, 보라케일, 카페 음료에서나 보던 애플민트, 스피아민트까지! 이것도 저것도 다 따가라는 재팔 님의 아낌없는 나눔에 우리는 신나서 밭을 누볐다.
"가지는 어떻게 따야 해요?"
"와! (킁킁) 깻잎향이 엄청 좋아요!"
다양한 작물들을 눈으로 보고, 향과 촉감을 느껴보는 시간. 너무 아름다운 잎을 발견해서 여쭤보니 그 정체는 바로 '땅콩'이었다.
학원 강사로 일하시는 아용구리 님께서 ‘땅에서 나는 콩’이라 그 이름이 땅콩이고, ‘깨의 잎’이라 깻잎인 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접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수많은 가공을 거치기 때문이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 어떤 방식으로 가공되어 오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먹은 것들이 쌓여 나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오늘 텃밭으로의 초대처럼, 1차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고, 농작물들이 자라는 환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수확을 마친 후, 마치 새참을 먹듯 순두부집에서 막걸리 한잔을 나누었다. 따뜻한 순두부를 입에 넣으니 지친 몸이 풀어졌다.
수확 시간 뒤 찾아온 수다 시간. 아용구리 님께서는 도시농사에 도전했었으나 망했던 일화를 들려주셨고, 4개월 차 도시농부 재팔 님께서는 그간 배웠던 꿀팁들을 나누어주셨다.
"상추는 물을 안 주면 써지더라고요."
"셀러리는 자기들끼리 작전이라도 짠 듯이 하루아침에 확 자라요!"
따도 따도 계속 자라나는 텃밭의 생명력, 또 그 덕분에 계속 계속 주변에 농작물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재팔 님의 말씀에 뿌듯함이 느껴졌다. 농부와 어부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 딴 깻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초대할게요."
"<수라> 속 갯벌로 꼭 가고 싶어요!"
"가을에 텃밭으로의 두 번째 초대를 열어보면 어떨까요?"
자연스럽게 다음 초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초대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초대를 열고 싶다는 의지를 표했다는 사실이 기획자로서 매우 기뻤다.
'이 초대로부터 파생된 다음 초대가 열리겠구나!'
마치 파일럿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을 받은 듯한 기쁨. 여기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 갈 다음 초대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어 인사를 나누는 자리. 재팔 님께서 내 룸메 Y의 부츠가 더러워졌다며 걱정하셨다. Y는 웃으며 말했다.
"원래 페스티벌용 신발이라서 괜찮아요!"
그 후, 재팔 님께서 손을 흔들며 남기신 마지막 인사가 머릿속에 남는다.
조심히 잘 가요. 오늘 정말 축제였어요!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공지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이 지났을 때, 가야 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만족감 있는 초대가 진행되었을 때, 또 이러한 초대에 참여하고 싶다는 + 내가 이러한 초대를 열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 이런 의지가 초대 '릴레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벌들의 초대장' 꿀벌과 인류의 공존을 꿈꾸는 커뮤니티 '댄비학교'에서 시작된 기획으로,
내가 사랑하는 자연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릴레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