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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Mar 22. 2020

전염병 공포, 현금인출기 버튼까지 닦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미국인의 모습 2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로나 맥주공장에서 퍼진 바이러스인 줄 알았어요.”

 불과 두 달 전 나의 영어 공부를 도와주던 UNC 1학년 새내기 대학생, 제임스의 말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조금씩 관심을 끌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나나 제임스나 사태가 이렇게 겉잡을 수없이 커질 줄은 몰랐다. USA투데이 등 신문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계절 독감이 더 위험하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때는 미국 내 간염 사례는 적었고 계절 독감 사망자는 전국적으로 80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찌감치(1월 말)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도 시행했던 터. 코로나바이러스는 그저 태평양 건너 머나먼 아시아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국제화 시대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할 곳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바이러스는 스멀스멀 미국 사회로 파고들고 있었고 그 시작은 시애틀의 요양병원이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5학년 아들은 필드 트립(현장 학습)을 갔다. 숲길을 걸었고 하늘을 그렸고 닭 무리를 봤다. 아이들은 커뮤니티 센터에서 까르르 웃으며 테니스 수업을 받았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실내 볼링장에서 볼링도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틈틈이 마트에 들러 쌀과 물, 그리고 생활용품 등을 샀다. 손 세정제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려 했다. 하지만 손 세정제는 물론 살균 티슈도 구하기 어려웠다. 알코올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뉴스는 여전히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폭스뉴스는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잘 대응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식의 뉴스를 내보냈다. CNN이나 NBC 뉴스 분위기는 사뭇 달랐지만. 이탈리아, 이란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트로 가 다시금 비축 식량을 샀다. 화장지도 마찬가지였다. 7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넉넉하게 쓸 만큼 화장지를 샀다.   

3월21일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뉴욕이 제일 심각하고 워싱턴, 캘리포니아도 위험 수준이다.  브레이크 뉴스 갈무리.

 그리고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까지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모르쇠’ 전략인 건지, ‘회피’ 전략인 건지 다우존스 등의 주가 하락에 따른 경기 부양책만 주야장천 늘어놨던 그였다. 전국적으로 가파르게 감염자 수가 늘어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재기를 막 시작하던 2주 전에도 그는 마이애미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겼던 터다. 1월 중순부터 미국 내 전염병 전문가들이 백악관에 지금부터 대비해야한다고 조언했는데도 그는 으레 그랬듯이 귀는 닫고 입만 열었다.

 

 며칠 전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조롱하듯 소파에 바짝 붙어 앉아 어깨동무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던 폭스뉴스 모닝 프로그램은 이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이런 식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친 트럼프 방송으로 유명하다.

3월21일 현재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 및 사망자. 브레이크 뉴스 갈무리.

 연방 정부가 늑장을 부리는 사이 각 주 정부의 대응은 그나마  빨랐다.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뉴욕 주는 대도시 특성상 확진자 수가 나날이 급속도로 늘어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같은 인구 천만 안팎(면적은 남한 크기)의 주 또한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이들 학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포 전에 이미 이른 봄방학과 함께 3주 휴교를 결정했다. 13일이 아이들이 학교에 간 마지막 날이었다. 교육청은 휴교가 결정된 뒤부터 관련 업데이트 상황을 밤낮으로 이메일로 보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점심 식사 제공 방법은 하루 만에 결정했다. 지정 학교와 거주지 근처 공원 곳곳에 셔틀버스를 세워 도시락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온라인 학습을 위한 매뉴얼도 미리 배포했다. 교육청 이메일의 맨 끝에는 늘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우리 교육청 상담 전화는 늘 열려 있습니다. 의문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해주세요.”


 그다음은 커뮤니티 센터 폐쇄였다. 실내 수영장을 비롯해 실외 농구장 등등이 다 문을 닫았다. 볼링장, 점핑장 등 놀이시설도 차례로 한시적으로 문을 닫는다는 메일을 보냈다. 타깃, 해리스 티터, 푸드 라이온 등 회원가입이 돼 있는 마트 등에서는 “우리 직원들은 현재 위생에 더욱 철저히 신경 쓰고 있다”는 식의 메일을 보내왔다. 마트 푸드코트는 폐쇄됐다. 조각피자 등을 앉아 먹었던 코스트코 실내 의자도 사라졌다. 그다음은 레스토랑, 카페였다. 매장 내 식사는 안 되고 배달이나 포장만 된다고 했다. 이 모든 게 1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내 첫 확진자(시애틀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돌아온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사망)는 지난 3일 처음 나왔다. 21일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전체 확진자 수는 261명(사망자 0명). 내가 사는 오렌지카운티 확진자는 6명.


 마트에서는 여전히 사재기가 이어지고 있다. 식초 칸이 텅 빈 것을 보니 소독용으로 사람들이 식초까지 사재기하는 것 같다. 닦아내려면 물론 화장지나 키친타월이 필요할 터. 사재기 조짐이 있던 초기부터 세정제와 살균 티슈, 알코올 등이 동이 났던 것을 떠올리면 얼추 화장지 사재기가 이해가 가기는 한다. 감염 예방을 위해 틈틈이 집안에서도 비누로 손을 닦으라고 하는데 이때 수건 등으로 닦는 것도 자못 꺼림칙하다.


 마트 장보기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비닐장갑을 끼고 장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노년층 몇몇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 어떤 미국 할머니는 차에 장 본 물건을 다 실은 뒤 살균 티슈로 차문까지도 싹싹 닦아냈다. 드라이브 쓰루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때는 살균 티슈를 손에 쥐고 비밀번호 등 버튼을 눌러댄다. 차를 타고 기다리다가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했다. 어느새 차안에는 용도를 다 한 살균 티슈가 쌓여간다. 이렇게 계속 하면 살균티슈에 녹아든 화학약품에 내 손이 먼저 썩겠다는 느낌마저 든다.


 미국은 분명 대응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안일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은 낙관적인 이야기만 한다. 어제 같은 경우에는 항 말라리아제(클로로퀸)가 “게임 체인저”(기류를 바꿀 수 있는 무엇)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유라고 댄다는 것이 “내 느낌이 그렇다”였다. 전염병 전문가는 곧바로 “너무 과장된 해석”이라는 의견을 냈다. 국가 위기를 이끌어야 할 국가 수장이 전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긴 트럼프는 탁월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여러 호텔과 골프장을 파산시킨 전력이 있다.

저녁 무렵 아이들의 산책 모습. 아이들은 지나는 이들에게 "하이"라고 인사했고 대부분 미소로 화답했다.

 미국 상황은 1주일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비상상황에서 그나마 살가운 풍경도 보인다. 저녁때마다 집 근처를 다 함께 산책하는 가족들이 많아졌다. GYM까지 폐쇄되니 온 가족이 함께 걷기 운동을 한다. 오늘 우리 가족도 같이 동네를 걸어 다니며 만나는 이들에게 가벼운 미소를 건넸다. 다행히 이곳은 동양인 혐오 등이 아직까지는 없다. 트럼프가 인터뷰 때마다 ‘코로나19’가 아닌 ‘중국 바이러스’라고 또박또박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1주일 뒤 미국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급격히 치솟는 빨간 그래프가 조금은 완만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띵똥. 지역 뉴스 속보가 떴다. 차로 20~30분 거리의 인근 도시에서 헤드샷 사건(머리에 총을 맞는 것)이 터졌단다. 문득 잊고 있던 미국의 현실이 자각된다. 참고로 2017년 미국에서는 3만9773명(1일 평균 109명)이 총으로 사망했다. 2만3854명은 자살, 1만4542명은 타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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