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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Apr 09. 2020

미국은 119달러를 쥐고 아파야 한다

코로나19시대에 미국에서 살기: 병원 가기

한동안 아팠다. 아랫배가. 하필 코로나19시대에 그동안 없던 통증이라니.  


버텼다. 돈 때문은 아니었다. 미국 오기 전 들었던 한국 보험으로 커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냥 병원 가기가 꺼려졌다. 병원 내 바이러스 감염이 우려됐다. 데굴데굴 구를 정도는 아니고 성가신 정도로 아픈 것이라서 괜찮아질 줄 알았다. 열도 없었다.


일단 집에 있던 상비약을 먹었다. 한국 의사 선생님과도 상의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였다. 하지만 갖고 있던 항생제는 효과가 없었다. 균마다 대응해야 할 항생제는 따로 있다.


1주일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이런 제길. 결단의 시간이었다. 주위 현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처음부터 내과를 가라는 이도 있었고 그냥 패스트메디 어전트케어를 가도 항생제 처방은 해준다는 이도 있었다. 어전트케어는 보통 응급상황에서 예약 없이 가는 곳이다.


미국 내 연수자들에게 보험 청구를 안내해 주는 곳에 연락했다. 응급실(ER)에 가면 보통 1000달러 이상이 나오고 근처 어전트케어를 가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100달러 안팎이 청구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의를 찾아가면 150달러 안팎까지 올라가고. 배가 아프니까 가장 의심할 만한 게 맹장인데 나는 고교 3학년 수능 한 달 전에 맹장을 떼어냈다. 보험 대행사 직원은 “다행이네요. 여긴 맹장 수술하면 1만5000달러가 청구되거든요”라고 답했다. 1만5000달러?! 순간 맹장이 없는 내가 고마워졌다.  


고민 끝에 집 주변 내과로 향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챙기고. 정작 눈치가 보여 병원 내에서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런데 이런. 내과에서는 신규 환자를 받지 않았다. 아이들 예방접종 등만 한다고 했다. 지금 예약을 하면 9일 뒤에나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도 했다. 두 번째 내과를 갔다. 이곳에서는 아예 예약도 안 받았다. 기존 환자만 받고 있단다. 코로나19로 일반병인데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사람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스쳤다.  


선택지는 없었다. 어전트케어를 갔다. ‘어전트’ 상황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냥 배가 살살 아팠을 뿐인데. 환자 등록을 하니 접수원은 “보험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보험은 없다. 셀프 페이 할 것”라고 대꾸한 뒤 “한국 보험이 있어서 메디컬 레코드는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진료비는 선불이었다. 119달러. 이 말인 즉, 손안에 당장 119달러가 없다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으면? 현금이 없으면? ‘어전트’(급한) 환자인데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진국’이라는 탈을 쓴 미국의 상황이 이렇다. 돈이 없으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 근처 소아과에 갔던 지인은 진료가 끝난 뒤 치료비(이 또한 진단서 써주는 것뿐이었지만)를 냈다고 했는데... 며칠 전 어전트케어에 갔다가 의료보험이 없어서 진료를 거부당했다는 17살 LA 소년 이야기가 언뜻 이해가 되는 듯도 했다. 미국은 119달러를 손에 쥐고 아파야 한다.

어전트케어 진료실 내부.


진료비를 선불하고 진료실에서 기다리니 간호사가 와서 이것저것 물었다. 아랫배가 아프고, 열은 없고 소변을 자주 보게 된다... 등등등. 열을 체크하고 혈압도 쟀다. 그런데... 혈압계 등과 연결된 온도계가 입안으로 넣는다. 이런 시국에... 뭐라 따질 수도 없어서 그대로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여자 의사 선생님이 왔다. 그녀 또한 이것저것 묻고 청진기를 갖다 대고 배를 진찰했다. 간이 소변 검사도 했다. 요로감염이 의심된다며 항생제 처방을 줬다. 1주일 내 통증이 안 가라앉으면 다시 오라고 하면서 더 심해지면 ER로 가서 CT나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 어전트케어에는 이런 검사 시설이 없다. 그냥 응급처방만을 목적으로 하는 병원이기 때문이다. 지인은 “주변 내과에서도 초음파는 못 찍는다”라고 귀띔했다.


항생제 14알 가격은 50달러 남짓. 이 또한 보험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비쌌다. 약도 귀천이 있나 보다.

처방받은 항생제. 가격이 60달러, 즉 7만원이 넘는다.  

문제는 해당 항생제를 5일간 복용했는데도 그다지 차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결국 다시 해당 병원으로 갔다. 역시나 119불 선불 결제.


이번에는 남자 간호사였는데 그는 장갑도 안 끼고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였다. 나만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뭔가 어색하기도 했다. 무튼 다시 소변 검사. “또 해요?”라고 물으니 그는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검사가 많지 않아요”라고 대꾸했다. 하긴.


여의사는 다시 문진을 했다. 그녀 또한 원인을 모르겠다는 표정. 아랫배 통증이 위로 왔고 등 쪽도 아프다니 간이나 요로 결석을 의심하는 듯도 했다. 그는 혈액검사와 소변 배양 검사를 권했고 검사비는 대충 110달러가 들 것이라고 전했다. 결과 통보는 3~4일이 걸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전날 한국 의사에게서 “다른 항생제 처방을 받아보라”라고 조언을 받았던 터라 또 다른 항생제 처방도 해달라고 하니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처방전을 써줬다. 이번 항생제 가격은 60달러가 넘었다.


두 차례의 병원 방문에서 내가 지불한 금액은 600달러 남짓. 다만 항생제 처방이 필요했을 뿐인데. 검사라고는 한국에서 기본으로 하는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한국 의사 선생님은 “한국이라면 반나절이면 되는 것을...”이라고 했다.


미국 내에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30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파산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하긴 독감 치료비까지 모금하는 나라니까. 지인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족당 의료보험비는 한 달  500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이유도 유사 증세가 있음에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 때문이다. 이들은 증세를 숨기고 일터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근처 도시의 마트 직원도 확진을 받은 터다. 그때까지 계속 계산대를 지키고 있었고.


두 번째 항생제를 다 복용했지만 나의 통증은 계속 이어졌다. 소변 배양 검사나 피검사 결과는 정상. 요로감염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산부인과까지 예약했다. 도중에 부정출혈도 있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서는 초음파를 하게 되면서 500달러 이상을 지불했다. 부인과 검사 결과도 대체적으로 정상. 세계 1등 국가라고 부르 짓는 미국 땅에서 나는 3주 넘게 가벼운 복부 통증의 원인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산부인과까지 합해 1100달러(130만원) 이상을 지불했는데도 말이다.


 오늘 찾은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한 말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 마사지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통증이 심해지면 ER을 가라”였다. 이전에 어전트케어 의사도 그런 말을 했는데..."통증을 참기 힘들면 ER을 가라." ER은 현재 코로나19 환자로 넘쳐나는데도. ER을 가기 전에 내 통증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줄 의사는 없는 것일까. 한국이라면, 한국이라면.... 이란 생각을 참 많이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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