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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녀의 서재 Dec 07. 2019

Life goes on.

그녀의 마음 읽기

 그녀는 오늘도 회사에 가기가 싫다. 요즘 그녀의 소원이자 바람이라면 독감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면 일주일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월급은 보존될 것이며, 고열에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다이어트까지도 1석 3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제발, 부디 그렇게 빌고 또 빌었건만.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그녀는 또 눈을 뜨고 말았다. 그렇다. 눈을 뜨고야 만 것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그리고 머리를 마구 때렸다. 아팠다. 아픈데  보기에는 멀쩡하다. 올 한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녀는 늘 아팠다.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피부도 아프고 마음까지 아팠다. 하지만 병원에가면 '이상소견 없음' 이라 했고, 회사에서 집에서 그녀의 병명은 꾀병이었다. 


다시 머리를 때린다. 이제는 뺨도 때린다. 곧이어 온몸을 다 때려본다. 멀쩡하다. 남편이 부른다. 

"빨리해. 이러다 늦겠어!"

차에 올라탄다. 이 차는 그녀를 회사까지 안전하게 또 늦지 않게 데려다 줄 것이다. 그녀는 또 빌기 시작했다. 

'제발 누가 뒤에서 받아라. 받아라. 딱 2주만 쉴 수 있게 받아라.'

이른 아침이라 차도 별로 없고 도로는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신호빨까지 좋았다. 

"오늘도 힘내! 이따 봐!"

남편의 인사말이 저주같이 들렸다. 


옆자리에 있는 후배가 출근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오질 않는다. 장염으로 입원을 했다고 한다. 

'너는 드디어 소원성취 했구나. 좋겠다.' 그녀는 후배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왜 이렇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건강하게 나으셨는지. 이제는 부모님까지 원망하고 있었다.


카톡에 친구의 프로필 사진에 왠 갖난쟁이 얼굴이 올라와 있었다. 뭔일인가 궁금하여 연락을 했다. 아주 오랜만에 해보는 통화였다. 그녀와 이런저런 사는 얘기. 회사 다니기 싫어 죽을 것 같다는 얘기, 애 키우는 얘기 등등 아줌마의 수다를 한잠 하다 통화가 끝날 무렵 친구가 남편 석사 공부차 가족이 모두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말을 안했지만 또 죽도록 부러웠다. 그녀의 친구는 회사를 휴직하고 다른 나라에서 나랏돈으로 애를 키우고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녀는 신을 원망했다. 

'왜! 왜! 1년도 아니고 2달, 아니 딱 2주만이라도 회사에서 집에서 풀어달라고 그토록 간절히 빌고 또 빌었는데! 나는 쉴 자격도 없다는 말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신이라는 작자가 유독 잔인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너는 유능해. 능력있어. 대단해' 라고 말만했지 아무도 그녀를 끌어주는, 그녀의 그 출중하다는 능력을 사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맹자 고자 하 편 12. 15

                                                                                                                                                          

모니터 앞에 이 글귀를 써 놓고 그녀를 크게 쓰기 위해 단련시키는 것이리라 스스로를 위로 했다. 하지만 그 약발도 잠시, 몇번의 진급 누락에 뒤이어 후배가 그녀를 앞서 나갈 때는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무하마드 알리                     


알리의 명언을 주문 처럼 외우며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 다면 혼자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이제 그녀는 그냥 쉬고싶다. 인정받겠다는 어떠한 노력도, 좀 더 높이 올라가겠다는 발버둥도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옛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녀는 애시당초 될성부른 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약간은 삐딱하게 자란 예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헤치지도 않는 그냥 그런 나무였던 것이다. 큰 정원에 빈공간을 채우기위해 존재하는, 그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나무였다. 누구의 관심조차 끌 수 없다면, 차라리 베어지기를, 자신처럼 삐딱한 나무들만의 들판에 옮겨 심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건만 그녀라는 나무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그녀는 빈 공간을 채우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녀의 아이는 그녀를 닮았다. 친구와의 통화에서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 대해 말을 하니 그녀의 친구가 말했다.

"딱 너네. 너 학교 다닐떄 그랬자나. 듣고 싶은 수업만 듣고, 가고 싶은 지리에만 가고."

"내가 그랬어? 내가 그렇게 멋대로 였어?"

"야! 니자식이 너 닮지 그럼 누굴 닮니?"

그랬던 것도 같았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녀의 아이가 그렇다면 아이는 그녀와 같이 살게하지 않겠다고.

금 삐뚤어진 나무라면 잘 어울리지도 않는 정원에 가둬두지 않겠다고. 정원사의 손에 운명을 맡기도록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너른 들판에서 삐뚤어지고 꼬부라지며 마음껏 제멋대로 자라게 하겠다고. 그렇게 아이가 자유롭게 살게 하고 싶었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네 인생의 주인은 너다.' 아주 아주 짜증나는 말이다. 말. 말. 말뿐이다. 이 세상이 어디 내가 내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만큼은 진짜 그렇게 살게 해주리라 결심했다.


밤 10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 자기 싫어. 유투브 더 보여줘!"

"야 이녀석아. 지금이 몇신데! 안자고 뭐해.  내일 유치원 가려면 빨리 자야 할거 아니야. 

 이렇게 말을 안들어서 커서 뭐가 될려고 그래! 빨리 눈 감어! 안감어?! 너 매매한다!"

그녀가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그녀의 하루가 끝나간다.

그리고 내일 아침 그녀는 또 멀쩡하게 눈을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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