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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TA Mar 30. 2018

혼자 있는 시간

아직은 달콤하네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다.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혼잣말도 자주 한다. 주로 고양이들과 일방적인 대화(?)를 나눈다. 누구에게 의견을 구하는 일도 많지 않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매일 누군가와 만나고, 회의하고, 통화하고, 보고하고, 눈치 보고,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는 데 시간을 보냈던 회사생활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 이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다. 그만 치이고 싶다.'


퇴사를 하면서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혼자 내버려두세요'였으니, 원하는 것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좋은 것도 몇 달, 혼자 일하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외로움을 느꼈고 우울해졌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혼자 있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말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고, 크면서도 집순이 타입의 인간으로 자랐다. 여러 집단에서 줄곧 아웃사이더를 자처했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혼자 있다는 이유로 힘들어하다니! 뭔가 잘못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긴 회사생활이 나를 조직에 익숙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이런 것도 '일상의 권력'이라는 말로 설명이 될까.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중에서 



그렇게 한동안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우울함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일상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깨닫게 됐다. 회사를 다닐 때와는 달리, 이제는 만나고 싶은 사람만 (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업무상 공적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젠 그런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된다. 어떤 자리에서 사람을 만나도 머리를 굴려가며 따질 것도 없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호의를 베풀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어떤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하는 일에 조언을 좀 해달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그런데 왠 걸. 일방적으로 내게 너무 많은 시간과 관심을 요구했고, 너무 부담스러웠다.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예전에 나라면 어땠을까?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혹은 언젠가 아쉬울 수도 있으니까 나중을 생각해서, 혹은 내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르니, 애써 내 감정을 숨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 게 익숙한 사회에서 살아왔으니까. 사실 이번에도 그렇게 넘어갈 뻔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식으로 내 감정과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번엔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그런 불편한 광경을 마주하니, 역설적으로 혼자 있는 게 얼마나 큰 호강 인지도 알게 됐다. (그분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로 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혼자 있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은 알아야겠다. 퇴사자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감사하게도 남들이 날 내버려두는 지금 이 시간을 평온한 마음으로 즐겨야겠다. 사탕을 핥듯이. 그런데 있지, 요즘 시간이 너무 잘 간다. 큰일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스위트 히어애프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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