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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해문방구 May 30. 2017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태도] 경청, 관계의 시작, 배움의 시작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학교라는 공간 안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여 한 반을 이루었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배움의 공간이 되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나의 배움의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이 가장 먼저 필요할까요?

경청, 경청이 아닐까요?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렇게 모든 경험을 흘리고 맙니다. 모든 관계를 흘려보내고 모든 배움을 놓쳐버립니다. 경청없이는 학교라는 공간도,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관계도 진정한 '의미'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잘 듣지 않는 사람은 벽이 됩니다. 상대의 입장은 이해하지도 배려하지도 못한 채로

내 말만 하게됩니다. 내 입장만 보다보니 어떤 상황이든 남의 탓만 하면서 혼자만의 섬에 갇히게 됩니다. 



 배움의 시작, 관계의 시작, 경청.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中에서-


관계의 시작점에는 늘 귀 기울임이 있습니다. 그 시작이 말하는 사람의 인상적인 모습이나 표현으로 인해 타의적으로 일어났든 스스로의 관심과 호기심에 의해 자의적으로 일어났든 귀기울인 순간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반짝이는 연결이 일어납니다. 그 연결로 인해 나라는 섬과 상대라는 섬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귀 기울임은 관계지음이고 관계지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말하는 사람이, 그리고 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 하나의 의미가 되어 다가옵니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꽃을 피우는 일'입니다. 
듣는 것이 그의 이름을 아는 것이라면,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입니다. 듣는 것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동적인 일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인 행위로 바뀌는 순간, 그 순간 듣는 것에서 '귀 기울여' 듣는 것으로 바뀝니다. 

귀 기울임은 내 말과 생각의 볼륨을 잠시 줄여놓고 상대의 생각, 상대의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입니다. 그래서 귀 기울여 듣는 것은 행위 이전에 마음의 태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일 수도 있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까 궁금해 하는 호기심일 수도 있고 상대를 이해하고 더 알고 싶은 간절함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나요? 어떤 마음이 귀를 기울이게 하나요? 여러분의 마음의 귀를 키우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귀를 귀울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건 상대방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진실한 소망을 나타낸다. 
-J.이샴(J.Isham)-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은 나라는 섬과 너라는 섬 사이에 다리를 잇는 일입니다. 

그 섬이 이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귀를 기울이면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 봅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물음이 올라옵니다. 상대방의 경험과 생각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물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느낌이 생깁니다. 상대의 마음에 대해 이해해서 일어나는 공감일 수도 있고 비슷한 경험이 생각나 일어나는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에 있던 내 생각에 부족함이나 놓친 부분을 생각하면서 더 나은 생각으로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이전에 있던 감정이 흘러가고 새로운 감정으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으면 배움이 일어납니다. 배움은 물음과 함께 일어납니다. 배움은 느낌과 함께 일어납니다. 배움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여 들으면 배움이 일어납니다.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은 마음의 태도를 필요로 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루 중 단 한번의 작은 귀기울임이라도 반짝이는 연결을 이뤄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경험 속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작은 귀기울임이 일어난 순간을 소중히 여겨보는 것이 어떨까요. 한 번의 귀기울임으로 일어난 감동과 변화, 배움들을 소중히 여겨나가다 보면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힘이 더 자랄 수 있을거에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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