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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Jul 10. 2018

12. 오빠 생각

  볕이 따뜻한 일요일 오전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아침을 먹고 상을 치운 지 얼마 안 된 시간.. 은우는 이때의 나른함과 평온함이 좋았다. 일요일 아침은 은우네, 혁이네, 순미네 세 식구가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은우는 그 시간에 다른 때 느끼지 못하는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후에 찾아오는 나른한 무료함이 더 없이 편안했다.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우고, 은수까지 놀러 나가서 조용한.. 점심을 먹기 전까지의 평온한 시간이 오면 은우는 혁이네와 순미의 방을 기웃거렸다. 강냉이 뻥튀기와 콜라를 옆에 두고 만화책을 즐겨 보는 이모부 옆에서 뻥튀기와 콜라를 얻어먹기도 했고, 팝송을 틀어 놓고 방 청소를 하는 순미를 돕기도 했다.     


  혁이네서 뻥튀기와 콜라를 얻어먹은 은우는 순미의 방에 들어갔다. 순미는 옷을 갈아입을 때가 아니면 대체로 방문을 열어 놓는 편이어서, 은우가 거실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마주보고 있는 순미 방의 문지방을 들락거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방 청소를 끝낸 순미는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이라고 해 봐야 밥상 두 개를 연이어 벽에 붙여 놓은 것이었지만 단칸방의 공간 활용으로는 충분했다. 책상 위의 교과서, 문제집, 카세트테이프 등을 정리하던 순미는 책들 밑에 깔려 있던 편지 봉투를 집어 들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봉투 안의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편지 봉투 테두리의 빨강, 파랑의 굵은 사선을 본 은우는

  - 누나, 그 편지 외국에서 온 거야?

  - 응? 어떻게 알았어?

  - 봉투에 이렇게 빨강, 파랑 줄 있잖아. 우리 아빠도 사우디에 돈 벌러 갔었거든. 

    그래서 그 편지 봉투에 편지도 써 봤어.

  - 아, 그랬구나. 응, 외국에서 온 거야.

  - 외국, 누구?

  - 음.. 울오빠.

  - 오빠?

    누나, 오빠 있어?

  - 응, 아주 늠름하고 멋있는 오빠 있어. 누나한텐 최고의 오빠야.

  - 우리 아빠처럼 사우디 간 거야?

  - 아니, 울오빠는 원양 어선 선원이야.

  - 원양 어선 선원? 그게 뭔데?

  - 멀리 배타고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거야. 물고기 잡으러.

  - 어느 나라에?

  - 음.. 원양 어선은 어느 나라 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만 우리나라에 와.

  - 우와! 좋겠다. 외국에도 많이 가고.

  순미가 편지를 마저 읽는 동안 은우는 순미가 빌려 온 순정 만화책을 들춰 보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순미에게 눈길을 돌렸는데, 그 사이 순미의 눈망울이 젖어 있었다. 

  - 누나, 오빠 보고 싶어?

  순미는 금방이라도 넘쳐날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기 머금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 두 달 뒤면 한국에 와. 그때는 누나 보러 여기에도 올 거야. 누나가 편지에 은우 얘기도 썼어.
    아마 울오빠가 오면 은우한테 과자도 많이 사 줄걸?

  - 정말?

  은우는 순미의 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 은우야, 누나랑 만화책 반납하러 같이 갈래? 누나가 오면서 뻥튀기 사 줄게.

  - 응!     


  별이 총총한 가을밤, 은우는 찌르르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옥상 평상에 누워 별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는 지그시 눌렀다 떼기를 반복했다.

  - 은우야, 여기 누워서 뭐해?

  은우는 순미의 목소리를 듣고 벌떡 상체를 일으키고는

  - 누나, 이거 알어?

    이렇게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살짝 누르면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별이 보인다. 

    빠알간 우주에 파랑, 노랑, 초록별들이 엄청 많이 보여.

  - 그래?

  - 누나도 해 봐.

  순미는 은우 옆에 앉아서 은우가 시키는 대로 두 눈을 감고 양손으로 가리며 지그시 눌렀다.

  - 어때? 보이지?

  - …….

  - 안 보여?

  - 글쎄.. 누나는 잘 모르겠는데?

  - 어? 아닌데? 그럼 여기 누워서 하늘을 보고 해 봐.

  순미는 은우의 진지함에, 마지못해 곁에 누워 똑같이 해 보았다.

  - 보이지? 아직도 안 보여?

  - 음.. 누나는 안 보이는데? 우리 은우가 상상력이 풍부한가 보다.

  - 어? 아니라니까, 상상이 아니라 진짜 보인다니까.

  - 그래, 알았어.

  - 어? 왜 누나는 안 보이지? 우리 엄마도 보인다고 했는데?..

  평상에 누운 순미는 잠시 말없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미 알고 있는 동요지만 순미의 감정이 이입되어 더 처량하게 느껴지는 노래를 듣던 은우는 순미 곁에 누워서 순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팝송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는, 항상 웃는 얼굴의 앳된 단발머리 소녀.. 지금 소녀의 눈에서 촉촉한 별이 빛나고 있었다.

  - 누나, 오빠 생각해?

  - 응..

  - 오빠가 누나한테 잘 해 줬어?

  - 그럼, 최고의 오빠지. 

    이번에 올 때는 기타 사다 준댔어.

  - 기타?

  - 응, 누나가 편지에 기타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오빠가 이번에 들어올 때 사다 준댔어.

  - 와! 좋겠다, 누난.

  - 그럼.

  - ……. 

    누나, 근데 여기 왜 올라왔어?

  - 아차! 빨래 걷으러 왔는데.

    은우 너도 내려가자, 이제.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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