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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Jul 01. 2018

13. 이사

  민영이 할머니네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웬 낯선 여자의 모습을 본 은우는 걸음을 늦추었다. 

  ‘누구지?..’

  은우가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여자와 눈이 마주친 은우는 엉겁결에 인사를 하고 말았는데, 세련된 옷차림의 예쁜 여자는 웃으며 눈인사로 답해주었다. 그때, 열려진 대문으로 민영이가 나오는 게 보였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든 할머니와 함께였다. 민영이 할머니에게서 가방을 받아 든 여자는 민영이의 손을 잡고 할머니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골목길 계단을 민영이와 함께 내려가는 것이었다. 은우는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민영이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아래로 이어진 골목길 중간에 멈춰 선 민영이가 뒤를 돌아봤다. 뜻밖에도 민영이와 눈이 마주친 건 민영이 할머니가 아니라 은우였다. 

  - 친구니?

  민영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잠깐 인사하고 올래? 엄마가 기다려 줄게.

  민영이는 잡았던 엄마의 손을 놓고 은우를 향해 걸어왔다. 은우 역시 민영이를 향해 다가갔다. 

  - 너네 엄마니?

  고개를 끄덕이는 민영이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 나, 아주 가.. 잘 있어.

  - ?..

  은우는 미안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으로 민영이를 바라보다

  - 잘 가..

  민영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은우도 민영이의 손을 맞잡았다. 

은우가 떠나가는 민영이의 뒷모습을 배웅하는데.. 엄마를 향해 힘없이 걸어가던 민영이가 갑자기 뒤돌아서 은우를 향해 뛰어오더니

  - 이거 너 가져.

  은우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고 가는 것이었다.

은우가 펼친 손바닥엔 민영이와 함께 가지고 놀았던 형광색 얌체공이 놓여 있었다.   


  며칠 후, 은우는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민영이가 갑자기 떠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 애 아빠가 밖에서 딴살림을 차렸대나 봐. 여자도 배울 만치 배웠다는 모양인데, 참고 살겠어?

  - 그야 그렇지.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이나 참고 살지, 왜 아니겠어?

  - 그나저나 그 여자 곱더라. 늘씬한 게, 젊어 보이고. 누가 애엄마로 보겠어?

  - 으이구, 돈만 있어 봐. 우리도 그만큼 꾸미면 다 이쁘지. 밖에서 돈을 벌어? 뭘 해? 

    집에서 살림하면서 자기 몸만 가꾸면 되는데..

  - 긍가? 하긴, 우리도.. 호호호호~   


  - 은우야, 누나랑 시장 갈래? 누나가 호떡 사 줄게.

  밖에서 놀다 들어온 은우에게 순미가 말했다.  

  - 응! 좋아.

  시장으로 내려가는 비탈길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순미를 보고 은우가 말했다.   

  - 누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순미는 은우와 눈을 맞추고 밝게 웃더니

  - 내일, 울오빠 오거든. 오빠가 좋아하는 거 만들어 주려고.

  - 누나도 음식 만들 줄 알어?

  - 그러엄~ 누나도 조금은 할 줄 알아. 그리고 아줌마랑 이모가 도와준댔어.


  순미는 시장에서 신선한 고기와 야채, 과일 등을 샀다. 양손 가득한 양으로도 모자라 은우까지 신문지에 싼 고기와 두부, 콩나물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었다. 집으로 가는 언덕길 호떡 포장마차 앞에 멈춰 선 두 사람은 잠시 짐을 내려놓고 호떡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먹었다. 은우는 뜨거운 호떡에서 흐르는 흑설탕 꿀물이 바닥에 떨어질까 호호 불어가며 혀로 핥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순미가

  - 맛있어?

  - 응!

  - 하나 더 사 줄까?

  - 진짜? 응!     


  다음 날, 평소보다 일찍 학교를 마치고 온 순미를 보고 은우가 물었다.

  - 누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 으응, 조퇴했어.

  순미는 어제 미리 준비한 오빠가 좋아하는 반찬말고도,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는 부침개나 무침 등을 오빠가 오는 저녁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퇴한 것이었다. 순미는 혁이 엄마의 도움을 받아 부지런히 동그랑땡과 묵무침 등을 만들었다. 음식 준비를 끝낸 순미는 방청소는 물론 앞마당까지 쓸고 오빠가 오길 기다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은우네 혁이네 식구 모두가 다 돌아온 후에도 순미 오빠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순미 오빠는 오지 않았다. 종종 배가 늦게 도착하거나 태풍 등의 영향으로 며칠씩 지연되는 일이 흔한지라, 순미는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불안감은 감추지 못했다. 그런 순미를 은우 엄마와 혁이 엄마가 별일 아닐 거라며 위로해 주었다.       


  - 계세요?

  앞마당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혁이 엄마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누구세요?

  - 저, 여기가 김 순미 학생 사는 집 맞나요?

  - 네, 그런데요. 아~ 혹시 순미 오빠세요? 

  - 아니요, 순미 학생 오빠는 아니구요. 그런데.. 일단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 ?..     


  그날 밤, 순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은우 엄마와 아빠는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혁이 아빠의 택시를 타고 나갔고, 집에 남은 은우 형제는 혁이 엄마가 챙겼다. 잠이 들었던 은우는 새벽에야 돌아온 엄마 아빠를 잠결에 확인하고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 아이고,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노~ 아이고 우리 아들..

  아침부터 들리는 곡소리에 눈을 뜬 은우는 퉁퉁 부은 눈의 순미와 하얀 소복 차림의 순미 엄마를 보았다. 


  순미 오빠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순미네 식구는 은우네 집에 머물렀다. 누구도 직접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은우는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통해 순미 오빠가 칼에 찔려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늦은 저녁 입항한 배 탓에 동료들과 저녁이나 먹고 헤어진다는 게 자연스레 밤늦도록 술자리로 이어졌고.. 술자리는 자정이 넘어서야 파했는데, 순미를 보기 위해 은우네 집에 오는 길에 그런 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동료들과 헤어지기 전 순미 오빠는 급여로 받은 꽤 큰돈을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시신이 발견될 당시 돈 봉투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따라서 경찰은 동료 선원들 중 하나가 범인일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지만 범인은 아직 잡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미 오빠의 시신 옆에는 부서진 기타가 함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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