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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Jul 15. 2018

11. 이웃사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은우는 집 앞 골목 계단에서 놀고 있는 또래 남자 아이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못 보던 얼굴이었다. 동네 아이들답지 않게 뽀얀 얼굴과 세련된 옷차림이 다른 곳에서 온 아이 같았다. 은우는 자기네 집과 마주보고 있는 한옥 대문이 열린 걸로 봐서 맞은편 집 할머니네 손자가 놀러온 거려니 짐작했다. 맞은편 집 할머니네와 은우네는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할머니 때문이었는데, 달동네에서 유일하게 부잣집 한옥에 사는 할머니는 동네 주민들을 업신여겨서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인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은우가 할머니네 대문 안을 들여다본 건, 은우네가 이 동네로 이사 온 첫날 엄마 심부름으로 이사 떡을 돌렸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금테 안경을 쓰고 늘 단정하게 쪽진머리를 하고 다니는 할머니는 마주칠 때마다 큰 소리로 머리 숙여 인사하는 은우에게 건성으로라도 대답 한번 해주지 않았다. 그런 비호감 할머니의 손자로 짐작되는 아이이니만큼 못 본 척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얌체공이 은우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 너, 이 집에 왔니?

  - 응.

  - 나는 여기 살아. 근데, 너 몇 살이야?

  - 여덟 살..

  - 어? 나도 여덟 살인데..

  - 너, 이사 왔어?

  - 응.

  - 그럼 학교는?

  - 전학 왔어. 소월국민학교에.. 

  - 어? 나도 소월국민학교 다니는데.. 1학년 4반 11번. 너는 몇 반이야?

  - 아직 몰라. 내일 가면 알려 준댔어. 

  - 근데, 너 어디서 이사 왔어?

  - 서울.

  - 아..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아이가 조몰락거리던 얌체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은우가 ‘우리 같이 놀래?’라고 묻자, 아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와 아이는 얌체공을 가지고 놀았다. 은우가 보기에 아이는 밖에서 놀아 본 경험이 많이 없는 것 같았다. 엄청난 탄력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을 둘이서 주고받는 시간보다 아이가 받다가 놓친 얌체공을 주우러 가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은우 입장에선 아이의 무딘 운동 신경 탓에 얌체공을 주고받는 재미가 덜해서 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자기한테는 없는 얌체공을 가지고 놀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 민영아, 뭐 하니?

  이번에도 얌체공을 받다가 놓쳐서 주우러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은우의 뒤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 할머니! 

  얌체공을 주워 들고 달려온 아이의 어깨를 감싼 옆집 할머니는 못마땅하게 은우를 쳐다보더니

  - 가자, 민영아. 점심 먹자. 할머니가 고기 사 왔어.

  할머니의 손에 들려 있는 플라스틱 장바구니 안엔 신문지에 싸인 고기와 대파를 비롯한 야채들이 들어 있었다.

  - 할머니, 은우도 소월국민학교 다닌대요. 1학년 4반.

  할머니는 대꾸 없이 민영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은우네 대문 앞에 내팽겨진 은우의 책가방을 본 할머니는 은우의 얼굴을 한번 더 흘겨보았다.         


  얼굴을 익힌 은우와 민영이는 첫 만남 이후로도 계속 어울렸다. 등하굣길을 함께 하기도 했고 학교를 마치고 와서는 거의 매일 같이 놀았다. 하지만 항상 한창 재밌게 놀 때 민영이를 불러들이는 할머니 탓에 노는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민영이와 놀면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반갑게 자신을 봐 줄지도 모른다는 은우의 기대 또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민영이를 부르러 나오실 때나 외출에서 돌아오시면서 민영이를 데리고 갈 때, 종종 할머니 손에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가 들려 있었는데.. 언제나 한 개뿐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장을 보러 가셨던 할머니가 돌아오자 민영이는 할머니를 따라 들어가다

  - 할머니, 나 은우랑 더 놀다 들어가면 안 돼요?

  예상치 못한 민영이의 말에 놀란 건 은우나 할머니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민영이의 손을 잡아끌었고, 민영이는 손을 빼며 거부했다.

  - 나, 더 놀다 들어갈래!

  당황한 할머니는 지켜보고 있던 은우를 흘겨보더니 싫다는 민영이를 억지로 끌고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할머니가 민영이를 크게 꾸짖는 소리가 들리고, 집에 들어가려는 은우의 귀에 들리는 소리..

  - 저렇게 못사는 애들하고 어울리면 안 돼. 이제 학교 가는 길도 알았으니까, 내일부터 학교도 혼자 가.

  그 뒤에 민영이가 뭐라고 반박하며 대드는 것 같았지만 은우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민영이네 할머니가 그토록 못마땅한 자신을 왜 그동안 민영이랑 놀게 했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머릿속에서 분노로 차오를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은우는 민영이가 나오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학교로 향했다. 얼마쯤 가고 있으려니 뒤에서 민영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은우아, 같이 가자!

  은우는 민영이가 오길 기다렸다가, 뛰어와서 숨이 찬 민영이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쏘아붙였다.

  - 나 이제 너랑 안 놀 거야. 이제 학교도 너 혼자 가.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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