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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Jul 22. 2018

10. 바람떡

  은우는 걱정부터 앞섰다. 엄마가 출근하기 전 은우에게 퇴근 시간에 맞춰 시장 앞으로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갔는데, 혼자만 나오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화난 표정은 아니었지만 따로 불려서 좋은 소릴 들은 적이 없었기에, 내심 약간의 기대와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의 그림자가 더 컸다.    

  엄마가 올 시간보다 조금 앞서 도착한 은우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은우에게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인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 아니었다. 늘 화가 나 있고 조금만 잘못해도 매를 드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지금 이 시간도 은우는 걱정의 그림자가 없는 온전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반가움이기만을 바랐지만 불안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었다.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날 따뜻하게 안아 주지 않을까?..’

  은우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안겼던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언제나 아들딸들에게 친절할 순 없겠지만, 때론 매를 댈 때도 있겠지만.. 그 끝은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은우는 급 우울해졌다. 은우가 그 우울감을 떨치고자 발끝을 바라보며 괜스레 발길질을 하는데 

  - 언제 나왔어? 오래 기다렸어?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은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전에 없던 상냥한 말투와 다정한 손길.. 평소와 다른 엄마의 다정함이 은우는 어색함을 넘어 불편했다. 

  - 가자.

  엄마는 은우의 손을 꼭 잡고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은우는 엄마가 자신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시장 입구 떡집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함께 풍겨 오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침을 삼켰다. 은우가 가장 좋아하는 바람떡.. 엄마는 단 한 번도 시장에서 바람떡을 사 준 적이 없었다. 은우가 바람떡을 먹을 수 있는 때는 외할머니를 따라 잔칫집에 가거나 엄마 아빠를 따라 결혼식장에 갈 때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우는 시장 골목을 지날 때마다 떡집 앞에 진열된 하양, 분홍, 쑥색의 먹음직스러운 바람떡을 눈으로나마 음미하곤 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멈춘 곳은 뜻밖에도 떡집이었다. 은우는 엄마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 이모, 여기 바람떡 2인분만 주세요.

  - !.. ?..

  은우는 어리둥절했다. 엄마가 떡을 사 가려는 것인지, 먹고 가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기대감이 현실로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 은우야..

  - 네?

  엄마는 은우의 이름을 부르고는 말없이 은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 우리 은우가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다 됐네..

  바람떡 2인분이 테이블에 올려지자

  - 은우야, 이거 너 다 먹어. 

  - ?.. 은수는?..

  - 은수 신경 쓰지 말고 은우 혼자 다 먹어. 우리 은우.. 바람떡 좋아하잖아.  

  은우는 평소와 다른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바람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쫄깃한 떡의 질감과 달콤한 팥소의 맛.. 은우는 맛도 제대로 음미하지 않고 허겁지겁 바람떡 세 개를 집어먹은 후에야 

  - 엄마는?..

  -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우리 은우가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오늘은 은우 먹고 싶은 만큼 천천히 실컷 먹어.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맛을 최대한 음미하면서 바람떡을 먹었다. 먹는 중간 목이 메어 물을 마시는 은우를 보고, 엄마는

  - 이모, 여기 우유도 하나 주세요.

  은우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혼자서 바람떡 2인분에 우유까지 먹다니..

  - 은우, 학교 가면 잘할 수 있지?

  은우는 엄마가 묻는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고개부터 끄덕였다.

  - 그래, 우리 은우는 똑똑해서 잘할 거야.

  뒤늦게 엄마가 말한 의미를 파악한 은우는 제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마가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그 얘기를 들으면, 이 맛있는 바람떡의 맛을 마음껏 음미하지도 못하고 체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더 이상 공부 얘기는 하지 않았고, 우유가 묻은 은우의 입가를 닦아 주면서 은우의 얼굴을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은우는 오늘만큼은 엄마가 천사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엄마가 계속 이렇게 천사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떡 때문이 아니었다. 은우는 엄마의 다정한 말과 따뜻한 손길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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