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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22. 2018

너는 내 진짜 모습을 몰라

나는 너를 모르기 때문에 사랑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을 사랑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별히 훌륭한 구석도 없고, 외모도 아름답지 않고, 성격도 특별히 좋지 않은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완전히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찾아내고 주시하는 것이다.       


 - Friedrich Nietzsche


  "제가 형을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얼마 전에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화려한 인생을 사는 동생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부분에서 존경심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고맙다 말은 했지만 썩 즐겁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모자란 형을 치켜세워주는 동생의 고귀한 인성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는 칭찬을 견디지 못한다. 칭찬을 들으면 상대방이 내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나는 언제나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상상하고, 그를 닮고 싶어 한다. 그래서 타고난 기질과 달라도 따라 할 수 있는 그의 몇 가지 특징을 찾아 나의 가면으로 만든다. '예의 있는', '열정적인', '중립적인', '자신감 넘치는' 따위의 것들. 그러고는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가면 속 나의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긍정적 평가는 가면의 덕으로 돌린다. 그래서 칭찬은 상대방과 나의 간극을 더 넓혀버린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부정적 평가는 쌓여서 무가치한 인간으로 표상되는데, 내가 그걸 가면 속 진짜 얼굴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사랑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사랑에 빠지면 '무가치성'이라는 부정적 자아 개념에 갇힌 채로 사랑하는 대상과 저울 위에 서게 된다. 나는 상대방의 가면 속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나는 가면을 벗은 채로 저울 위에 올라가고 상대방은 가면을 쓴 채로 올라간다. 당연하게도 저울은 더 완벽해 보이는 상대방에게로 기운다. 또다시 내가 받은 사랑은 가면의 덕으로 돌아가고, 사랑의 대상이 내게 느낀 실망감은 나의 얼굴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처럼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스스로를 상대방보다 못한 존재라 믿고 불공정연애를 자처하는 것일까?


  대체로 '가면 쓰기'는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의미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상황에 맞는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 앞에서는 효심 지극한 자녀의 가면을 쓰고 상사 앞에서는 열정적인 사원의 가면을 쓰는 것. 사회는 '가면 쓰기'에 서툰 사람들에게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른다거나 철이 덜 들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가면 쓰기'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내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불공정연애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나를 무너뜨리는 건 내가 '가면을 쓴 인간'이라는 점이 아니라 '가면이 필요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이 고민은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질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정말 무가치하고 무책임한 고민이다. 

 

  사람마다 꿈꾸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다르다는 것은, 내 것과 똑같이 생긴 가면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person)' 은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persona)'에 어원을 두고 있다. 결국 '가면을 쓰고 있는 나'는 '나' 그 자체이다. 나의 가면은 단 하나뿐이며, 나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가면을 쓰고는 있지만 가면이 내 얼굴과 똑같이 생긴 셈이다.


  또한 우리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을 때 부풀어 오르지 않았던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무심코 보여주었던 불완전함으로 인해, 둘이 하나가 된 것 같은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미숙한 나의 면면들. 알고 보면 비밀은 들킬 때 비로소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게 사람 맘인지라, 나는 아직 나의 얼굴을 당당히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내가 자문했던 자기파괴적인 고민이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는 것을 곱씹으며 맘을 다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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