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는 은근한 끌림
친한 형과 함께 술을 마셨다. 형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 말했다.
'그대가 높게 올려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너무 높아 어지로와'
우리는 술과 노래에 취해 하늘을 날아다녔다. 우주가 나를 잉태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무한한 공간 속에 둘만 남겨진 느낌. 그 형과 함께라면 우주를 떠다녀도 두려울 게 없을 것만 같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자꾸만 눈이 가는 사람이 있다. 앉은 자세, 표정,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과 웃음소리. 그 외에도 말 못 할 요소들이 모여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은근한 느낌은 그와 계속 대화하고 싶게 만들고,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고 무슨 향수를 뿌리고 왔든지 간에, 우리는 그에게서 어렸을 적 썼던 비누 냄새를 맡는다.
'오묘한 분위기'는 '듬직하다'는 느낌과 유사한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다. 듬직한 사람에게는 덩치나 개인의 역량, 확실한 대안 등의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데, '오묘한 분위기'가 있는 이들은 그런 걸 전혀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위기에는 출처가 없다. 아이가 엄마의 젖을 찾는 것처럼,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욕구는 순전히 본능을 따른다. 그가 길을 헤매고,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다.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수더분한 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인데, 그보다 더 매력적인 건 앞에서 말한 '오묘한 분위기'가 짙게 풍긴다는 점이다. 나를 포함한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미 그가 그러한 분위기의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딜 가나 그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분위기는 몇 번이나 우리의 대화 주제로 언급됐지만, 항상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향한 동경. 나는 그를 닮기 위해 꽤나 노력하는데, 결과는 매번 좋지 않다. 나는 내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던 이유를 고민해봤다.
"오묘한 분위기는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거 아닐까?"
얼마 전에 알게 된 친구는 분위기의 출처를 '여유'일 것이라 추측했다. 사실 궁금한 건 그 여유로움의 출처였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신비롭다는 것, 그래서 항상 동경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말이다.
"꾸며진 여유로움은 알아채기 쉽잖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다시 꾸미려면 경험이 필요하고."
친구는 내 노력의 실패 이유를 고민해보더니, 경험의 부재가 문제일 것이라 진단했다.
'여유로워 보이기 위한 너의 노력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
그 말이 맞았다. '오묘한 분위기'를 닮기 위한 노력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은 닮고자 마음을 먹는 순간 닮을 수 없는 게 되기 때문이다. '오묘한 분위기'는 '무언가를 닮고자 하지 않는 것'을 근간으로 두고 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이미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나의 가치에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도 나는 나의 가치를 믿고 나에 대한 확신이 있는 '척' 하며 의미 없는 노력을 계속 반복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는 경험으로 꾸며진 여유를 아닌 척 다시 꾸밀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경험이 그저 확신만을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내게서 '오묘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