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하는 사유 Aug 08. 2020

타투가 하고 싶다

평생의 숙원을 아직 이루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에 정통성을 부여해주기를 요구할 때 일어나는 문제는 정확한 정체성을 가지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될 위험이 생긴다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나는 스무 살 때부터 핸드폰으로 타투이스트들의 작품을 구경하다 잠이 들곤 한다. 타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해왔는데, 막상 했다가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섹시한 타투를 한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날까 두려워 계속 미루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날들이 지속수록, 지인들은 내가 고민만 하다가 결국 타투를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갓 성인이 돼서는 고래 타투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손목에 고래를 분양받는 것 같아 금세 맘을 접어야 했다. 그다음으로 내 이목을 끈 건 영화 '헤드윅'의 문신이었는데, 웹서핑을 하다 보니 똑같은 문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그마저도 바로 맘을 접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타투가 뭘까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영화 '해드윅' 中 <주인공 헤드윅 로빈슨의 타투>

  타투를 몸에 새기길 원하지만, 시도조차 못한 많은 이들의 고민은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타투를 새긴 이들에게 버릇처럼 섹시하다는 말을 내뱉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타투가 얼마나 매력적이느냐는 두 번째 문제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확신을 가졌다는 점. 그 점이 그들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항상 선택을 미루고 책임을 전가하던 내게는, 스스로 평생 함께할 무언가를 이미 고른 그들이 꽤 멋있는 인간으로 보인다.


  걱정이 많은 이들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에 빠진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뭐라고 답할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내가 지는 것이 싫어서, 그래서 항상 긴 시간 고민하고 주변의 의견을 묻는다. 이러한 버릇은 본인에게도 꽤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행동은 여간해서는 고치기가 어렵다.


1. 에라이 그냥 될 대로 돼라

2. 어라, 별 문제없네?


  위 과정의 반복이 사람을 불도저로 만드는데, 선택에 대한 책임이 그나마 덜한 유년기에 이 습관을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회초리를 집어 든 아버지가 무서워 형의 뒤로 숨었던 나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부모가 아이의 책임을 덜어주는 과정. 그 안에 사랑이 가득했다면 진취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사랑이 조금 모자랐다면 누군가의 눈에 막무가내로 비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어찌 됐든 그런 과정이 반복될 때 본인의 선택에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 너무 막중했고, 더불어 사랑도 썩 부족했던 것 같아서. 이제와 버릇을 고치기에는 많이 늦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사표현이 확실한 이들은 매력적이다. 그들의 옆에 있으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완전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누군가가 맘에 들 때,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에 거침없어지려 노력한다. '나쁜 남자'가 이상형의 조건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거라 생각한다.


  하여간 오늘도 이런 이유로 타투를 좀 고민해봤다. 오늘 밤에는 장난감을 몸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결정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이전 10화 가난한 연인들에게 필요한 덕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