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에 정통성을 부여해주기를 요구할 때 일어나는 문제는 정확한 정체성을 가지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될 위험이 생긴다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나는 스무 살 때부터 핸드폰으로 타투이스트들의 작품을 구경하다 잠이 들곤 한다. 타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해왔는데, 막상 했다가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섹시한 타투를 한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날까 두려워 계속 미루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날들이 지속될수록, 지인들은 내가 고민만 하다가 결국 타투를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갓 성인이 돼서는 고래 타투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손목에 고래를 분양받는 것 같아 금세 맘을 접어야 했다. 그다음으로 내 이목을 끈 건 영화 '헤드윅'의 문신이었는데, 웹서핑을 하다 보니 똑같은 문신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그마저도 바로 맘을 접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타투가 뭘까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
영화 '해드윅' 中 <주인공 헤드윅 로빈슨의 타투>
타투를 몸에 새기길 원하지만, 시도조차 못한 많은 이들의 고민은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타투를 새긴 이들에게 버릇처럼 섹시하다는 말을 내뱉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타투가 얼마나 매력적이느냐는 두 번째 문제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확신을 가졌다는 점. 그 점이 그들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항상 선택을 미루고 책임을 전가하던 내게는, 스스로 평생 함께할 무언가를 이미 고른 그들이 꽤 멋있는 인간으로 보인다.
걱정이 많은 이들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에 빠진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뭐라고 답할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내가 지는 것이 싫어서, 그래서 항상 긴 시간 고민하고 주변의 의견을 묻는다. 이러한 버릇은 본인에게도 꽤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행동은 여간해서는 고치기가 어렵다.
1. 에라이 그냥 될 대로 돼라
2. 어라, 별 문제없네?
위 과정의 반복이 사람을 불도저로 만드는데, 선택에 대한 책임이 그나마 덜한 유년기에 이 습관을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회초리를 집어 든 아버지가 무서워 형의 뒤로 숨었던 나는, 무언가를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부모가 아이의 책임을 덜어주는 과정. 그 안에 사랑이 가득했다면 진취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사랑이 조금 모자랐다면 누군가의 눈에 막무가내로 비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어찌 됐든 그런 과정이 반복될 때 본인의 선택에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이 너무 막중했고, 더불어 사랑도 썩 부족했던 것 같아서. 이제와 버릇을 고치기에는 많이 늦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사표현이 확실한 이들은 매력적이다. 그들의 옆에 있으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완전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누군가가 맘에 들 때,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에 거침없어지려 노력한다. '나쁜 남자'가 이상형의 조건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거라 생각한다.
하여간 오늘도 이런 이유로 타투를 좀 고민해봤다. 오늘 밤에는 장난감을 몸에 새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결정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