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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Dec 28. 2018

네가 죽으면 울 수 있을까

내 눈물은 너를 위한 걸까, 나를 위한 걸까

  그 장례식에서 나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영구가 묘지를 향해 출발하자마자, 끓는 물에 데친 시금치 생각에 몰두했다. 시금치에다 멸치를 보탰더니 흐느낌이 더욱 격렬해졌다. 나의 형 콩라드마저도 나만큼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 '타나토노트' 中


  현역 복무 시절, 주말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에 간부가 내게 조용히 찾아왔다.


  "너 왜 할머니 얘기 안 했어?"


  간부는 당장 위병소로 가보라며 나를 서둘러 일으켜 세웠다. 할머니는 내가 탈영했다는 환청을 듣고 내가 수료한 신교대를 찾아가 내가 없는 걸 확인한 뒤에, 파출소로 끌려가 이리저리 방황했다고 했다. 그러다 결국 경찰차를 타고 내가 근무하고 있던 부대로 찾아왔던 것이다. 나는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고 위병소로 달려 나가 할머니와 면회를 했다. 면회장 안에는 나와 할머니뿐이었다. 이놈아 왜 탈영했어? 할머니 저 여기 이렇게 있잖아요.  

 

  그 이후로 한동안 할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형에게 전화했는데, 할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전달받았다. 나 모아둔 휴가 있는데 사정해서 일찍 나가볼까?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신 거 같아.

  그리고 전역한 지 딱 한 달 되는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생전에 그들이 할머니를 얼마나 챙겼든 간에, 슬픔을 나누는 건 살아있는 자들의 마땅한 도리였다. 친척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암시하는 직접적인 말을 아끼며 슬픔에 동조했다. 어려서부터 형과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입대하기 전까지는 내가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으니 친척들은 그 와중에 나의 눈치를 조금씩 봤던 것 같다.


  어떤 장례식장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고, 모두들 느끼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질적인 상황들이 겹쳐 있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술판을 벌이고 화투를 치는 조문객들이 있었고, 우리는 사람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고프기도 했고, 그 와중에 편육이 참 맛있기도 했다. 누군가가 죽었지만 누군가는 먹어야 했고, 슬프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반가웠고, 들어온 부조금을 모아놓고 어떻게 나눌지 의논하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가 느끼는 이 슬픔이 진짜 슬픔인지 의문이 들었다. 잔뜩 취한 아버지가 안치실을 찾아가 할머니를 껴안은 채 이미 늦어버린 사랑고백을 할 때도, 나는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장례지도사가 할머니의 굳은 몸을 억지로 펴가며 수의를 입힐 때도 나는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사촌동생이 내게 물었다.


  "형은 왜 안 울어? 안 슬퍼?"



  나는 그제야 조금 눈물을 흘렸다.


  나는 슬픈 상황이 닥치면 미소를 짓는 버릇이 있다. 기뻐서 웃는 건 아니고, 나의 슬픔이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확인해보는 거다. 거울을 보고, 울면서 웃어본다. 나는 진심으로 슬픈 게 아닌가 봐.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눈물은 의도하지 않았고 웃음은 의도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 슬픔이 진짜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항상 신경 쓰지 않기 위한 노력이 가장 신경 쓰이는 법이다. 내 감정에 의심을 갖지 말자는 생각이 들면 그 이후로는 절대 내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 끊임없이 감정을 의심하고,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비난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문득 할머니가 떠올라 울컥할 때마다 버릇처럼 웃어본다.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의 비보에 진심으로 울 수 있을까. 과연 네가 죽는다면, 나는 진심으로 울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내 눈물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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