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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Dec 21. 2022

하얀용 세계관AMA 제작 강의 요약본 3

김동은WhtDrgon. 221215

3강. 세계관 구성요소와 세계관 제작 사례 분석

[강의 전체 목차]

1강 - 오리엔테이션과 메타버스와 세계관

2강 - 세계관 개요 및 세계관 제작의 연습

3강 - 키워드 클라우드, 메시지와 장면, 핵심키워드·반응키워드

4강 - 진입경로, 세계관 세팅, 키워드 시트, 오프닝, 전사

5강 - 커뮤니티의 중점, 메타버스·세계관·커뮤니티의 관계


[세계관의 구성 요소]

세계관은 1인 창작이 아닌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 세계관 제작을 의뢰한 결정권자, 세계관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자 등 제작 단계에 사공이 많은 것이다. 그러니 배가 산으로 가기 쉽다. 방향을 잡기 위해 아래 목차를 체크리스트로 활용하면 다른 창작자와 소통하는 데 혼선이 줄어들 것이다.  

    제목  

    로그라인(한 줄 요약)  

    하이컨셉(장르)  

    오프닝 시놉시스(도입부 시나리오)  

    전체 줄거리  

    시나리오 모듈  

    핵심 키워드(세계관의 분위기 )


[세계관 제작 순서]

목차는 다른 창작자나 의사결정권자가 보기에 편하도록 만든 순서일 뿐, 실제 세계관 제작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하이컨셉  오프닝 시놉시스  시나리오 모듈  핵심 키워드  로그라인  제목’으로 진행한다(각 단계에 대한 소개는 본 강의 후반부에 다룬다). 순서대로 세계관을 제작하기에 앞서 먼저 떠오른 장면이나 문장, 키워드 등이 있다면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다. 순서라는 것은 세계관의 코어를 만들고 단단하게 하는 과정인데, ‘코어’가 이미 있다면 코어를 분석하는 것이 오리지널리티를 정립하기에 좋다.

실제로 세계관을 제작해보면 세계관이 마치 생명을 지닌 듯 확장되고 연결되는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계관은 설계도대로 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완성된다. 

가령 목욕탕에서 때가 비처럼 내리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장면이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키는지, 왜 하필 목욕탕인지, 때는 어떤 의미인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스스로 질문에 답하면서 점점 살을 붙여가다 보면 세계관의 핵심 키워드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이 예시는 실제로 하일권 작가가 웹툰 <목욕의 신>을 만들 때 작업했던 방식이다. 이렇게 장면에서 시작하는 방법 외에도 특정 장르에서 출발하거나 핵심 키워드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출발점이 떠오른다면 그곳에서부터 나아가면 된다.

다만 여러 사람이 함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경우라면 제작 순서를 표기한 ‘세계관 제작 작업계획서’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다. 순서가 정해지지 않으면 컨셉 회의하는 자리에서 캐릭터로 화제를 돌리는 사람이 나오고, 핵심 키워드 얘기하는데 컨셉 얘기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체계 없이 각자 떠오르는 대로 말하다가 진전 없이 끝나는 회의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작업계획서가 필요하다.


[기업의 관심이 브랜딩에서 세계관으로 옮겨 간 이유]

본격적으로 세계관 구성요소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기업 세계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회차에서는 기업의 세계관을 예시로 분석한다. 최근 세계관을 만드는 가장 큰 주체가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품을 넘어 세계관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간단한데, 시장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기업이 신경쓴 키워드는 브랜딩이다. LG의 가전제품을 믿고 구매하도록, tvN의 예능 프로그램은 믿고 보도록. 네이버에 ‘원피스’라고 검색하면 수십만개의 제품 목록이 나타나는 공급 과잉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다. 고객들의 머릿속에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신뢰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것들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좋은 제품’도 너무 많아져버렸다.

새로운 방식으로의 차별화가 필요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애플의 고객은 애플이 만든 문화에 열광한다. 애플은 혁신의 상징이자, 아티스트의 창작 도구로서 자리매김하면서 문화를 만들었다. 애플의 팬들은 혁신을 산다는 생각으로 아이폰 모델을 구매한다. 아이패드는 단순히 질 좋은 IT기기가 아니라 감각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드로잉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문화의 힘은 마법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이폰 신제품이 출시되면 애플의 팬들은 아이폰을 비난하면서도 경쟁 모델보다 비싼 가격을 주고 구매하는 것이다. 

기업이 제품을 통해 어떤 문화를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럴듯한 단어들로만 나열하면 입 발린 말이 되기 쉽다. 그저 장삿속이라며 외면받기 일쑤다. 반면, 기업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세계관이 된다. 기업이 가진 세계관이 광고를 통해 나타나도 좋고, 혹은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로고송에 담겨있어도 좋다. 중요한 건 기업이 만들어낸 문화가 고객에게 정서적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1차원 콘텐츠, 2차원 세계관]

세계관을 만들 때 꼭 명심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세계관은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과 같은 스토리와 구조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창작물이라고 하면 스토리를 떠올리기 쉬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는 기승전결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 태생적으로 시간 위에 얹어진 예술인 셈이다. 스토리의 시작점에 점을 찍고 엔딩까지 쭉 이으면 하나의 선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흔히 스토리를 ‘선형적(linear)’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하나의 콘텐츠는 ‘1차원’이다. 

반면 세계관은 비선형적(non-linear)이다. 하나의 세계관 안에 여러 개의 캐릭터와 장소 등이 제각각 의 하나의 도형으로서 흩어져 있는 것이다. 세계관 제작 과정은 캔버스에 도형을 배치하는 ‘2차원’ 작업인 셈이다. 

세계관 제작자가 그린 그림에서 도형을 하나의 객체(Object)라고 생각해보자. 객체는 저마다 위치와 역할이 정해져 있다. 간단한 예시로 닌텐도 게임 <슈퍼마리오> 시리즈의 화면을 보면, 슈퍼마리오 캐릭터와 배경에 보이는 산은 역할이 다르다.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구분할 수도 있다. 슈퍼마리오가 무찔러야 할 버섯 캐릭터는 조작할 수 없고 & 움직이면서 & 나에게 위협이 되는 객체다. 한편 공중에 떠 있는 블록은 슈퍼마리오를 움직여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고 & 나에게 아이템을 주는 객체다. 이러한 객체들이 모여 슈퍼마리오 세계관을 이룬다.

세계관을 2차원인 그림에 비유할 때, 오브제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해당한다. 이때 사람이나 사물은 아무런 의도 없이 현실에 있는 것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선택되고 배치된다. 가령 정물화에 등장하는 책과 펜은 지성을 상징한다. 또 해골은 죽음을, 버터는 부유함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물을 조합해 그린 정물화는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객체 하나하나가 키워드인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관을 제작할 때 해야 하는 고민은 다음과 같다.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는 무엇인가. 그 키워드들은 어떻게 객체로 표현되어야 하는가. 객체들의 조합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객체를 표현하는 방법]

창작자가 의도한 키워드를 상징하는 것이 객체라면, 이 키워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애플의 로고를 처음 디자인한다면. 사과의 색깔과 크기는 어때야 하는가. 단순히 예쁜 색깔, 앙증맞은 크기가 기준일 리 없다. 그렇다면 황금비율로 만들면 되는 걸까? 모두 답이 아니다.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질문이 더 필요하다. ‘사과의 속성이 애플이 지향하는 키워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하는 것이다. 빨간색이 좋을까, 하얀색이 좋을까를 결정하기 위해선 각각의 색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조사하고 결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객체합친

가 가진 다양한 속성들을 객체의 자산(property)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객체의 자산은 키워드(상징 의미)가 결정한다.

그러나 세계관에서 객체의 자산이 연결되는 방식은 우리가 흔히 아는 스토리텔링에서의 연결 방식과 다르다. 사과라는 객체에 빨갛다라는 자산을 연결할 때 스토리에서는 유려한 문장을 동원하거나, 빨간색이라는 정보를 떡밥으로 활용하는 등 갖가지 변주로 다른 의미를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관에서는 자산이 객체에 연결되는 방식이 하나다. 객체의 속성으로서 객체를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코어] 

도입부에서 언급한 세계관의 코어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기보다 변경할 수 없는 것에 가깝다. 그것이 제작자가 처음 떠올린 장면이든, 장르든 간에 말이다. 기업의 의뢰를 받아 제작하는 세계관이라면 갑의 요청이 코어가 될 수 있다. 가령 ‘MCU의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을 합친 것 같은 슈퍼히어로’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하면 이 명제를 세계관의 코어로 삼아 출발하는 것이다. 코어는 마치 말뚝처럼 박혀있는 것이라, 이것을 변경하려고 하면 괜히 힘만 낭비하게 된다.

[오리지널리티]

독창성이란 마음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만든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껴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독창성이라는 경지다. 아무런 레퍼런스도 참조하지 않고, 트렌드에 대해서도 무지한 사람이 만든 결과물은 독창적이라고 칭찬받을 확률보다 무수한 실패작과 같은 실수를 범하고 외면받을 확률이 더 높다. 기초공사도 제대로 되지 않은 건물을 보고 독창적이라고 칭찬해줄 사람은 없다. 원칙을 알아야 원칙을 바꾸고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표현의 영역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 알려면 원형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머릿속에 원형이 떠오를 때까지 무수한 이미지를 접해야 하는 것이다. 사과라는 키워드를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의 사과만 본 사람의 결과물을 우리는 신뢰할 수 없다. 무수히 많은 사과를 본 후에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과의 공통점을 알고, 여러 사과 이미지들의 유형과 각각의 특징을 아는 사람의 결과물이 오리지널에 가까울 것이다. 사과로서 기본적인 요소를 갖춘 다음 자신만의 개성을 더했을 테니까. 

[트렌드 분석을 위한 역설계 기법]

독창적인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참고할 때 뺴놓을 수 없는 것이 트렌드 분석이다. 여기서 말하는 트렌드 분석이란 단순히 유행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다. 1등을 낱낱이 파헤쳐서 구조와 키워드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1등 분석은 완성된 콘텐츠를 보고 창작자가 만든 세계관의 객체와 자산, 키워드를 추출해내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른바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라고 하는 작업이다.

역설계가 처음이라면 영화나 소설과 같은 장편 서사보다는 분량이 짧은 노래 가사를 분석하는 편이 낫다. 노래 한 곡에는 또렷한 하나의 테마와 장르가 있고, 캐릭터와 사건, 서사가 압축되어 있다. 짧은 분량이기 때문에 세계관에 사용된 객체와 자산들의 구조를 한눈에 보기 편할 것이다. 여기서 익숙해지면 단편 소설, 단편 만화 등으로 조금씩 스케일을 키워나가자.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역설계 작업에 요구되는 두 가지 덕목이 있다. 하나는 집요함이다. ‘이 부분은 적당히 남들 하는 수준으로 만들었겠지’라는 가정은 머릿속에서 지우자. 마치 종교 경전의 한 줄 한 줄에 풍부한 상징이 숨어 있고 행간의 의미가 있듯이, 세계관을 만든 사람 역시 어느 것 하나 대충 뭉개고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모든 것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 

가령 웹소설을 분석하기 위해 누적 조회수 3억 건에 달하는 작품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을 분석한다고 하자. 이때 주인공은 왜 열정적이지 않고 무심한 성격인지, 데뷔한 팀의 이름은 왜 우주를 모티브로 삼았는지부터, 지나가듯 언급된 캐릭터들의 사소한 버릇까지 무엇을 상징하는지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들어갈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객체 하나하나의 1차원적 의미를 넘어 전체 세계관에서 해당 객체가 차지하는 역할, 다른 객체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각인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휘의 뉘앙스 파악이다. 창작자는 비슷한 키워드들 중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 어울리면서 고객이 받아들일 법한 것을 고른다. 그렇기 때문에 1등이 되었다고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분석할 때 키워드들 간의 공통점을 찾으면 도움이 된다. 어떤 단어가 고객에게 익숙한 것인지, 유사한 단어들 중에서 창작자가 굳이 이 단어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역설계에 있어 필수 이수 강의와도 같다. 고객이 아는 단어로 인코딩해야, 고객이 그 미묘한 뉘앙스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세계관 제작] 

창작자에게 세계관 제작을 의뢰하는 주체는 상당수가 기업일 것이다. 앞서 1등 작품으로 역설계를 연습했다면, 실무에 가까운 기업 세계관을 분석해보자. 이번 회차에는 ‘LG생활건강’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기업의 세계관을 알기 위해 홈페이지 메인에서 핵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가장 큰 글자로 ESG가 보이고, 메뉴에서는 뷰티풀, 헬시와 같은 단어가 눈에 띈다. 이와 같이 강조되어 있는 키워드를 나열하고, 가능한 집요하게 분석하자. 우선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기업명 자체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LG는 왜 생활과 건강을 한 단어로 묶었을까’부터 시작해, ‘ESG는 왜 크게 적혀있을까?’, ‘뷰티가 아니라 뷰티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 등 디테일까지 챙기다보면 기업의 세계관이 더 또렷하게 머릿속에 입력된다.

메인화면에서 키워드 분석을 마쳤다면, 메뉴를 하나씩 살펴볼 차례다. 뷰티풀 메뉴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화장품 브랜드들이 나열된다. 이 단계에서 LG생활건강이 키워드인 뷰티풀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해석한다. 첫 번째 브랜드인 ‘후’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임금의 아내인 ‘왕후(王后)’의 후와 같은 한자를 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후라는 브랜드는 왕실을 배경으로 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모티프로 삼았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궁중문화’, ‘신비로움’, ‘모던함’과 같은 핵심 키워드를 추가로 뽑아낼 수 있다. 즉 동양의 아름다움을 코어로 삼고, 여기에 모던함을 가미한 것이 후의 정체성인 셈이다. 

이렇게 키워드 분석을 더 구체화해나가면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이전 단계에서 추출한 키워드들과 연결점을 찾아야 한다. 생활, 건강, 뷰티풀 등을 염두에 두면 핵심 키워드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 이 될 것이다. 가급적이면 어떤 키워드들이 연결되는지 선을 그어가며 분석을 진행하자. 이를 통해 키워드의 뉘앙스가 감이 잡히게 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키워드들은 브랜딩 전문가가 체계적인 분석과 전략을 기반으로 만든 결과인 만큼 충분히 음미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키워드를 분석한 다음에는 해당 키워드가 어떻게 손에 잡히는 형태로 구현되는가를 분석할 차례다. 궁중, 신비로움, 왕후와 같은 단어들을 줄줄 나열하기만 하는 브랜드는 없다. 광고와 제품 패키지 디자인 등을 통해 시각화하여 뉘앙스를 전달한다. 예시로 후가 소개된 기사를 보자. 브랜드 모델로 배우 이영에가 기용되었고, 화보 사진 속 이영애는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를 하고 궁중 한복으로 금색 저고리를 입었다. 이는 후라는 브랜드가 어떤 인물과 장소 등으로 표현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추가 정보로 궁중 한복은 패션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강희숙 디자이너가 제작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완료되면 후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제작할 때 시대적 배경과 장소, 분위기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브랜드인 ‘오휘’를 분석하면 LG생활건강에서 정의한 뷰티풀의 의미를 구체화할 수 있다. 오휘의 뜻을 살펴보면 ‘단청에서, 머리초 끝에 띠 모양으로 돌린 오색 무늬의 휘’이다. 포인트는 다것 가지의 색이다. 오방색이 모여 조화를 이루듯 피부도 최적의 조화 상태를 추구한다는 비전을 담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열된 브랜드들을 종합하면 뷰티풀의 의미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 기본을 중시하는 미감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키워드들의 의미가 모호하게 느껴질 것이다. 앞서 단어의 의미를 분석하고, 키워드끼리 연결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를 찾는 과정이 있어야만 맥락 정보가 머릿속에 담기고 이를 표현하는 수준까지 다다른다.

특히 키워드를 정리할 때에는 사전 찾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이라도 사용되는 맥락이 다르고, 말하는 사람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단어에 여러 가지 뜻이 파생된 경우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단어를 쓸 경우 받아들이는 사람은 파생된  의미들을 모두 함께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 ‘뉘앙스’의 정체일 것이다.

[하이컨셉]

하이컨셉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지만, 세계관에서는 ‘장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장르로서의 하이컨셉은 초콜릿 코팅과 같다.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자세히 몰라도 일단 한 입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내가 만든 세계관 바깥에 있는 고객이, 이 세계관을 낯설어하지 않고 들어올 수 있게. 배틀로얄 로맨스 장르를 만들었다면 일단 로맨스로 유인해야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겠나.

그래서 하이컨셉은 보통 익숙한 장르와 낯선 장르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내 세계관을 들여다보고 어떤 조합들이 가능할지 여러 경우의 수를 맞춰보며 최선의 것을 골라내자. 물론 코어를 잘 표현한다는 가정 하에서. 단순히 대중적이거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하이컨셉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 세계관을 진정으로 좋아해 줄 사람은 밀어내고, 전혀 다른 장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오프닝 시놉시스]

오프닝 시놉시스는 세계관의 주요 특징을 설명하는 텍스트다. 소설이나 영화로 따지자면 프롤로그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세계관의 공간, 캐릭터, 분위기, 앞으로 펼쳐질 내용 등을 일러주는 역할을 한다. 세계관을 접하는 고객들에게 특정한 기대감을 갖게 하면 성공이다. 힐링이면 힐링, 스릴러면 스릴러임을 확실하게 인지시켜야 한다. 아래 텍스트는 현대 롤플레잉 게임의 시초라 불리는 <던전 앤 드래곤>의 오프닝 시놉시스다. 

““당신의 캐릭터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언덕 위에 서 있다. 당신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린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보석이 박혀 있는 마법 검의 손잡이를 쓰다듬는다. 엘프와 드워프 동료들은 말에 짐을 어떻게 실을지 다투고 있다. 마법사는 주문을 모두 외워두었고, 이제는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당신에게 말한다. 가까운 산봉우리에는 위험한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놓여 있다.그리고 그 안에는 무서운 드래곤이 당신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출발할 시간이다”

위 단락에서 드러난 <던전 앤 드래곤>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판타지 장르, 다양한 종족들, 캐릭터의 특징과 공간의 분위기, 궁극적인 목표 등. 이와 같이 오프닝 시놉시스는 한 문단 정도의 짧은 텍스트 안에 많은 정보를 담는다. 

[스틸샷]

스틸샷은 세계관의 하이라이트다가장 멋진 장면, 마음을 빼앗는 장면이라면 무엇이든 스틸샷이 될 수 있다. 2강에서 언급한 목욕탕에 때가 비처럼 내리는 장면이 될 수도 있고, 가위손이 얼음 동상을 만드는 장면일 수도 있다.

스틸샷은 세계관의 테마나 메시지와도 관련이 깊다. 내가 만든 세계관에서 얼음 동상이 왜 중요한지, 때가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감동의 깊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스틸샷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관의 개체와 자산이 무엇인지 결정되고 키워드가 배치된다. 

[로그라인]

스틸샷이 정해졌다면 이제 로그라인을 만들 차례다. 로그라인은 ‘작품을 매력적으로 요약한 한 줄 소개’다. 예를 들면 <ET>의 로그라인은 ‘외계인을 만난 외톨이 꼬마가 어른들의 도움을 거부하고 스스로 외계인을 도와 고향으로 돌려보낸다’이다. 또, <매트릭스>의 로그라인은 ‘자신이 구세주임을 모르는 한 남자가 저항군의 도움으로 매트릭스에서 탈출하여 사이버 전사로 거듭나 인류를 구한다’이다. 로그라인의 목적은 단순하다. 보게 만들 것. 세계관을 보여줄 강력한 ‘한 줄 요약’이 로그라인이다. 

물론 세계관에는 로그라인이 여러 개 생성될 수 있다. 세계관은 작품들의 요람이기에 특정 세계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용도로,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로그라인을 만들면 된다. 이때 앞서 작업한 키워드를 로그라인 제작에 활용하면 전달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로그라인의 형식을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IMDB가 좋은 참고자료다. 영화 정보를 모아 놓은 웹사이트인 IMDB에서 영화의 로그라인들을 쭉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 가지 팁은 내가 생각하는 세계관과 비슷한 콘셉트, 장르, 캐릭터를 가진 작품의 로그라인을 먼저 보는 것이다. 2강에서 언급한 ‘인접 세계관’을 힌트 삼아 검색하면서 시선을 잡아당기는 요소가 무엇인지 분석해보자. 

넷플릭스의 콘텐츠 소개 형식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콘텐츠를 쉽게 설명하는 로그라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시청한 콘텐츠들이 많다면 더 빠른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로그라인의 형식에 충분히 익숙해진 다음에는, 자신이 만든 로그라인이 쉽게 쓰였는지 꼭 점검하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내용일 것 같은지, 재미있을 것 같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메시지]

메시지는 세계관에 깊이를 더한다. 물론 메시지가 없어도 세계관은 완성된다. 하지만 육수 없이 끓인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나지 않듯이, 세계관에 메시지가 없으면 여운과 감동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메시지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정석적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내가 만든 세계관과 비슷한 장르의 작품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대중 서적들이 많다. 철학자, 평론가 등의 분석을 참고하면 스스로도 몰랐던 내 세계관의 일관된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철학을 쉽게 풀어 쓴 책을 읽으며 메시지를 고민해볼 수도 있다.

책 읽기가 어렵다면 속성 코스도 있다. 노래 가사의 메시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특히 1위 곡들은 대부분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사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분석하면 금상첨화다.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시각적 상징의 향연이며, 3분 안에 메시지와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 상당히 촘촘한 설계가 이루어진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를 분석하는 유튜브 채널도 있으니 이를 참고해도 좋다.


-3강 끝- 


편집 : 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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