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은 무엇을 소비하는가?
지난 04화에서 우리는 '약탈적 소비'를 하는 관광객과, 한곳에 머무르는 주민을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창작자들이 자주 빠지는 더 깊은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팬덤을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착각입니다. 팬덤은 단일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각자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전혀 다른 이유로 사랑에 빠집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시로, 글로벌 슈퍼스타 BTS를 좋아하는 팬들을 생각해 봅시다. "저도 BTS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소비의 양상은 천차만별입니다.
A 씨: "정국이 얼굴 봤어? 이번 화보 미쳤어." A 씨는 멤버들의 비주얼에 열광합니다. 고화질 화보를 수집하고, 공항 패션 브랜드를 체크하며, 얼굴이 크게 나온 '얼빡 직캠'을 봅니다.
B 씨: "지민이 춤선이랑 고음 처리 좀 봐. 라이브 실력 늘었네." B 씨는 퍼포먼스와 음악적 완성도에 집중합니다. 안무 연습 영상을 나노 단위로 쪼개 보며 분석하고, 밴드 라이브 영상에 감탄합니다.
C 씨: "이번 뮤비에 나온 저 그림, 데미안 소설이랑 연결되는 거 아냐?" C 씨는 숨겨진 이야기와 상징을 파헤칩니다. 뮤직비디오 속 소품 하나하나의 의미를 해석하고, 세계관 타임라인을 정리하며 고찰글을 씁니다.
D 씨: "COOKY 인형 신상 나왔대! 너무 귀여워." D 씨는 BTS가 만든 캐릭터인 BT21을 사랑합니다. 멤버들의 얼굴보다 캐릭터 굿즈를 더 많이 사고,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즐겨 봅니다.
자, 보십시오. 이들은 모두 "BTS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창작자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비극이 시작됩니다.
"내 캐릭터는 얼굴도 예쁘고, 싸움도 잘하고, 사연도 깊고, 귀엽기까지 한데 왜 안 뜨지?"
이 모든 매력 요소를 비빔밥처럼 한 그릇에 섞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섞이면 맛있는 게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엇이 됩니다.
02화에서 우리가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여러 개의 계정을 가진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아이돌은 여러 개의 '레이어(Layer)'로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 레이어마다 서로 다른 팬들이 소비합니다. 어떤 팬은 1레이어만 소비하고, 어떤 팬은 4레이어까지 깊이 파고듭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가 유효한 팬이라는 점입니다.
본격적으로 4레이어를 설명하기 전에, 핵심 개념 하나를 짚겠습니다.
7명의 아이돌이 무대에 서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메인 보컬이 고음을 부릅니다. 이 순간, 모든 조명이 그에게 쏟아집니다. 모든 카메라가 그를 향합니다. 그의 노래가 주인공입니다.
나머지 6명은 어떻게 할까요? 딴짓을 하는 게 아닙니다.
뒤에서 하모니를 넣습니다. 메인 보컬을 받쳐줍니다. 표정 연기로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정확한 안무로 시각적 균형을 맞춥니다. 하지만 메인 보컬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배려하며 보조합니다.
그리고 메인 파트가 끝나면? 이제 랩퍼가 나섭니다. 랩퍼가 주인공이 되고, 방금 전 메인이었던 보컬은 보조로 물러납니다.
무대 전체를 사랑하는 팬들도, 매 순간 누구에게 집중해야 하는지 압니다. 메인 파트일 때 카메라가 다른 멤버를 비추면 "왜 지금 저기를 보여줘?"라며 불만입니다.
세계관 콘텐츠의 4레이어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모든 레이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특정 순간에는 특정 레이어가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나머지 레이어는 그 주인공을 배려하며 보조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당신은 더 이상 "모든 매력을 한꺼번에 보여줘야 해"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는 네 개의 독립된 층위로 존재합니다.
Layer 1: 자연인 / 외형
물리적 외모, 육체, 타고난 매력
Layer 2: 직업인 / 기능
실력, 능력, 수행하는 기능
Layer 3: 배역 / 콘셉트
프로젝트별 임시 역할, 일시적 설정
Layer 4: 캐릭터 / 세계관
독립적 존재, 원본과 분리 가능한 IP
가장 표면에 있는 첫 번째 층위는 '자연인'입니다.
이름 그대로 먹고, 자고, 숨 쉬는 생물학적 인간입니다. 잘생긴 외모, 타고난 피지컬, 매력적인 목소리, 심지어 그 사람이 풍기는 본연의 분위기까지 포함하는 물리적 구성 요소 그 자체입니다.
이들은 복잡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직관적인 시각적 만족, 혹은 본능적인 끌림이 최우선입니다.
"우리 오빠는 얼굴이 다 했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화보야."
이들에게 "이 가수의 노래가 얼마나 예술적인지", "이 세계관이 얼마나 철학적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피곤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움, 그 존재 자체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보 촬영입니다. 이 순간의 목적은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노래를 잘할 필요 없습니다. 춤을 잘 출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예쁘면 됩니다.
공항 출국 사진입니다. 패션 화보입니다. 얼굴 클로즈업 직캠입니다. 일상 브이로그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어떨까요? "와, 그래픽 예쁘다"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입니다. 스크린샷 모드입니다.
AI 창작에서는? "이 캐릭터가 시각적으로 매력적인가?" "첫인상이 좋은가?" "클릭하고 싶게 만드는가?"입니다.
라이브 무대를 봅시다. 주인공은 2레이어, 즉 노래와 춤입니다. 하지만 1레이어도 존재합니다.
땀이 흐릅니다. 근육이 긴장합니다. 이것은 1레이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조입니다. 땀이 "진정성"을 강화합니다. 노력의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노래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표정 연기를 합니다. 이것도 1레이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조입니다. 노래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보컬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1레이어는 가장 기초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진입점입니다. 일단 눈길을 끌지 못하면, 그 뒤에 있는 심오한 세계관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1레이어만으로는 팬덤을 오래 붙잡아둘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예쁘고 잘생긴 새로운 존재가 끊임없이 나타나니까요.
두 번째 층위는 '직업인'입니다.
자신의 바램과 상관없이 태어난 1계층과 달리 2계층은 스스로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이자 기능, 직능의 영역입니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댄서는 춤을 잘 춰야 합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합니다. 프로로서 무대 위에서 제 몫을 해내는 능력, 즉 '실력'입니다.
이들은 자부심을 소비합니다.
"내 가수는 라이브가 완벽해."
"우리 배우는 연기 구멍이 없어."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자'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음원 차트 순위, 음반 판매량, 시상식 트로피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민감합니다. 1레이어 팬이 "얼굴"을 본다면, 2레이어 팬은 "땀과 노력"을 봅니다.
라이브 무대입니다. 이 순간의 목적은 "실력"입니다. 안무 연습 영상입니다. 땀 흘리며 고뇌하는 레코딩 비하인드입니다. MR 제거 영상입니다. 앵콜 라이브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조작이 재밌어"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보스전입니다. 랭크 게임입니다. 타임어택입니다.
영화로 치면? 클라이맥스 액션 씬입니다. 감정 폭발 연기입니다.
AI 창작에서는? "이 캐릭터가 제 역할을 하는가?" "기능이 작동하는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가?"입니다.
화보 촬영을 봅시다. 주인공은 1레이어, 즉 외모와 스타일링입니다. 하지만 2레이어도 존재합니다.
포즈를 잡는 능력입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연기입니다. 이것은 2레이어, 즉 실력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조입니다. 전문성을 보여주지만, 외모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칼군무와 복근은 다릅니다.
강렬한 칼군무는 2레이어입니다. 안무, 동선, 그룹 싱크가 주인공입니다.
웃통을 벗은 복근은 1레이어입니다. 육체적 매력이 주인공입니다.
물론 한 무대에서 둘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춤을 추다가 웃옷을 벗는 연출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엇이 주인공인지는 명확해야 합니다.
만약 칼군무 무대인데 갑자기 멤버들이 포즈를 잡고 멈춘다면? 춤의 흐름이 깨집니다. 관객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콘텐츠를 분리하십시오.
"칼군무 모음" -> 2레이어 팬용
"비주얼 모음" -> 1레이어 팬용
각각의 보드에서 주인공이 명확합니다. 보조 레이어는 주를 배려합니다.
1레이어와 2레이어는 종종 충돌하기도 합니다. 노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비주얼이 아쉽거나, 얼굴은 조각 같은데 연기를 못하는 경우입니다. 진정한 팬덤은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잘생겼는데 노래까지 잘해?" 이것이 입덕의 고속도로입니다.
세 번째 층위는 '배역'입니다.
여기서부터 '기획'과 '테마'가 개입합니다. 뮤직비디오나 앨범 콘셉트 포토에서 연기하는 특정한 역할입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치명적인 뱀파이어', 다음 앨범에서는 '청량한 여름 소년'이 됩니다.
3레이어의 가장 큰 특징은 '일시적'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번 활동 기간 동안만 유효한 '약속된 설정'입니다.
팬들은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교복 입고 청순한 노래를 부르던 아이돌이 오늘 갑자기 피 묻은 셔츠를 입고 뱀파이어 연기를 해도, 팬들은 "너 왜 변했어?"라고 따지지 않습니다.
"아, 이번 컴백 콘셉트구나! 소화력 미쳤다!" 하며 그 역할놀이를 함께 즐깁니다.
이 '배역'이 중요한 이유는 일반 대중이 '배역'을 맡아서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 없이 바로 이해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돌이 뮤직비디오에서 '사랑에 빠진 킬러'를 연기해도 그것을 일시적 배역으로서 이해하면 비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입니다.
이들은 '해석'과 '변신'을 즐깁니다.
"이번 뮤비에 나온 사과는 선악과를 상징하는 거야."
"저 의상은 지난 앨범의 타락 천사 콘셉트와 연결돼."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을 넘어, 창작자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고 퍼즐을 맞추는 지적인 유희를 즐깁니다. 이들에게 아이돌은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배우이자 스토리텔러입니다.
뮤직비디오입니다. 콘셉트 포토입니다. 티저 이미지입니다. 앨범 설정집입니다. 이 순간의 목적은 "이야기"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시즌 오프닝 영상입니다. 이벤트 퀘스트입니다. "이번 시즌은 할로윈 테마"같은 것입니다.
영화로 치면? <아이언맨 1>에서 토니 스타크의 개인 서사, <어벤져스>에서 팀의 일원으로서의 역할. 각 영화마다 다릅니다.
라이브 무대를 다시 봅시다. 주인공은 여전히 2레이어, 즉 노래와 춤입니다. 하지만 3레이어도 존재합니다.
전사 콘셉트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무대 배경에 스토리 영상이 흐릅니다. 이것은 3레이어입니다.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콘셉트를 암시합니다. 하지만 노래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층위, 팬덤 비즈니스의 최종 단계이자 가장 어려운 단계가 바로 '캐릭터'입니다.
이것은 앞선 1, 2, 3레이어가 모두 융합되어, 독립된 서사와 세계관을 가진 존재로 승화된 단계입니다.
4레이어 캐릭터는 현실의 아이돌(본체)과 분리되어도 살아남습니다. 아니, 본체가 없어도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팬덤을 모읍니다.
가장 완벽한 예시가 방탄소년단의 공식 캐릭터 'BT21'입니다.
BTS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했지만, 이 캐릭터들은 멤버들의 '아바타' 수준을 넘어섭니다.
RJ(진): 친절하고 예의 바른 알파카
KOYA(RM): 생각이 많아 늘 잠자는 코알라
SHOOKY(슈가): 작지만 성깔 있는 쿠키
이들은 BTS 멤버들과는 별개로, 자기들끼리 우주 여행을 하고 빵집을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팬들은 BTS의 노래를 듣지 않을 때도 BT21 인형을 사고,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심지어 BTS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BT21 캐릭터는 귀여워서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독립된 IP로서의 힘'입니다.
이들은 '세계관의 주민'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RJ는 추위를 많이 타니까 파카를 입혀줘야 해."
"CHIMMY는 버려진 강아지였으니까 우리가 가족이 되어줘야 해."
단순히 인형을 사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가 가진 서사와 결핍, 그리고 관계성을 소비합니다.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믿고, 그 세계의 규칙을 지키며 놉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입니다. 굿즈 판매입니다. 팝업스토어입니다. 캐릭터 설정집입니다. 이 순간의 목적은 "세계관" 그 자체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NPC의 배경 스토리입니다. 로어 탐색입니다. 플레이어의 롤플레이 정체성입니다. "나는 기사단장이다"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영화로 치면? 팬 이론입니다. 2차 창작입니다. 코스프레입니다. MCU의 10년 프로젝트, 인피니티 스톤 복선입니다.
라이브 무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봅시다. 주인공은 여전히 2레이어입니다. 하지만 4레이어도 존재합니다.
안무 속에 스토리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특정 동작에 캐릭터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저 제스처는 그 캐릭터의 시그니처구나" 하고 아는 사람만 알아챕니다. 보너스입니다. 하지만 무대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제 명확해집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지자체나 관공서 마스코트들이 왜 실패할까요?
Layer 1 (외모): 귀엽게 생겼습니다.
Layer 2 (기능): 지역 특산물 홍보라는 기능이 명확합니다.
Layer 3 (배역): 축제 홍보대사라는 콘셉트도 있습니다.
Layer 4 (캐릭터): 없습니다. 캐릭터인데도 캐릭터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캐릭터인데도 이 4레이어가 없습니다.
그 캐릭터가 사는 세계가 어디인지, 친구는 누구인지, 성격은 어떤지, 왜 딸기를 들고 있는지에 대한 '맥락과 서사'가 없습니다. 단지 포스터에 박제된 그림일 뿐입니다.
서사가 없으니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관계가 없으니 팬덤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굿즈를 만들어도 팔리지 않고, 축제가 끝나면 창고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반면 성공하는 IP, 예를 들어 <캐치! 티니핑>이나 <펭수>를 보십시오.
그들은 1, 2, 3레이어뿐만 아니라 탄탄한 4레이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펭수는 "남극에서 온 10살 연습생"이라는 확실한 서사와, 김명중 사장님을 부르는 뻔뻔한 성격이 있습니다. 팬들은 그 캐릭터성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티니핑은 어떻습니까? 감정을 관리하는 요정들의 독립된 세계가 있습니다. 각자 감정을 담당합니다. 서로 관계가 있고, 모험과 성장 서사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안 봐도 장난감만으로 이해 가능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IP입니다.
(물론 요즘은 많은 성공적인 사랑받는, 깊은 서사가 한눈에 느껴지는 멋진 지자체 캐릭터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
그렇다면 창작자는 이 4가지 레이어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각각 따로 만들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하나의 콘텐츠 안에 모든 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중첩시키는 것'입니다.
BTS의 전설적인 무대, <피 땀 눈물>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 하나의 무대를 4가지 유형의 팬들이 각자 다르게 소비할 수 있습니다.
2레이어 팬 (실력): "와, 지민이 고음 처리 완벽하다. 저 격한 춤을 추면서 라이브가 흔들리지 않네. 역시 실력파야."-> 기능에 감탄
1레이어 팬 (외모): "잠깐만, 방금 정국이 재킷 살짝 흘러내려서 어깨 보인 거 봤어? 미쳤다. 스크린샷 찍어!"-> 시각적 매력에 열광
3레이어 팬 (세계관): "저 멤버들이 눈을 가리는 안무, 데미안 소설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투쟁을 상징하는 거야. 그리고 뒤에 있는 조각상은..."-> 맥락과 상징 해석
4레이어 팬 (캐릭터): "우리 태형이(뷔)는 타락 천사 역할인데도 표정이 너무 순수해 보여. 역시 곰돌이(별명)야."-> 캐릭터성 투영
이것이 바로 '다차원 콘텐츠 설계'입니다.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각자 자신의 '관심사(레이어)'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뜯어먹고 즐깁니다.
창작자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이 안무 구간은 2레이어(실력)를 보여주는 고난도 동작이지만, 의상은 3레이어(세계관)를 상징하는 제복을 입히자. 그리고 엔딩 포즈에서는 1레이어(얼굴)가 돋보이게 조명을 때려주자."
이렇게 레이어들이 촘촘하게 중첩될 때, 어떤 유형의 팬이 들어와도 자신이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는 풍성한 콘텐츠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레이어를 중첩시키는 것(Layering)과, 억지로 주입하는 것(Injection)은 다릅니다.
어린이용 BT21 애니메이션에서 귀여운 알파카 RJ가 갑자기 "나 사실 BTS 진이야! 내가 고음 얼마나 잘 지르는지 보여줄게!"라며 복근을 공개한다면 어떨까요?
어린이 팬(4레이어)은 세계관이 깨져서 혼란스럽고, 성인 팬(1, 2레이어)은 유치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것은 중첩이 아니라 '침범'입니다.
어떤 아이돌이 인터뷰하고 있는데 "4레이어 세계관인 '광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1, 2레이어에서 4레이어를 접근하는 것도 침범입니다. 이 경우 2레이어 가수의 모범 답안은 '잘 모르겠다'입니다.
BT21 애니메이션에서 RJ가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털에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묘하게 BTS 진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닮았습니다.
이러면 4레이어 팬(어린이)은 "그냥 귀엽다"고 웃고 넘어가지만, 1, 2레이어 팬(성인 아미)은 "어? 저거 진이 옛날에 했던 행동인데! 제작진 센스 있네" 하며 이스터에그를 발견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중첩'입니다.
각 레이어가 서로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아는 사람에게는 더 깊은 재미를 주는 방식. 레이어들이 서로 은근하게 공존하며 시너지를 내는 방식입니다.
AI 시대의 창작도 마찬가지입니다. AI는 명령만 하면 1초 만에 모든 레이어를 뒤섞어버릴 수 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가 섹시하게 춤추는 영상 만들어줘."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것은 정체성의 파괴입니다.
창작자는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장면은 2레이어(기능)가 중심이지만, 배경에는 3레이어(맥락)의 힌트를 숨겨놓자."
"이 캐릭터 디자인은 1레이어(미형)를 살리되, 4레이어(세계관)의 역사성이 드러나는 흉터를 넣자."
이렇게 의도적으로 레이어를 배치하고 중첩시킬 때, AI는 단순한 이미지 생성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세계를 구현하는 강력한 건축 도구가 됩니다.
납작한 종이 인형입니까, 아니면 4가지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어떤 각도에서 봐도 빛나는 입체적인 보석입니까?
당신이 만든 주인공은 단지 예쁘고(1), 싸움을 잘하고(2), 복수하는 역할(3)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그가 왜 싸우는지, 그의 무기에 새겨진 문양은 어떤 역사를 담고 있는지, 그가 속한 세계는 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이 세계관적 깊이를 부여해야 비로소 그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됩니다.
팬덤은 바로 이 4레이어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집니다.
1레이어는 늙습니다. 외모는 변합니다.
2레이어는 퇴화합니다. 실력은 떨어집니다.
3레이어는 사라집니다. 콘셉트는 유행이 지납니다.
하지만 4레이어는 영원합니다. 세계관 속에 박제된 캐릭터는 늙지 않습니다.
미키마우스는 100년을 살았습니다.
피카츄는 30년째 살아있습니다.
당신의 캐릭터는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02화에서 우리는 말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사람들은 여러 계정을 가진다. 각 계정은 독립적이며, 섞이지 않아야 한다."
05화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도 여러 레이어로 존재해야 한다. 각 레이어는 독립적이며, 섞이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계정을 분리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아이돌 덕질 계정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욕을 먹습니다. 게임 계정에서 일상 푸념을 하면 언팔됩니다. 각 세계는 각자의 규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섹시 콘텐츠(1레이어)에 유치한 캐릭터(4레이어)를 섞으면 실패합니다.
진지한 세계관(4레이어)에 갑자기 개그(2레이어)를 넣으면 무너집니다.
아름다운 화보(1레이어)에 복잡한 설정 설명(4레이어)을 덧붙이면 피곤합니다.
각 레이어의 팬들은 자기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것만 소비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십시오.
각 레이어를 독립적으로 제공하되, 필요할 때는 주 레이어를 배려하며 보조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AI 시대, 멀티모달 콘텐츠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캐릭터의 4레이어를 이해했습니다. 각 레이어가 언제 주인공이 되고, 언제 보조가 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레이어들을 자연스럽게 중첩시키되, 억지로 침범하지 않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설계된 캐릭터들이 정말로 세대를 넘어 사랑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음 화에서 우리는 스타워즈와 포켓몬이 어떻게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어머니에서 딸로 문화 자본을 상속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빠, 나도 피카츄 좋아해!"
이 한 문장이 가능하려면, 당신의 세계관에는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까요?
세대를 잇는 신용, 그 비밀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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