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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약탈적 소비: 관광객과 주민

관광객과 주민, 그것은 고정된 신분이 아니다

by 김동은WhtDrgon

지난 화에서 우리는 취향으로 연결된 디지털 이웃들, 즉 '주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이 모든 세계의 주민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세계물 웹소설'의 열렬한 독자이자 주민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매일 그 장르의 신작을 찾아 읽고, 작가의 설정 구멍을 분석하며, 커뮤니티에서 밤새 토론합니다. 그곳이 당신의 거주지입니다. 당신의 책갈피에는 수십 개의 이세계물 웹소설 사이트가 저장되어 있고, 추천 알고리즘은 당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학습했으며, 당신은 "먼치킨", "회귀", "빙의" 같은 전문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학교 복수극>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친구들도 다 보고, 뉴스에도 나옵니다. SNS 타임라인이 그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요즘 이게 대박이래" 하는 소문에 당신도 클릭합니다.

그 순간, 당신은 '학교 복수극'이라는 장르의 관광객이 됩니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몰입해서 봤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하지만 다 보고 나서 "다른 학폭 복수극도 찾아볼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장르의 고전 작품은 뭐가 있지?" 하고 검색하지도 않습니다. 드라마가 끝나면 당신은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다시 당신의 본거지인 이세계물 웹소설로 돌아갑니다.


왜일까요? 당신에게 '학교 복수극'은 여행지였기 때문입니다. 잠깐 들렀다 가는 곳. 재미있었지만, 거기서 살 생각은 없는 곳.

이것이 현대 대중의 이중적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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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영희의 이중생활

철수를 봅시다. 그는 K-팝 세계에서는 앨범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주민입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뮤직비디오 첫 공개를 보고,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스트리밍을 돌리고, 트위터에서 다른 팬들과 실시간으로 반응을 공유합니다. 앨범이 나오면 여러 버전을 다 사고, 포토카드를 모으고, 콘서트 티켓팅 전쟁에 참여하고, 팬 커뮤니티에서 활동합니다. 굿즈를 수집하고, 생일 광고를 함께 준비하고, 멤버들의 일정을 달력에 표시해 둡니다.


하지만 친구가 "야구 보러 가자"고 하면? 철수는 야구장에 갑니다. 응원가 몇 개는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즐겁게 경기를 봅니다. 선수 이름도 다섯 명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경기가 끝나면 철수는 야구에 대해 잊어버립니다. 다음 경기 일정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선수들의 최근 폼을 검색하지 않습니다. 1년에 한 번, 친구 따라갈 때만 야구장에 갑니다.

철수에게 K-팝은 거주지이고, 야구장은 여행지입니다.


영희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SF 소설의 주민입니다. 매달 10권 이상을 읽습니다. 작가 인터뷰를 챙겨보고,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SF 신간 소식을 구독합니다. 책장에는 아시모프, 클라크, 르 귄의 전집이 꽂혀 있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주말에 "힙한 카페 투어"를 갈 때는요? 인스타그램에서 핫플을 검색하고, 예쁜 카페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립니다. 커피 맛은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입니다.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카페로 갑니다. 같은 카페에 두 번 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영희에게 SF 소설은 거주지이고, 카페는 여행지입니다.

같은 사람이 어떤 세계에서는 주민이고, 어떤 세계에서는 관광객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과 에너지의 배분 문제입니다.


모든 관광객은 어딘가의 주민이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옵니다.

모든 관광객은 어딘가의 주민입니다. 그리고 모든 주민은 다른 곳에서는 관광객입니다.

당신이 어떤 콘텐츠를 보면서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얕게 보지?"라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아마 관광객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세계에 잠깐 들렀다 가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어떤 커뮤니티에 갔다가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진지해?"라고 느낀 적이 있다면, 당신이 그곳의 관광객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루는 24시간뿐이고, 우리가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세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02화에서 우리는 한 사람이 여러 계정(자아)을 가진다고 배웠습니다. 덕질용 계정, 게임용 계정, 일상용 계정. 각 계정은 다른 세계관에 접속합니다.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각 계정이 접속하는 세계에서, 그 사람은 주민일 수도 있고 관광객일 수도 있습니다. 덕질용 계정은 K-팝 세계의 주민이지만, 게임 세계의 관광객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많은 콘텐츠 창작자들이 이 유동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창작자는 주민용 콘텐츠를 관광객에게 들이밉니다. "이 캐릭터의 복잡한 설정을 30분간 설명하겠습니다..." 관광객은 듣다가 나갑니다. "너무 복잡해, 다른 거 볼래."

어떤 창작자는 관광객용 콘텐츠를 주민들에게 강요합니다. "가볍고 재미있는 볼거리를 준비했어요!" 주민들은 실망합니다. "깊이가 없네, 우리를 우습게 보나?"

성공하려면, 누구를 위한 콘텐츠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관광객에게는 화려한 랜드마크를, 주민에게는 일상의 편의를. 파리에 온 관광객은 에펠탑을 보러 가지만, 파리에 사는 주민은 동네 빵집에 갑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섞으면 안 됩니다.

왜 '약탈적' 소비인가

저는 현대 대중의 소비 패턴을 '약탈적 소비(Predatory Consumption)'라고 부릅니다.

"약탈적이라니, 너무 공격적인 표현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약탈적'은 도덕적 비난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태학 용어입니다. 효율적으로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생태학에서 포식(Predation)은 사자나 늑대가 먹이를 선택적으로 사냥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사자를 봅시다. 사자는 어떻게 사냥할까요?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영양 떼 100마리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사자는 100마리 전체를 관찰하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자는 재빠르게 스캔합니다. 가장 약하거나 뒤처진 개체 1마리를 선택합니다. 새끼이거나, 늙었거나, 다쳤거나, 무리에서 떨어진 개체. 그 개체만 집중 추적합니다. 사냥에 성공합니다. 나머지 99마리는 무시합니다.


왜 사자는 이렇게 할까요?

에너지 효율 때문입니다. 모든 개체를 쫓으면 지쳐서 실패합니다. 성공률 극대화 때문입니다. 약한 개체는 잡기 쉽습니다. 생존 전략입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 살아남습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생존 전략입니다. 사자를 비난할 수 없듯, 현대 소비자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의 약탈적 소비

현대의 대중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만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미디어의 정글에서, 대중은 가장 화제가 되는 것, 가장 자극적인 것, 가장 '정수'만 뽑아낸 것을 본능적으로 사냥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약탈적 소비자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먼저 트렌드를 감지합니다. "요즘 뭐가 핫해?" SNS 타임라인을 스크롤하고, 유튜브 추천을 보고, 친구들 대화를 듣습니다.


그다음 정수만 추출합니다. "그 장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1개만 보자." 배틀로얄이라는 장르가 수십 년간 쌓아온 복잡한 문법과 역사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 장르의 정점인 <오징어 게임> 하나만 소비합니다.

빠르게 소비합니다. 2배속으로 봅니다. 중요한 장면만 골라봅니다. 요약 영상을 봅니다. 시간을 아껴야 하니까요.


그리고 즉시 이동합니다. "다음 유행은 뭐야?" <오징어 게임>이 끝나면 <더 글로리>로, <더 글로리>가 끝나면 다음 화제작으로 이동합니다.

마치 사자가 영양 한 마리만 사냥하고 나머지 무리는 무시하듯이 말입니다.


시간은 유한하고, 볼거리는 무한하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까요? 산술을 해봅시다.

현대인의 하루를 계산해 보겠습니다. 24시간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수면에 7시간, 일이나 학업에 9시간, 식사와 이동에 3시간을 씁니다. 계산하면 여가 시간은 5시간입니다.


그런데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는요? 넷플릭스 신작만 10개, 유튜브 영상은 100만 개, 웹소설 연재는 1,000개, 게임 출시는 50개, SNS 피드는 무한합니다.

5시간으로 이 모든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합니다. 1순위는 가장 화제가 되는 것, 2순위는 친구가 추천하는 것, 3순위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것. 나머지는요? 존재조차 모릅니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생존 전략입니다.


'약탈적'이라는 표현은 이 소비 패턴의 선택적이고 효율적인 본성을 포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맛있는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질은 버린 채 다음 사냥터로 이동합니다.

03화에서 우리는 '신용(Credit)'에 대해 배웠습니다. 키워드의 연결 강도가 설명 비용을 줄여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약탈적 소비자에게는 신용조차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시간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역설

이 '약탈적 소비'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 <오징어 게임>을 들겠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2021년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 콘텐츠 업계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와, 전 세계가 한국식 데스게임에 눈을 떴구나. 이제 배틀로얄 장르의 황금기가 오겠지?"


<오징어 게임>이 대성공하면, 배틀로얄 장르 전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다. 일본의 <배틀로얄>(2000)이 재조명받고, 한국의 <신이 말하는 대로>가 재발견되고, 다른 데스게임 작품들이 재평가받을 것이다. 장르 전체의 황금기가 올 것이다.라고 기대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 않나요? 무료 세계 1위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대성공했습니다. 사람들은 "재밌었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배틀로얄 작품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틀로얄> 원작을 찾아보지 않았고, <신이 말하는 대로>를 검색하지 않았으며, "데스게임 추천 리스트"를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음 유행으로 이동했습니다. <더 글로리>가 나오자 그쪽으로 갔습니다. 배틀로얄 장르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물론 배틀로얄 장르의 기존 주민들(일본 만화 <배틀로얄> 팬, <신이 말하는 대로> 독자들)은 열광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장르가 메인스트림에 떴다!" 그들은 주민이었으니까요. 그들에게 <오징어 게임>은 자기 동네에 새로 생긴 랜드마크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 열광했던 수억 명의 시청자들. 그들은 배틀로얄이라는 장르의 주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넷플릭스 1위", "요즘 핫한 드라마"를 보러 온 관광객이었습니다.


관광객의 소비 패턴

관광객들은 어떻게 소비할까요? 파리를 여행하는 관광객을 생각해 봅시다.

먼저 화제의 랜드마크를 방문합니다.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 "파리 왔으면 이건 봐야지."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이거 안 보면 대화 못 낀다더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소비합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사진 찍고, 모나리자 앞에서 인증샷 찍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달고나 게임과 무궁화 꽃 장면을 기억합니다.

SNS에 인증합니다. "나도 파리 다녀왔어!" "나도 오징어 게임 봤어!"


그리고 다음 달 핫한 여행지로 이동합니다. 파리가 끝나면 로마로, 로마가 끝나면 바르셀로나로. <오징어 게임>이 끝나면 <더 글로리>로, <더 글로리>가 끝나면 다음 화제작으로.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배틀로얄 팬(주민)"이 아닙니다. "트렌디한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관광객"입니다.


이것이 <오징어 게임> 이후 배틀로얄 장르가 르네상스를 맞이하지 못한 진짜 이유입니다. 수억 명이 왔다 갔지만, 그들은 관광객이었습니다. 주민이 늘어나지 않으면, 동네는 변하지 않습니다.


관광객은 나쁘고 주민은 좋은가?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도덕적 판단이 아닙니다.

관광객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관광객은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현명한 소비자입니다. 장르의 수십 년 역사를 공부할 필요 없이,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과물 하나만 즐기면 됩니다.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관광객만으로는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관광객들은 유행이 지나면 반드시 다음 유행지로 떠납니다. 그 장르를 지탱할 주민(코어 팬덤)이 부족하면, 그 콘텐츠는 일회성 폭죽으로 끝나버립니다.


파리를 생각해 봅시다. 매년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파리를 방문합니다. 그들은 돈을 쓰고 떠납니다. 하지만 파리를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파리에 사는 주민들입니다. 빵집을 운영하고, 카페를 열고, 동네를 가꾸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광객과 주민, 무엇이 다른가?

구체적으로 비교해 봅시다.

관광객으로서의 철수를 끌어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화려한 랜드마크가 필요합니다. 야구로 치면 홈런, 역전 드라마 같은 직관적인 볼거리입니다. "우와!" 하고 감탄할 만한 것.


낮은 진입장벽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규칙 설명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야구는 공을 쳐서 베이스를 도는 거야" 정도면 충분합니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관광객은 지루해합니다.

화제성이 필요합니다. "이거 안 보면 대화에 못 낀다"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친구들이 다 보고 있다는 느낌.

반면 주민으로서의 철수를 만족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깊이 있는 서사가 필요합니다. K-팝으로 치면 멤버별 비하인드 스토리, 세계관의 역사, 음악적 발전 과정.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

숨겨진 설정이 필요합니다. 이스터에그와 떡밥. 뮤직비디오에 숨겨진 상징들. 팬들이 "아, 이게 여기서 복선이었어!"라고 발견하는 재미.

배타적 언어가 필요합니다. 팬들끼리만 통하는 '우리만의 언어'와 문화. "보라해", "아포방포", "탄이들" 같은 내부 용어.

주민에게는 일상의 편의를, 관광객에게는 화려한 축제를. 둘 다 필요하지만, 섞으면 안 됩니다.


성공하는 IP는 두 가지를 모두 한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IP는 어떻게 할까요? 두 가지를 모두 합니다.

원작 웹툰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딥(Deep)한 설정을 풉니다. 복잡한 세계관, 캐릭터의 내면, 복선과 떡밥. 주민들은 이것을 파고들며 즐깁니다.


하지만 드라마화할 때는 관광객들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문법을 바꿉니다. 복잡한 설정은 단순화하고,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만들고, 진입장벽을 낮춥니다.

마블을 봅시다. 마블은 이 전략의 대가입니다.


영화(관광객용)는 화려한 액션과 유머로 가득합니다. 복잡한 설정 설명은 최소화합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언맨이 악당을 때려잡는다" 이 정도만 이해하면 됩니다.

하지만 코믹스(주민용)는 50년 이상의 방대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멀티버스, 타임라인, 캐릭터 간 복잡한 관계. 주민들은 이것을 파고들며 즐깁니다.


영화를 본 관광객 중 일부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코믹스라는 주민용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주민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대동소이: 세계관 커뮤니티의 연대

이제 더 깊은 층위로 들어가 봅시다. 세계관 기반 커뮤니티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대동소이(大同小異)'입니다.

BTS 아미를 생각해 봅시다. "BTS 팬덤"이라고 하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작은 커뮤니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트위터 한국 아미, 트위터 일본 아미, 트위터 미국 아미. 각 나라별로 다릅니다. 인스타그램 아미, 틱톡 아미, 유튜브 아미. 각 플랫폼별로도 다릅니다. RM 팬카페, 진 팬카페, 슈가 팬카페. 각 멤버별로도 나뉩니다. 음악 중심 팬, 패션 중심 팬, 메시지 중심 팬. 관심사별로도 갈라집니다.


이들은 평소에 따로 활동합니다. 트위터 한국 아미는 주로 한국어로 소통하고, 한국 시간대에 활동하고, 한국 문화에 맞는 밈을 만듭니다. 트위터 미국아미는 영어로 소통하고, 미국 시간대에 활동하고, 미국 문화에 맞는 밈을 만듭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작은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동(大同)'합니다. 큰 것은 같습니다. 모두 BTS를 사랑하고, [보라해]를 이해하고, [7]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ARMY]라는 정체성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소이(小異)'합니다. 작은 차이들이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활동 시간이 다르고, 선호하는 콘텐츠가 다르고, 소통 방식이 다릅니다.


커다란 일이 생겼을 때

하지만 커다란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빌보드 차트 1위를 노릴 때를 봅시다. 이것은 개별 커뮤니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스트리밍 실적을 올리려면 전 세계 아미가 동시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 순간, 평소에 따로 활동하던 수많은 작은 커뮤니티들이 하나로 연대합니다. 트위터 한국 아미가 스트리밍 가이드를 만들면,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 아미에게 전달되고, 다시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남미 아미에게 전달됩니다. 시간대별로 릴레이가 이어집니다. 한국 팬들이 자는 시간에는 미국 팬들이, 미국 팬들이 자는 시간에는 유럽 팬들이, 24시간 끊임없이 스트리밍을 돌립니다.


투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 시상식 인기투표가 시작되면, 플랫폼별로 흩어져 있던 팬들이 하나의 목표 아래 모입니다. 투표 방법을 공유하고, 목표 득표 수를 정하고,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합니다.

집단 행동도 그렇습니다. BTS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평소에는 조용하던 팬카페,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의 팬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냅니다. 해시태그 캠페인이 시작되고, 청원이 만들어지고, 보이콧이 조직됩니다.


이것이 대동소이의 힘입니다. 평소에는 작고 다양한 커뮤니티로 흩어져 있지만, 필요할 때는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뭉칩니다.


인접 세계관과의 대동소이 연대

더 놀라운 것은, 이 대동소이 연대가 완전히 다른 세계관끼리도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01화에서 우리는 캐릭터를 만들 때 '인접 세계관'을 활용한다고 배웠습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를 설명할 때 "우주의 사무라이" 또는 "우주의 성기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즉시 이해한다고요. 가족 구성, 직업의 성장, 학교 동급생의 비교우위 같은 익숙한 개념을 빌려와서 낯선 캐릭터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제 커뮤니티 전체가 인접 세계관과 대동소이한 연대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2016년 혜화역 시위를 다시 봅시다. 평소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K-팝 팬, 게임 유저, 웹툰 독자, 직장인, 학생.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들에게 공통의 키워드가 생겼습니다. [여성], [안전], [공포]. 이 키워드는 K-팝 팬덤에도 있고, 게임 커뮤니티에도 있고, 웹툰 독자 커뮤니티에도 있었습니다.

커뮤니티 구성원의 대다수가 이 공통 경험에 놓여졌습니다. 그 순간, 서로 다른 세계의 주민들이 연대했습니다. K-팝 팬은 응원봉을 들고 나왔고, 게임 유저는 온라인 캠페인을 조직했고, 웹툰 독자는 추모 만화를 그렸습니다. 방법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습니다.


이것이 인접 세계관과의 대동소이 연대입니다. 평소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大異)에 살지만, 공통의 경험 앞에서는 같은 목표(大同)를 가집니다.


범세계적 연대의 호환성

이런 구조로 인해,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커뮤니티는 사실상 범세계적 연대를 기반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새로운 해시태그의 공감과 함께 큰 물줄기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MeToo 운동을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특정 팬덤의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 [성폭력], [침묵 깨기]라는 키워드가 수많은 다른 커뮤니티와 공명했기 때문입니다.


#BlackLivesMatter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K-팝 팬덤이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주된 정체성은 "K-팝 팬"이지만, 그 안에 [정의], [평등], [인권]이라는 2-3차 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레이어가 활성화되면서, K-팝 팬덤이라는 세계관과 인권 운동이라는 세계관이 일시적으로 연대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 세계관 커뮤니티의 힘입니다. 평소에는 각자의 세계에 살지만, 공통의 키워드가 등장하면 언제든 범세계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 호환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창작 세계관에 연대의 줄기를 심어라

이것이 우리 창작자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세계관에도 '연대의 줄기'를 심어야 합니다. 05화에서 배울 아이돌의 4레이어를 미리 언급하자면, 아이돌은 단순히 4계층(캐릭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1계층(자연인)과 2계층(직업인)의 영역에서도 연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계층 자연인의 연대를 봅시다. BTS 멤버들은 캐릭터이기 이전에 실제 사람입니다. 그들도 [청년], [꿈], [좌절], [성장]을 경험합니다. 이 키워드는 BTS 팬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모든 청년이 공유하는 키워드입니다. 그래서 BTS 팬이 아니던 사람도 "청년 실업" 이슈가 나오면, BTS의 [청춘], [꿈]이라는 메시지와 공명할 수 있습니다.


2계층 직업인의 연대도 있습니다. BTS는 가수이자 퍼포머입니다. 그들의 [노력], [연습], [무대]는 다른 모든 직업인이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입니다. "나도 내 일에서 저렇게 열심히 하고 싶다." 이것은 아이돌 팬이 아닌 일반 직장인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판타지 소설에도 연대의 줄기를

당신이 판타지 소설을 쓴다고 칩시다. 4계층 캐릭터 레벨에서는 [마법사], [선택받은 자], [어둠의 군주]를 다룹니다. 이것은 판타지 팬들만의 언어입니다.


하지만 1계층 자연인 레벨에서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주인공도 [가족], [상실], [슬픔], [회복]을 경험합니다. 이 키워드는 판타지 독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경험입니다.


2계층 직업인 레벨에서는요? 당신의 주인공은 [수련], [성장], [스승과의 관계], [동료와의 경쟁]을 겪습니다. 이것은 학생, 직장인, 운동선수, 예술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당신의 판타지 소설이 4계층(마법 세계관)만 가지고 있다면, 판타지 팬덤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1-2계층의 보편적 키워드를 함께 가지고 있다면?

"판타지는 안 읽는데, 이 소설의 가족 이야기는 감동적이더라." "마법은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이 내 이야기 같아."


이렇게 판타지 독자가 아닌 사람도 당신의 세계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족 #성장 #극복 같은 해시태그를 통해, 당신의 판타지 세계관이 완전히 다른 세계관의 커뮤니티와 연대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이 현실에 가까워질 때

아이돌의 4레이어를 미리 조금 더 설명하자면, 4계층(캐릭터)은 순수한 세계관 안의 존재입니다. BT21 캐릭터는 현실과 무관하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1계층(자연인)과 2계층(직업인)은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신의 세계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당신의 세계관이 4계층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순수한 판타지로 남습니다. 아름답지만 고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1-2계층의 현실적 키워드를 함께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세계관은 필요할 때 현실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당신의 판타지 세계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현실 세계에서 [청년 실업], [가족 해체], [정의] 같은 이슈가 불거졌을 때, 당신의 팬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슈와 연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세계관 안에 이미 그 키워드들이 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기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연대의 줄기를 심는 이유는 단순히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가 아닙니다. 당신의 세계관이 현실에 이해받고, 현실에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돌이 그랬듯, 당신의 창작 세계도 4계층(순수한 세계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1계층(인간으로서의 보편성), 2계층(노력하는 존재로서의 공감)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세계관 밖의 사람들도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필요할 때 함께할 수 있습니다.


BTS가 #BlackLivesMatter와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세계관 안에 이미 [정의], [평등], [인권]이라는 1-2계층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BTS가 4계층(캐릭터)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은 고립된 판타지로 남았을 것입니다.


당신의 세계관도 마찬가지입니다. 4계층의 순수한 판타지를 만들되, 1-2계층의 현실적 키워드를 함께 심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세계는 고립되지 않고, 필요할 때 더 큰 물줄기와 합류할 수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우리는 관광객과 주민의 차이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대동소이의 연대, 범세계적 호환성, 그리고 연대의 줄기를 심는 방법까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팬들이 실제로 사랑하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아이돌을 예로 들어봅시다. 팬들이 사랑하는 것은 무대 위에서 춤추는 저 사람의 '육체'일까요? 아니면 그가 부르는 '노래'일까요? 혹은 기획사가 만들어낸 '이미지'일까요?


다음 화에서 우리는 '아이돌의 4레이어'를 통해 이 모든 이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자연인, 직업인, 배역, 캐릭터. 이 네 개의 층위를 이해하면, 당신은 사랑받는 IP를 만드는 비밀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화에서 배운 '연대의 줄기'가 1-2계층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명확히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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