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9일, 드디어 본죽이 문을 열었다. 외식업 창업 컨설팅 뿐만 아니라, 요리학원까지 운영했던 김철호 대표가 실제로 처음 외식업을 창업하는 것이기에 주변에서는 막연한 기대감이 컸다. 사람들은 오픈 이벤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당시, 오픈하는 매장이라면 당연하게 해왔던 오픈 이벤트는 본죽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김철호 대표는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저서 <꿈꾸는 죽장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벤트를 하면 그날 하루 손님을 끌어 모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국 가게의 약점만 노출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오픈 이벤트에 끌려 가게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으며, 경험 부족과 밀리는 주문으로 인해 음식 맛이 제대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한 번 손님의 인심을 잃고 나면, 그것은 회복하기 어렵다. 한 그릇 팔려다가 잠재적인 고객을 영원히 놓치는 것이다. 장사 하루 이틀 할 거 아니라면, 몇 그릇에 연연하지 말고 배운 원칙을 지켜서 죽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요한 것은 원칙대로 제대로 죽을 만들어서 배운 그대로 손님에게 서비스했는지 여부이다. 매상?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최선을 다했다면, 판단은 손님의 몫이다.’
이 말은 물론 정말 자신이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에 자신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실제로 많은 창업주들이 본질에 충실하지 않은 채, 외부 홍보와 마케팅에만 돈과 시간을 쏟아 붓는다. 김철호 대표 역시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음에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본죽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야! 죽집 한번 근사한데!’라고 하면서도 막상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덕분에 개업 첫날의 매출은 고작 125,000원에 불과했으며, 둘째 날의 매출은 그보다 더 줄어 100,000원에 그쳤다. 개업한 이후 일주일동안 매출은 끊임없이 점점 떨어졌다.
하지만, 그나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지만, 한 번 왔던 손님들의 재방문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던 것이다. 이것은 손님들이 맛과 서비스에 충분히 만족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본죽을 다시 찾은 손님들은 혼자 오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지인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만 알고 있는 맛집을 소개하듯이 말이다. 끌려온 지인들은 ‘쌩뚱맞게 무슨 죽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본죽의 양과 세팅에 한 번 놀라고, 특히 죽 맛을 보고 나서는 만족하는 기색을 보였다. 처음 온 손님들은 인테리어에 놀라고, 높은 죽 가격 때문에 놀라고, 죽의 양을 보고 놀라고, 마지막으로 죽 맛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김철호 대표의 계획대로 한 번 방문한 사람들은 죽의 맛에 반해 바로 단골이 되었다. 마침내 본죽은 매출이 떨어질 때가 언제였냐는 듯이 개업 3개월 만에 하루 100그릇이라는 1차 목표를 이뤄냈다. 그리고 하루 평균 매출이 100그릇을 넘어서면서 매출 증가는 탄력을 받아, 점심시간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는 매장이 되었다. 김철호 대표의 ‘기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본죽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개업 전 해왔던 죽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와, 계획된 인테리어, 서비스에 대해 확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업 초기의 저조한 매상을 견뎌낼 수 있었으며, 본죽을 대한민국 최고의 죽 프랜차이즈로 키워낼 수 있었다.
흔히, 자신의 상품이 별로 특별하지 않아도 마케팅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생각은 소상공인들에게 특히 위험하다. 마케팅은 언제나 ‘기본’이 갖춰진 상태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기업에서 마케팅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은 자주 접촉한 대상에 대해 더 호감을 보인다.’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로버트 자이언스의 실험 결과를 참고하라.)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연구 결과를 말해주었다.
‘사람들이 자주 접촉한 대상에 대해 더 호감을 보인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접촉’을 이용해 인종 갈등을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족적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자주 접촉하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서로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접촉을 통해 호감을 유도하는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인 학교에서 인종 통합에 관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인종 통합교육이 오히려 흑인과 백인 학생 사이에 편견을 더 심화 시킨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는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해, 반복적인 접촉으로 뭔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그것을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다. 불쾌한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나 대상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다 보면 오히려 호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의 마케팅에 대해 색다른 시사점을 안겨준다. 단순히 ‘반복적인 접촉 → 호감’으로 이어진다고만 생각했는데, 불쾌한 상황에서는 반복된 접촉이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불쾌한 상황’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물론 마케팅 자체의 문제일수도 있다. 광고 자체가 너무 과장인 것이 티가 나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을 주는 광고라면 반복해서 볼 때마다 짜증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대부분의 ‘불쾌한 상황’은, 광고를 보고 구매를 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품질이 아닌 경우다. 허위 광고에 당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맛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별로라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이런 경우, 마케팅은 안 좋은 입소문을 퍼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객들을 모으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어떤 마케팅을 지향해야 할까? 본죽의 김철호 대표가 그토록 강조했듯이 철저히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그 다음에서야 마케팅을 해야 한다. ‘제품만 좋다면 마케팅은 필요 없다.’ 라는 말이 아니다. 제품이 좋아도 분명히 마케팅은 필요하지만, 제품이 좋지 않다면 마케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상공인들에게 마케팅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마케팅(수익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고객을 배제하는 마케팅)이다. 일반적인 상품을 가지고 마케팅에 집중 할 것이 아니라,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구매력이 높은 소수 고객들에게 마케팅을 집중해야 한다.
한 때는 우리나라 최고의 커피 프랜차이즈였던 카페베네가 무너진 사례를 보면, 기업의 무분별한 마케팅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카페베네는 창업 초기, 부족한 인지도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만회하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연예기획사들과 손을 잡고 스타마케팅에 집중했으며, ‘지붕뚫고 하이킥’과 같은 인기 프로그램들에 PPL을 넣기도 했다. TV광고도 자주 활용했는데, 매출이 1,000억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빅모델이었던 한예슬, 장근석, 송승헌 등의 연예인들을 활용하며 파격적인 광고비를 투자하기도 했다. 광고에 대한 파격적인 투자 때문이었을까, 카페베네는 최단 시간내에 가맹점들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카페베네의 성장은 2012년 최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2012년 2200억이었던 매출이, 2016년에는 817억까지 내려갔다. 더 큰 문제는 손익이었다. 2200억의 매출을 올렸던 2012년마저도, 겨우 7억의 이익을 낸 것이다. 2013년부터는 적자를 기록하며, 2016년에는 –336억까지 내려가게 됐고, 결국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카페베네의 실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공격적인 마케팅에 비해 커피의 맛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커피업계에서 명확한 포지셔닝을 구축하지 못했다. 스타벅스는 스타벅스만의 프리미엄 커피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뺵다방은 싸고 많은 양을 주는 커피숍이라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는 반면, 카페베네는 이도 저도 아닌 위치였다. 와플이나 젤라또와 같은 디저트에 주력하긴 했지만 확실히 디저트로 포지셔닝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카페베네는 사람들로부터 ‘맛없는 커피’라는 이미지를 얻고 외면을 받게 되었다.
카페베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 또한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마케팅은 필요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제 아무리 대단한 브랜드라 하여도 소비자를 유지하며 계속 성장하려면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만약 마케팅에 아무리 돈을 써도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마케팅이 아니다. 당신이 속한 업계에서의 포지셔닝을 고민하고,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품질을 갖추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조금 과감한 표현이지만, 미국의 유명한 파워 블로거이자 벤처 투자가인 프레드 윌슨은 제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마케팅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형편없는 회사들이 하는 쓸데없는 짓이다.’
좋은 제품은 스스로 빛이 나기 때문에 비싼 비용을 치러가면서 까지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케팅을 할지 말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에 관한 의견은 단 하나뿐이다. 고객들이 감동할만한 좋은 제품을 만들어라. 여기에 대한 이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