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No-Show) 때문에 망하는 식당도 있어요.’
최근의 기사에서 최현석 셰프가 한 말이다. 노쇼는 고객들이 가게에 예약을 하고, 아무 연락 없이 오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하루에만 6~8명의 노쇼 고객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피해액은 어마어마하다. 고객 1인당 10만원의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이다 보니 피해액은 하루 80만원, 한 달이면 무려 2,400만원이다. 그나마 최현석 세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같이 큰 곳은 매출 규모가 워낙 커서 피해액이 상쇄가 되지만, 작은 식당들은 하나하나의 노쇼 고객에 치명타를 맞는다. 노쇼고객에 이어 비슷한 진상고객도 있다. 예약시간보다 한참 늦게 와서 자리를 내놓으라고 무작정 떼쓰는 애프터쇼 고객들이다. 고객이 갑이라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는 사람들은 가게에서 떼를 쓰면 사장이 결국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으로 안다.
예약을 안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게 하면서도 장사가 잘 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하지만 예약과 매출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장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차선택을 알아봐야만 한다.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사장들이 노쇼를 방지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가장 자주 쓰는 방법은 위약금/예약금을 받는 것이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의 ‘코이(Coi)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패터슨 씨는 노쇼 고객들에게 신용카드로 미리 결제한 금액 중 50~100달러(약 6만~12만원) 정도의 위약금을 청구했다. 그가 이 방법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예약을 해놓고 오지 않는 고객들이 무려 20%에 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위약금제도에 대해 항의하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노쇼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위약금제도를 시작한지 3년이 되었을 때 코이의 노쇼 비율은 절반으로 줄어있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는 특히 위약금 제도를 가장 정확히 활용하는 분야다. 대한항공은 2016년부터 기존 국내선에만 적용되었던 예약부도 위약금 제도를 국제선까지 확대했다. 위약금 제도를 확대한 이후 예약부도율은 41%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위약금/예약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노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장되면서, 일부 고객들은 예약금을 받는 것에 찬성을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고객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도 예약금 얘기를 꺼내면 바로 전화를 끊는 고객들이 많다. 위약금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고 노쇼에 당하고만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위약금으로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서비스를 대접할 수 있도록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고객들은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위약금제도를 쓰지 않고 노쇼 고객들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1988년, 척 템플턴은 온라인으로 식당을 예약할 수 있는 ‘오픈테이블’을 창업했다. 그가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온라인 예약 개념은 크게 보편화되어있지 않은 시스템이었다. 때문에, 오픈테이블의 초창기에는 ‘익명으로 예약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노쇼가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라는 사람들의 우려가 많았다. 템플턴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규칙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약 전날 손님들에게 확인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경우 사람들은 대부분 예약 취소 연락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픈테이블은 예약 이후 마음이 바뀌거나 일정에 변화가 생긴 고객들을 미리 대처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예약 하루 전에 취소하는 것도 사장에게는 피해가 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당일 예약시간이 다돼서 아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하루 전이라도 고객의 일정변화를 알게 되면 새로운 고객의 예약을 받을 수도 있고, 예약을 하지 않은 고객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방법을 이메일 대신 문자나 전화로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병원들과 호텔, 고급 레스토랑 등이 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통상적으로 예약당일 1주일 전에는 문자를 보내고, 하루 전에는 전화를 해서 육성으로 확답을 듣는 것이 가장 좋다.
문자나 전화를 하며 일일이 연락하지 않아도, 고객이 적극적으로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사회과학자 델리아 치오피와 랜디 가너는 약속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에게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에이즈 교육 프로그램 참여를 부탁했다. 연구팀은 자원봉사자들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한 팀에게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으며, 다른 한 팀에게는 ‘지원하고 싶다면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해’라고 말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은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으며, 교육 프로그램을 돕겠다는 학생들의 비율은 양 팀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며칠 후, 연구팀은 놀랄만한 결과를 보게 되었다. 지원서를 작성했던 팀은 49%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장소로 나온 반면, 지원서를 작성하지 않은 팀은 고작 17%만이 약속대로 나와 있었다. 사람들은 약속을 하는 것에 적극적인 행동(지원서를 쓰는 등)을 개입시키게 되면 약속을 지킬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매몰비용’을 들 수 있다. 당신은 사법고시와 수능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재수, 삼수를 하는 수험생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하여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 돈이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이미 사라진 것들에 대한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해서 결과를 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위약금 제도는 ‘돈’을 매몰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객들에게 돈 대신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함으로써 당신과의 약속을 중요시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 방법은 교육/컨설팅/서비스 업종에 특히 큰 효과가 있다. 당신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서 메일로 보내게 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만약 전문가로 포지셔닝이 잘 되어있다면, 고객은 최대한 상세하고 길게 내용을 적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교육/컨설팅을 할 때도 큰 도움이 되지만 고객이 예약을 지키게 하는 것과 매출을 올리는 데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여태까지 말한 방법들보다 좀 더 쉽고 간단한 방법을 원한다면 ‘공개선언 효과’를 적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스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세 집단으로 분류시켜 각각의 집단에게 다른 지침을 주었다. 첫 번째 집단의 학생들에게는 시험에서 받고 싶은 목표 점수를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하라고 말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목표 점수를 속으로만 생각하도록 했으며, 세 번째 집단에게는 목표 점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 스티븐은 이 세 집단의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확인했다.
목표 점수를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한 첫 번째 집단은 다른 두 집단의 학생들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두 번째 그룹과 점수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룹은 별 차이가 없었다.
심리학자 모튼 도이치의 실험은 스티븐의 연구 결과와 비슷한 결과를 나타냈다. 모튼은 대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눴다. 그는 각 집단의 학생들에게 직선을 보여주며 길이를 예상하게 했다. 그리고는 첫 번째 집단에게 예상 길이를 종이에 적어 제출하라고 말했다. 두 번째 집단은 추정 결과를 화이트보드에 적은 후 남들이 보기 전에 지웠으며, 세 번째 집단은 예상 길이에 대해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다. 이후, 모튼은 실험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에게 예상치가 틀렸음을 알렸다.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예상 길이를 종이에 적어 제출했던 학생들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힘들어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학생들은 망설임 없이 예상치가 틀렸음을 인정했다.
우리는 스티븐과 모튼의 연구결과를 통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고객들과 예약을 잡을 때 보통은 이런 식으로 예약이 진행된다.
‘혹시 00일 저녁0시에 예약 가능한가요?’, ‘네.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성함과 연락처 알려주시겠어요?’, ‘000입니다.’, ‘네, 예약 되셨습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이 상황에서 질문 하나만 추가하면 된다.
‘고객님, 혹시 일정에 변동생기시면 미리 전화 주시겠어요?’
어느 심리학자가 제공한 이 간단한 아이디어는, 레스토랑의 예약 취소율을 30%에서 10%로 급감시켰다. 고객들도 머릿속으로는 ‘취소하게 되면 전화해줘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서는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 뿐이다. 우리는 이런 단순한 질문 한 번으로 고객이 적극적으로 약속을 지키게 만들 수 있다. 당장 해봐야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