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장은 뒷산에

웅크리고 있는 게 편했다.

by 미로



그녀는 웅크리고 있는 걸 좋아 했다. 굴처럼 둥글게 만든 이불 안에 몸을 말아 넣고 숨을 습, 후 하고 내뱉으면 들뜬 숨이 얼굴에 닿았다. 답답했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그 기분에 밤새 이불 안에 있었다. 숨이 막힐 때쯤이 되면 아침이 되었다. 해가 뜨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불길한 예감처럼 조금 있으면 알람이 울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고 몇 초 뒤에 알람이 울렸다. 그녀는 알람을 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알 수 없는 울음 같은 게 들려왔다. 고양이인지, 개인지, 혹은 토끼인지 생각했다. 그러다 토끼? 토끼가 울었었나? 홀로 되물었고 갑자기 토끼가 왜 떠올랐는지 이상해 웃다가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토끼 울음소리 하고. 토끼는 삑삑 하고 운다는 답을 찾아낸 그녀는 잠긴 목으로 따라해 보았다. 삑삑. 출근까지 아직 두 시간이 남은 그녀는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 웅크렸다.


회색빛 아파트 위로 우중충한 회색 구름이 떠있다. 그녀는 고개를 들며 어둔 밤 같다고, 곧 있으면 비가 떨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걸어갔다. 회사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나 의문이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회사가 도대체 어디였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회사가 어디였는지를 몰랐지만 발걸음은 계속해서 앞을 향했다. 출근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그녀는 보도블록의 칸을 의식하며 하나하나 밟았다. 쭉 뻗은 도로는 사람 한 명없이 한적 했고 드문드문 자동차가 쏴아 소리를 내며 옆을 지나갔다. 비쩍 마른 나무 위로 새 몇 마리가 날아가며 울었다. 그녀는 아침에 들은 삑삑 소리가 새 울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까지 몇 분이나 남았는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며 걸었다. 그녀는 어딘가 초조했으나 성급하게 걷지는 않았다. 도로가 꺾이고 뒷산으로 뻗어 있는 야트막한 계단이 나왔다. 계단 옆엔 근린공원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그녀는 계단 너머 뒷산에 위치한 공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 계단은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둔탁한 신음을 흘렸다. 공원은 생각보다 높게 있었고, 위에 오르면 아래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파트들이 보였다. 조악한 운동기구 몇 개가 소나무가 둘러싼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산책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몇 분이나 흘렀는지를 확인하려는데, 멀리서 삑삑 소리가 났다. 소나무 몇 그루 너머에서였다.


그곳엔 커다란 철장이 있었다. 녹이 슬어 갈변한 철장 안엔 드럼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드럼통엔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속이 어두워서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철장 안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하얀 털과 뼈 같은 게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철장 중앙에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 아래로 반려동물을 유기하지 말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었고, 그 옆으로 마른 풀이 꽂혀 있었다. 그녀는 토끼를 기르던 곳이구나, 생각했지만 토끼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유기 하지 말라는 경고 전에 유기되었을 동물들 또한 보이지 않았다. 물이 담겨 있던 그릇엔 하얀 털과 나뭇잎이 뒤엉켜 있다.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 드럼통 속을 바라보았다. 삑삑 소리가 들리려나, 했지만 흐릿한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출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출근을 하지 않았지만 아무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드럼통 속에서 삑삑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어둔 드럼통 속을 바라보았다. 철장은 높았고 촘촘했다. 문에는 녹슬지 않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철장을 넘어 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녀는 푯말 옆에 꽂혀 있는 마른 풀을 철장 안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금 삑삑, 소리를 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심지가 타듯 토끼의 몸속으로 풀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며 그녀는 손을 하느작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얀 털의 토끼를 생각했다. 그녀는 이 철장은 버려졌구나, 철저히 버려졌구나 하고 실감했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드럼통의 입구에 들어가려는 듯 무릎에 얼굴을 포개며 웅크렸다. 마른 풀이 하얀 털과 뼈 위로 떨어졌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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