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네 시.
이유 없는 불면과 우울에 대해서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짜증 섞인 푸념을 한다. 이 모든 건 약기운 때문일 뿐이라고. 짐작과 확신을 한다. 약을 먹지 않은 나와 약을 먹은 나의 차이는 알약 한 알 정도의 솔직함을 함유한다는 것. 그런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등을 한 번쯤은 두드려주고 싶다는 것. 솔직한 나와 우울한 나, 중에 고르라면 우울한 나를 고르겠지만 나는 오늘 새벽 조금 솔직해져서 우울을 고백한다.
축적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단층을 똑똑 두드려본다.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당신 혹은 너를 불러보는 행위. 우리가 우리라고 불리던 화석이 되어버린 한 소절의 노래. 너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혹은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말들.
사랑을 믿다, 라는 말을 되뇌던 시기가 있다. 사랑과 믿음. 두 단어를 모두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가 어떻든 사랑은 언제든 어디서든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제 묵음 처리 되어 어느 문장 사이에도 끼어들지 못한다. 사랑을 믿었던 시기는 이제 끝이 나고 사랑을 믿었던 나는 뼈만 남아 명명되지 않은 화석이 되어 전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네 시 새벽의 중앙에서 나는 사랑을 말한다. 왜, 라고 스스로에게 되묻지만 사랑은 비논리의 향연이라고, 사랑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스스로의 답에 웃는다. 흩어진 뼈를 맞춰서 온전한 형태의 화석을 만들 듯 마음의 조각을 맞춰 당신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어진다.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사랑을 고백한다. 알약 한 알. 그 한 뼘의 크기만큼 묵음 처리된 단어를 말한다.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사랑을 믿는다는 모순된 삶. 문 너머에 당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세요, 하며 똑똑 두드리는 행위와 마음. 단층 사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혼잣말들. 두려움과 불안, 자괴와 회의.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