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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Apr 05. 2021

마을버스가 죽으면 고시원이 산다

최선의 재생, 최선의 재개발은 '촘촘한 연결'

2018년 11월9일 새벽 5시, 청계천 근처에 있는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요즘 고시원이 그렇듯, 사상자는 고시생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다치거나 가까스로 화를 면한 사람들은 집이 없어졌다. 다행히 정부가 방관하지는 않았는데, 생존자 32명에게 강북 일대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했다고 한다. 거주 기간이 6개월로 한시적이긴 했지만 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그런데, 국일고시원 사람들의 이야기는 '임대주택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가 사망자를 빼고 32명에게 임대주택 거주권을 줬지만, 실제로 입주한 사람은 10명에 그쳤다. "고시원에 살던 사람한테 번듯한 임대주택을 준다는데 왜?"라는 물음에 답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당시 기사들은 실제 국일고시원 생존자들의 말을 빌어 이러저러한 이유를 전한다. 그 사람들은 대체 왜 나라가 들어와 살라는 임대주택도 거부했을까.


공무원 탁상공론이 빚은 '그림의 떡', 일용직 노동자들은 외면했다 (조선일보, 2018년 11월27일)

국일고시원 거주자 대다수는 40~60대 일용직 근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재민에게 제시한 임대주택은 ‘인력 시장’과 거리가 떨어진 은평구, 성북구, 중랑구 등에 집중되어 있다.
국일고시원 입주자들은 종로, 서울역의 인력 사무소에 나가기 위해 대부분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은평, 중랑, 성북 등지에서 인력사무소까지 가려면 새벽 첫 차를 타고 30분 이상 와야 한다. 월 10만원 안팎의 적지 않은 교통비가 드는 데다, 자칫 늦으면 일감을 구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


김포나 동탄 같은 2기 신도시의 어느 아파트쯤에 사는 사람에게 서울로의 출퇴근이란 '고역' 정도의 말로 설명되겠다. 매일 반복되는 그 힘겨움을 낮잡을 수는 없으나, 어쨌든 그런 출근길은 아무리 지옥이라 하더라도 견디면 그뿐이다. 그것은 '직주근접'이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인 가난한 사람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10분을 늦어 그 날 배를 곯고, 1만원이 없어 그 달 방세를 꾼다. 그래서 그들은 악착같이 도심에 붙어 있으려고 한다. 돈 안 들이고 걸어서 갈만한 거리, 버스 한번 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인력시장이 있고, 건설현장이 있고, 설거지나 청소 같은 용역을 제공할 사람을 구하는 식당이나 건물이 있다는 건 당장의 끼니를 가르는 문제다. 종로, 남대문, 용산 등지에서 고시원, 리빙텔, 원룸텔 같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보통 쪽방이나 컨테이너, 비닐하우스를 포함해 이런 '집'들을 '비적정 주거'라고 표현한다. 5년마다 시행하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주택 이외 거처' 거주 가구를 집계하는데, 2005년 5만 가구에서 2010년 13만 가구, 2015년 39만 가구로 늘었다. 2020년 결과는 올해 발표될 예정인데, 틀림없이 늘었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계속 비적정 주거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그렇다. 도심의 산기슭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가 보기에 흉물스럽다고 싹 밀고 '뉴타운'을 만들었으니, 재개발 후 원주민 정착률이 10%나 되면 다행인 도시에서 그 많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국 국일고시원처럼 도심 틈새에 이끼처럼 번식한 비적정 주거에 한 몸을 뉘이는 수밖에.


국일고시원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용역과 재화에 대한 접근성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좁히려고 기를 쓴다. 가난은 지하철 요금 100원에 그 누구보다 민감한 것이다.

Photo by Youngje Park on Unsplash

뉴타운과 재개발 너머로도 우리에겐 가난한 사람들의 욕구와 정반대로 움직여 온 역사가 있다. 철거민 단체 같은 데서 흔히 말하는 '외곽으로 밀려난 도시빈민' 서사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동네 중 하나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백사(104)마을'이다. 1967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하면서 몰아낸 청계천변 거주민 등 서울 각지 철거민들을 정부가 모아 조성한 이주정착지다. 정부가 선심 쓰듯 살 땅이랍시고 던져주긴 했는데, 일용직 건설노동자나 파출부로 일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은 도심에 오고 갈 방법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상계동·중계동 일대는 '마들평야'라고 불리는 논밭이었다. 그래서 이주 초기부터 이탈자가 속출했다. 나중에 시영버스가 배치됐지만, 하루 2번 아침저녁으로만 다녔다. 그 버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얼마나 먼 거리를 움직였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낭만적 실험인가, 대안적 재개발인가…공동체 재생을 꿈꾸는 백사마을 재개발(경향신문, 2021년 4월5일)


그래도 이 마을엔 사람들이 꾸준히 유입됐다. 1980년대 상계동 일대 철거민부터 1990~2000년대 IMF 외환위기 당시 형편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도시 변두리에 있는 이 마을이 공동화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노원, 하계, 석계 등을 잇는 버스 종점 정류장이 마을 앞에 들어서면서 빈약하나마 도심과의 연결고리를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임차료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0~20만원 수준으로 저렴한데 외곽지역 치고는 교통이 나쁘지 않으니 어느 정도 절충이 가능했을 터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값싼 거주비만큼이나 값싼 연결은 그만큼 중요한 쟁점이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그려진 한 벽화는 1960년대 철거민 이주정착지로서 마을 형성 당시 주민들이 겪은 심각한 교통난을 전한다.

도시를 연결하는 문제는 복지란 관점에 입각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백사마을처럼 보통 도시 가장자리에 있거나 구릉지·산비탈에 형성된 오래된 동네일수록 젊고 건장한 사람들은 떠나고, 딱히 대안이 없는 노인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런 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 약자들 중엔 장애인 수도 상당하다. 하지만 노인과 장애인이 다니기 힘든 마을 여건은 이들의 통행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 일대 산새마을도 그런 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산자락에 있는 동네로, 역시 1960년대 용산 등 철거민이 옮겨와 정착한 곳이다. 노인들이 오르내리기 불편하기 때문에 진즉 마을버스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도로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버스가 들어와도 돌아나가기가 어렵다는 진단이 나와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 2016년 3월부터 노선을 300m 연장한 마을버스 한 대가 다니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마을 재생 사업을 벌이면서 도로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를 소화하기 위한 주차장을 만들고, 그래도 노상주차를 하는 주민들을 수차례 설득한 끝에 낳은 결과다.


종로구 창신동은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경사가 급하고 구불구불한 골목에 주택과 차량이 빼곡히 들어선 동네다. 서울시의 '도시재생 1호' 사업지인데, 시행 전 주민 의견을 조사한 결과 '도로 재생 없이 도시재생은 불가하다', '마을버스 운행구간 연장' 등의 요구사항이 나왔다. 창신동을 빙 둘러가는 마을버스는 있지만 창신동 골목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버스 노선 연장 소식은 들리지 않고 봉제역사관, 백남준기념관, 라디오방송국 같은 시설들만 들어섰다. 창신동 주민들은 여전히 20~30분씩 산을 오르듯 동네를 다닌다. 결국 이를 빌미로 가라앉았던 재개발 요구가 들썩인다.


도시를 보다 촘촘하게 연결하는 일이 도시재생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연결이 부실한 도시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심 비적정 주거로 스스로 돌아간 국일고시원 사람들과 같은 선택을 한다.

서울 은평구 산새마을을 지나는 마을버스 노선도. 2016년 재생 사업 결과 'ㄴ'자 형태 구간이 개통됐다.

연결이라고 해서 꼭 버스, 택시, 지하철 이런 대중교통 수단을 떠올려야 하는 건 아니다. 지상 철로를 사이에 두고 쪼개지는 동네를 잇는 단순한 작업도 도시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연결이 된다.


마포구 연남동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 세모길은 과거 지상철인 경의선과 경의중앙선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고립이 심한 곳이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을 정도로 소외됐던 이 동네는 2015년 경의선 지하화로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경의선 철로가 지나던 길이 용산부터 이어지는 선형 공원이 되자, 사람들이 공원을 걸어 세모길에도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청년층이 좋아할 법한 카페, 책방 등이 들어섰고, 아예 공방을 짓고 눌러앉은 청년예술가도 있다('연트럴파크'의 힘을 골목상권까지..연남동 끝자락 '세모길'의 골목재생). 이렇게 걷는 환경만 개선해도 도시의 연결성 강화된다.

요즘 마을버스들이 "'시민의 발' 마을버스는 더 이상 운행이 어렵습니다"란 현수막을 걸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좁고 가파른 언덕 동네.."마을버스 없으면? 안 돼, 안 된다니까"). 산새마을에 겨우 들어온 마을버스도 운행 5년이 채 안돼 잔존 여부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한다. 마을버스가 사라지면 산새마을의 노인들은 아예 발이 묶여 고립된 생활을 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곳엔 마을버스 한 대를 도입하는 게 '주민 커뮤니티' 시설 10개를 짓는 것보다 낫다. 자꾸 뭔가를 새로 짓는 것보다는 도시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서로 잘 연결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 공공이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다.


Photo by Deva Darsh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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