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광장을 위하여
이 모호한 경계를 간과할 때 공공장소는 그야말로 애매한 장소로 전락한다. 실제로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거나, 설사 이용하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우리가 공공공간의 대명사격인 광장을 만드는 방식이 딱 그 수준이다. 누구나 이용하라고 그냥 텅 빈 공간을 공중에 던져놓는 식이니 말이다.
우리의 광장이 뭔가 잘못된 기원은 1971년 탄생한 여의도광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제국주의 야욕으로 가득 찬 일제의 비행장을 그대로 수용한 그 아스팔트 광장. 문제가 되는 건 아스팔트라는 포장재가 아니라 광활함을 빙자한 황량함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날을 자축하듯 '5·16 광장'이라고 부를 것을 지시한 대통령이 녹지나 화단도 모두 치우고 당시 서울시장의 '이마처럼 훤한' 광장을 주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곳에서 열렸던 수많은 관제 행사가 전하듯 그 광장에는 시민의 삶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상징성만이 존재했다. 반공 집회, 군사 퍼레이드, 대통령 취임식, 이산가족찾기, 부활절 연합예배 같은 비일상적 이벤트를 위한 무대였을 뿐이다. 일상적으로 그 광장은 그냥 허허한 아스팔트 터였을 뿐이다.
여의도광장은 나중에 공원이 됐지만 그 DNA는 살아남았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그 DNA는 포장재만 아스팔트에서 잔디로 바꿔 정착했다. 문제는 역시 포장재가 아니라 그 황량함이다. 덕수궁, 성공회대 성당, 플라자호텔, 서울시청 신청사까지 근현대 역사를 전시하는 건축물에 둘러싸였지만, 시민은 여전히 그 광장에서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한여름에는 땡볕에, 한겨울에는 삭풍에 노출된 서울시청 앞마당일 뿐이다. 이 광장 역시 이벤트 없이는 그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주로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가 열린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공연이나 겨울철 스케이트장 정도가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체험하는 순간일 것이다.
반세기 전 조성한 여의도광장에서 지금의 서울광장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두 공적, 그것도 아주 협소하게 관의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다. 정치권력의 시각에서 광장은 그냥 비워두기만 하면 되는 장소다. 언제든 이 많은 인파를 동원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하는 공간일 뿐이다. 권력의 속성은 형식적 민주주의 외피를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지방권력이 관선에서 민선으로 바뀌었지만 서울광장은 아스팔트에서 잔디밭으로 포장만 달리 한 것처럼. 넓은 공간을 비워두면 될 뿐 이를 시민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광장의 DNA가 극단적으로 진화한 형태가 바로 광화문광장이다. 2000년대 후반 서울시는 광화문을 소실점으로 두는 장방형 광장을 조성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최악은 그 광장 양옆에 6차선 도로를 존치시켜 광장을 고립시켰다는 점이다. 어느 방향에서든 차도를 건너야 발을 들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들었다. 광장의 목적이 그야말로 거대한 빈터를 만드는 데 있었을 뿐, 어떻게 시민의 일상과 연결할지에 관한 고민은 역시 결여됐던 것이다. 찻길에 둘러싸인 공허한 콘크리트 타일 광장에는 시민의 일상이 자리 잡을 곳이 없다. 비우는 데만 목적이 있다 보니 무엇을 채울지는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순신 혹은 세종대왕, 아니면 광화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시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포토존'을 만든 셈이다.
광화문광장 주변은 이미 시민의 일상이 종일 펼쳐지는 공간이다. 직장인들도 많고 그들이 이용하는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광화문과 경복궁이란 관광 자원은 물론 세종문화회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같은 문화 기반시설들도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활기가 넘치는 도심부다. 하지만 차로 사이에 섬처럼 자리한 광장은 그 일상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어느 건축가는 광화문광장을 두고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고 비판했다. 누군가 중앙분리대를 걷는다면 그건 참 아슬아슬한 광경일 것이다. 광화문광장을 걷는 행위가 그랬다. 그 광장을 걷는 내내 양쪽으로 달리는 차량의 속도와 소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댕댕이집을 안방과 작은방과 부엌과 화장실을 오가는 동선이 겹치는 자리에 뒀을 때 느끼는 강아지의 심경이 그와 비슷할 것 같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은 오로지 목적의식이 뚜렷한 시민들만 장시간 체류하는 광장이 됐다. 청와대 뒷산에서도 내다보일 정도로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장소에서 정부를 향해 뭔가를 항의하려는 시민들 말이다. 하지만 광장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광장은 점심식사 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한가롭게 거닐다가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아 지나는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는 장소이기도 해야 한다. 사방팔방으로 열린 구조가 공적인 것이라면, 그 열린 공간을 관망할 사적 공간도 있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버스 같은 공공공간에서 전망-은신처를 요구하는 우리의 심리는 드넓은 광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시가 2021년 3월부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시작했다.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없애고 광장을 그만큼 확장하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새로운 광장 조성 방향을 다음 3가지로 정리한다: '집회·시위보다는 시민의 일상이 있는 공간', '광장 중앙부의 열린 공간', '광장 서측부의 공원 같은 광장'. '집회·시위'와 '시민의 일상'을 대치시킨 표현은 매우 아쉽지만,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일상이 살아있는 주변 지역과 연결한다는 목표는 옳다. 세종문화회관 쪽에서 광장으로 온 사람은 도로를 건너지 않고도 거닐 수 있는 반경이 훨씬 넓어진다. 또 지금까지 이쪽 건물 1층은 광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바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상권 구성도 바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광장과 공원을 조망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건물과 상가-나무숲-열린 광장으로 사적 공간이 공적 공간으로 전이되는 시퀀스가 발생한다. 시민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곳이 되면 인파를 애써 동원하지 않아도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관객이 확보된다. 정치적 집회 일색에서 훨씬 더 다양한 이벤트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광장다운 광장이 탄생한다.
하지만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서도 여전히 광장이 권력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드러난다. 조선 왕조 산물인 월대(궁중 행사용 기단)를 복원하는 작업이 그렇다. 아직도 광장에 어떤 상징성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강박을 벗지 못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주로 혁명, 동양에서는 주로 식민지배와 같은 폭력적인 과정을 거쳐 신민(왕조 국가의 백성)이 시민으로 거듭나는 체제를 구축해놓고는, 굳이 시민을 다시 신민으로 격하하는 구조물을 복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고 보면 그 체제의 상징과도 같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도 시민의 접근을 불허하는 권위적인 형태다.
공적인 것은 단순히 그냥 비우는 것으로 구현되는 게 아니다. 무작정 비운 공간에서 사람은 오히려 무엇을 할지 모르고 허둥댄다. 하지만 그 공간을 조성한 권력은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오히려 광장은 시민의 사적인 삶과 어떻게 연결하고 무엇을 채우는지에 따라 공적 목표의 달성 정도가 달라진다. 여의도광장에서 서울광장, 또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진 '관제 광장'의 DNA를 이제는 버릴 때도 됐다.